“고국에서는 꿈에도 몰랐죠, 한국어가 제 팔자일 줄!”

김은경 기자 2023. 8. 12.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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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한국어는 내 운명”
세종학당 우수생 5인
세종학당 출신 외국인 5명./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훈민정음’ 글자 앞에 외국인 다섯이 섰다. 지난 7일 서울 용산 국립한글박물관. 카메라를 향해 손가락 하트도 하고 팔짱도 끼면서 한껏 포즈를 취하자 박물관 관람객들의 시선이 흘깃흘깃 모인다. 관광객일까. 그 순간, 한 명이 브이(V) 자를 거꾸로 뒤집어 보이며 유쾌하게 외친다.

“우리 MZ니까 MZ 포즈도 해요!”

이국적인 얼굴에서 유창한 한국말이 나오자 사람들 눈이 땡그랗게 커졌다.

세계한국어교육자대회 개막식이 열린 이날 세종학당 ‘한국어 우수생’ 5명을 국립한글박물관에서 만났다. 독일에서 온 6·25 참전용사의 손녀인 일라이다 아심길(24), 케냐인 한국어 교사 필리스 은디안구이(33), 몽골 출신 한국공학대 교수 어츠빌렉(34), 베트남어 프리랜서 통·번역가 응웬 투 후웬(31), 한국예술종합학교 브라질 유학생 리아 마우러(28)다.

세종학당은 세계 각지에 설치된 한국어·한국 문화 교육기관. 2007년 몽골 울란바토르에 처음 문을 열어 현재는 85국 248곳에 있다. 올해까지 전 세계 세종학당에서 한국어를 배운 외국인은 70만명에 달한다.

“나에게 한국어란?” 이 질문에 다섯 명의 외국인은 “세계로 나갈 수 있게 해준 날개” “새로운 세상을 여는 기회”라고 답했다. 왼쪽부터 어츠빌렉(몽골), 필리스 은디안구이(케냐), 응웬 투 후웬(베트남), 일라이다 아심길(독일), 리아 마우러(브라질). /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왜 하필 한국어였나

-어떻게 한국어를 배우게 됐나요?

필리스 은디안구이(이하 필리스): “집안 형편이 안 좋아서 고교만 마치고 극장에서 연극을 했어요. 어느 날 극장 동료가 신문에서 세종학당 얘기를 보고선 공짜로 한국어를 가르쳐주는 곳이 있으니 가보자고 하더라고요. 한국에 대해 거의 모를 때였는데 공짜라니까 한번 가봤죠. 근데 뭐야, 외국어인데 너무 쉽고 재밌는 거예요!”

어츠빌렉: “저도 친구 따라 강남 간 경우예요. 고교 때 몽골 다르항이란 도시에서 수도 울란바토르로 이사를 갔어요. 처음 사귄 친구가 전교 1등이었는데, 세종학당에서 한국어를 공부한대요. 걔랑 친하게 지내고 싶었어요. 그맘때쯤 한국 드라마 ‘야인시대’에 빠져 있기도 했고요.”

리아 마우러(이하 리아): “시작은 저도 드라마 때문이에요. ‘대장금’을 진짜 재밌게 봤어요.”

응웬 투 후웬(이하 응웬): “중학생 때부터 워낙 한국 드라마와 K팝을 좋아해서 한국어를 배우고 싶었어요. 한국 유학이 꿈이었죠. 대학 입학하고 나서야 아르바이트하면서 돈을 벌어 세종학당에 등록했어요.”

일라이다 아심길(이하 일라): “할아버지가 튀르키예 6·25 전쟁 참전용사세요. 부모님은 튀르키예인이고 독일로 이주해서 제가 태어났죠. 할아버지를 통해 한국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는데, 사실 제대로 한국어를 배우게 된 건 한국 드라마와 K팝 때문이었어요. 고교 때 전학 온 한국인 친구의 아버지가 대사관에서 일하셨어요. 그 친구 소개로 세종학당에 다니게 됐고 배우면서 한국어와 한국 문화에 점점 매료됐어요.”

6·25전쟁 참전 용사의 손녀인 튀르키예계 독일인 일라이다 아심길씨.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지금은 무슨 일을 하나요.

