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함께 살고, 70년을 홀로 남편 그리워한 ‘이중섭의 最愛’
예술가 신화 벗기고 ‘남편 이중섭’에 초점
미술사학자가 연구한 이중섭의 작품들
이중섭, 그 사람
오누키 도모코 지음|최재혁 옮김|혜화1117|380쪽|2만1000원
이중섭, 편지화
최열 지음|혜화1117|320쪽|2만4500원
요즘 유행하는 ‘최애(最愛)’라는 말을 이미 70년 전 즐겨 쓰던 한국 남자가 있었다. ‘국민 화가’ 이중섭(1916~1956). 그는 일본인 아내 야마모토 마사코(山本方子·1921~2022)에게 보낸 편지에서 아내를 이렇게 불렀다. “나의 소중하고 소중한 최애(最愛)의 사람 남덕군”, “나의 최고 최대 최미(最美)의 기쁨, 그리고 한없이 상냥한 최애(最愛)의 사람, 오직 하나의 현처(賢妻)인 남덕군”…. ‘남덕(南德)’은 이중섭이 1945년 본가가 있던 원산에서 결혼식을 올린 직후 아내에게 남쪽, 즉 일본에서 온 덕이 있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붙여준 이름이다. 부부는 한반도에서 7년간 함께 살았고, 이후 아내가 두 아들을 데리고 일본으로 돌아가면서 현해탄을 사이에 두고 죽 떨어져 있었다. 1956년 사망한 이중섭이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화가’로 자리 잡는 동안 아내는 70년을 그리움 속에 살았다. 오는 13일은 야마모토 여사의 1주기. 이를 기념해 일본 여자 오누키 도모코(48·마이니치신문 정치부 기자)와 한국 남자 최열(67·미술사학자)이 이중섭에 대해 쓴 책이 같은 출판사에서 나란히 나왔다. 지난 9일 이들 두 사람을 서울 광화문에서 만났다.
◇7년을 함께 살고, 70년을 그리워하다
“단 7년을 함께 살았고, 70년을 떨어져 있었는데 계속 사랑하는 게 가능할까? 그 궁금증 때문에 오랫동안 이중섭을 취재할 수 있었어요.”
오누키 도모코가 이중섭에게 관심을 가지게 된 건 서울 특파원으로 일하고 있던 지난 2016년 6월. 이중섭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조선일보사가 국립현대미술관 등과 함께 주최한 특별전 ‘이중섭, 100년의 신화’를 관람하면서다. 한국 부임 4년 차, 연일 골이 깊어지는 한일 관계를 취재하느라 피로감에 젖어 있던 그에게 한국을 대표하는 화가와 일본인 아내의 이야기가 위로가 되었다. 전시 관람에 그치지 않고 이중섭 부부의 행적을 찾아 나섰다. 일본대사관에 협력을 요청해 그해 9월 도쿄에서 95세의 야마모토 여사를 만나 인터뷰했다.
인터뷰를 마친 2주 후, 제주도를 찾았다. 6·25 전쟁을 피해 원산을 떠난 이중섭 부부가 1951년 1년간 머물렀던 곳이다. “2016년 11월 16일 자 마이니치신문 종합 1면에 이중섭 특별전 기사를, 종합 4면엔 이중섭 부부의 삶에 대한 르포를 보도했어요. 그 기사를 보고 쇼가쿠칸(小學館) 출판사 편집자에게서 연락이 왔어요. 이중섭에 대한 책을 내지 않겠냐고.”
본격적인 취재가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서울과 제주는 물론이고 부산과 통영 등을 누비며 이중섭의 자취를 낱낱이 좇았다. 2017년 8월과 2019년 7월, 두 차례에 더 걸쳐 야마모토 여사를 만났다. 그 과정에서 그간 공개되지 않았던 이중섭의 편지 등을 전달받을 수 있었다.
미술사적 지식은 2014년 ‘이중섭 평전’(돌베개)을 낸 미술사학자 최열의 도움을 받았다. 그렇게 쓴 책으로 2020년 쇼가쿠칸 논픽션 대상을 받았다. 일본 3대 출판사로 꼽히는 쇼가쿠칸이 1993년 상을 제정한 이래 한국 관련 책이 대상을 탄 건 처음이다. 수상 당시 책 제목은 ‘돌아오지 않는 강’이었지만 이후 단행본으로 출간됐을 때의 제목은 ‘사랑을 그린 사람’이었다. 이번에 한국에서 나온 책은 그 책의 번역본이다. 한국인에게 익숙한 이중섭에 대한 정보는 덜어내고 대신 그림과 사진 이미지를 추가했다.
◇더 이상 신화가 아닌 ‘인간’ 이중섭
오누키는 예술가의 ‘신화’를 벗겨내고 남편이자 아버지로서 인간 ‘이중섭’을 입체적으로 복원한다. 예술적 재능은 뛰어났지만 ‘생활인’과는 거리가 멀었던 남자. 생계를 위해 뼈아픈 이별을 감내하고 귀향해 양재(洋裁) 일을 하며 아이들을 키우는 아내에게 “왜 편지에 답장을 하지 않냐. 사흘에 한 번씩은 편지를 써 달라”고 칭얼대다가 “당신이 워낙 보고 싶어서 그랬지. 앞으로는 자식들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겠다”고 사과하는 ‘철없는 남편’ 이중섭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가족을 사랑하지만, 경제 관념 없어 도움이 안 되는 ‘근대적 예술가’의 특징을 이중섭은 그대로 가지고 있었어요.” 미술사학자 최열의 말이다. 그는 “마사코 여사는 강하고 반듯하고 센 사람이었어요. 그렇지만 그에게 남자는 이중섭 하나였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최열은 이번에 낸 책에서 이중섭이 가족에게 보낸 편지에 그린 그림 51점을 ‘편지화’라 명명, 학문적으로 연구했다. 1939년 도쿄의 문화학원 선·후배로 만나 두 사람이 교제하던 시절, 이중섭이 직접 그림을 그려 야마모토 여사에게 보낸 엽서 등을 소개한다. 관능적이면서 감각적인 그림. 남성을 상징하는 소가, 여성을 상징하는 오리의 목에 입맞춤하며 구애하는 장면을 그린 ‘소가 오리에게’가 대표적이다.
아내와 떨어진 이후 보낸 편지 그림에서도 가족이 나체로 복숭아 등과 어우러져 등장한다. 최열은 “인간과 자연이 하나라 생각하는 일종의 정령 숭배 신앙이 이중섭의 그림엔 담겨 있다. 그의 몸과 마음은 붓과 종이, 안료와 구분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오누키 책의 일본어판 표지는 이중섭이 1954~1955년 무렵 그린 은지화 ‘부부’. 남녀가 격렬하게 서로를 갈구하는 모습을 가느다란 선으로 표현했다. 오누키는 “일본에서 이 표지가 아주 호평을 받았다. 다만 신체의 은밀한 부위는 띠지로 가렸다”며 웃었다.
◇기다리고 그리워하는 행복
이중섭은 가족과 헤어진 지 1년 후인 1953년 7월,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어렵게 일본에 간다. 정식 여권이 없어 일주일만의 체류만 허가됐다. 그래도 영원히 돌아오지 않으리란 친구들의 예측을 깨고 정확히 일주일 만에 귀국한다. 이 일을 두고 