필리스: “숙명여대에서 석사까지 마쳤고요. 지금은 케냐 나이로비 세종학당으로 돌아가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어츠빌렉: “한국공학대(구 산업기술대)에서 학부와 석·박사를 모두 마친 뒤 같은 대학 교수가 됐어요. 에너지 정책을 강의하면서 국제교육센터 학술 연구 교수로도 일하고 있습니다. 유학생들의 비자·보험 등 각종 행정 업무를 도와주고, 유학생 학습력을 높이기 위한 프로그램도 기획하고 있어요.”

리아: “한예종에서 사진과 홀로그램을 공부하고 있어요. 첫 홀로그램 전시를 안동 하회탈로 했고요.”

응웬: “통·번역 프리랜서로 일하는 중입니다. 무역 분야에서 주로 통역 업무를 했고, ‘런닝맨’ 베트남 자막 번역도 담당했어요. 작년엔 법정 통·번역인 인증 시험을 통과했어요. 한국어를 못하는 외국인이 재판받을 때 법정 진술을 통역하는 일이에요.”

일라: “유튜브와 인플루언서로 활동하고 있어요. 한국관광공사와 협업해서 한국을 소개하는 콘텐츠를 만들기도 했고, 국가보훈부 지원으로 재방문 참전용사 통역도 맡고 있고요. 9월에는 한국외국어대 대학원 국제학과에 입학해요.”

브라질 세종학당에서 한국어를 배워 현재 한예종에서 홀로그램을 전공하고 있는 리아 마우러씨.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한국어를 배운다고 할 때 주변 반응은 어땠나요.

일라: “2017년 처음 한국어 공부를 시작했을 땐 다들 의아하게 생각했죠. 그때만 해도 독일 세종학당에는 비즈니스 때문에 한국어를 배우는 연세 좀 있는 분들이 대부분이었거든요. 친구들은 ‘North(북한)?’냐며 놀리기도 했어요, 하하. 이젠 반대로 감탄해요. ‘모든 것의 중심이 한국이 될 줄 어떻게 알았어?’라고요. 요새는 세종학당에 대기가 많아서 기다려서 배운대요.”

필리스: “부모님이 왜 하필 한국이냐고 했어요. 너무 먼 나라니까요. 세계지도를 펴서 한국이 정확히 어디 있는 나라인지 짚어보라고 했지요.(웃음) 그런데 저를 시작으로 언니와 두 남동생까지 한국에 와서 공부했어요.”

응웬: “전 주변에 한국이 좋다고 너무 많이 얘기했나 봐요. 제가 한국 올 줄 다들 알았대요, 하하.”

베트남 세종학당에서 한국어를 배우고 한국에서 통번역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는 응웬 투 후웬씨.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존댓말 어렵지만 “괜찮아”에 다시 도전

-생판 외국어라 어려웠을 텐데.

어츠빌렉: “다른 건 괜찮은데 줄인 말이 많고 신조어가 정말 빨리 바뀌어요. 옛날에는 저도 신조어를 들을 때마다 주변에 뜻을 물어보고 써보려고 했는데, 금방 안 쓰는 말이 되어버리더라고요. 어휴, 이젠 그냥 포기했어요.”

-리아: “저는 존댓말이요. 먹다, 드시다, 잡숫다…. 같은 말인데도 어휘가 완전히 다르니까 머리가 아파요.”

존댓말 얘기가 나오자 너나 할 것 없이 “맞아, 맞아” “나도”라며 맞장구를 쳤다.

필리스: “친구들이랑 반말하다가 존댓말을 쓰려고 하면 전환이 잘 안 돼요. 가끔 ‘저 진지 드셨어요’ 이렇게 저를 높여버릴 때도 있어요.”

-지금 다들 존댓말 잘하시는데요.

일라: “야단맞으면서 배우니까 되긴 되더라고요, 하하!”

-좋아하는 한국말이나 단어가 있다면.

리아: “저는 ‘괜찮아’가 제일 좋아요. ‘괜’도 ‘찮’도 어려운 글자지만 하도 많이 들어서 금방 익혔어요. 실수할 때마다 선생님이 항상 그랬거든요. ‘리아, 괜찮아요. 다시 해봐요.’ 노래도 있잖아요. ‘괜찮아, 잘될 거야~’.”

일라: “모든 의성어와 의태어! 바삭바삭, 쓰담쓰담, 폭신폭신, 보글보글…. 독일어나 영어엔 이런 말이 없어요. 동사나 형용사만 쓸 때보다 훨씬 많은 걸 표현할 수 있게 해줘요. 한 번 알고 나니까 이런 표현이 없는 영어나 독일어를 할 때 답답하더라고요.”

필리스: “저는 ‘아이고’요. 놀랐을 때 아이고!, 답답할 때 아이고오~, 기쁠 때 아이고아이고!, 억양만 좀 다르게 하면 정말 많은 말을 대체해주거든요. 아이고, 너무 입에 붙어서 탈이에요. 가끔은 한국어 못하는 척하고 싶을 때가 있는데, 저도 모르게 ‘아이고’가 튀어나오는 바람에 한국어 할 줄 아는 걸 들킬 때도 있어요.(웃음)”

어츠빌렉: “저는 ‘가능하다’라는 말이 좋아요. 외국인으로 살면서 비자 받으러 갈 때나 학교에서나 어딜 가든 늘 듣고 싶었던 말이라서 그런지 같은 뜻의 몽골어보다 한국어로 들을 때 더 좋더라고요. 제가 학생들한테 해주고 싶은 말이기도 해요.”

몽골 세종학당 출신인 어츠빌렉 한국공학대 교수.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한국어, 운명처럼 찾아왔다

-앞으로 꿈이나 목표가 있다면.

어츠빌렉: “전 에너지 연구로 박사 학위를 땄어요. 몽골은 세계 10대 자원 보유국인데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늘 에너지 부족에 시달려요. 언젠가는 몽골의 에너지 문제를 해결하는 데 기여하고 싶어요. 다만 아내도 몽골 사람인데 한국이 너무 좋다고 돌아가기 싫어해서 어떨지 모르겠어요, 하하.”

필리스: “케냐 대학에 한국어를 연구할 수 있는 학과를 만드는 게 목표예요. 스와힐리어로 한국어를 배울 수 있는 교재도 만들고 싶어요. 스와힐리어는 탄자니아, 브룬디 같은 아프리카의 많은 나라들에서 쓰는 언어예요. 정말 많은 아프리카 사람들이 그 책으로 한국어를 배울 수 있을 거예요.”

필리스씨 말에 일라이다씨와 응웬씨가 손뼉을 쳤다. “오 언니, 부자 되겠다!”

응웬: “한국 유학이라는 목표도 달성했고, 한국에서 인생의 짝을 만났어요(응웬씨는 한국 남자와 결혼했다). 꿈 하나는 이뤘어요. 제가 많은 도움으로 한국에 잘 자리를 잡은 만큼 앞으론 저도 누군가를 돕고 한국과 베트남을 잇는 일을 하고 싶어요.”

한국에서 유학한 뒤 다시 케냐로 돌아가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는 필리스 은디안구이씨.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한국어가 인생을 바꿔놨어요.

필리스:“한국어를 안 배운 삶은 상상하기도 어려워요. 하지만 전 한국어로 인생이 바뀌었다기보다 제대로 길을 찾은 편에 가까워요. 제가 한국어 선생님이 되겠다고 했더니 아빠가 ‘너 그럴 줄 알았다’ 하시더라고요. 저조차 잊어버리고 살았는데 어렸을 때 꿈이 선생님이었거든요. 꼬맹이 때 아빠가 조그만 칠판을 사줬는데 그걸 안 버리고 계시더라고요. 제가 언젠가는 선생님 할 줄 아셨대요. 물론 가르치는 게 한국어일 줄은 저도, 부모님도 꿈에도 몰랐지만요.”

다섯 명에게 ‘팔자’라는 말을 아냐고 물었다. 응웬씨가 “타고난 운명”이라고 답하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리아: “취미로 배운 한국어로 하고 싶은 일을 하게 될 줄은 저도 몰랐어요. 전 대학에서 예술을 전공하고 홀로그램을 더 깊이 연구하고 싶었는데 브라질에선 기술적으로 홀로그램을 배우는 곳밖에 없었어요. 한예종은 예술 학교인데 홀로그램 전공이 있길래 바로 장학 프로그램에 자원했어요. 운명 같았죠.”

일라:“한국어만 배웠는데 계속 새로운 세상이 열리고 있어요. 유튜브, 방송, 통역…. 전 스물넷이고, 무슨 일을 하게 될지 아직 모르지만 가능성이 많아요. 70년 전 할아버지가 군인으로 이 나라에 발을 디뎠는데, 이제 손녀가 그 땅에 돌아와 씨를 뿌리고 있는 거예요. 마치 정해져 있던 것 같아요. 저도 몰랐지만 한국어가 제 ‘팔자’였나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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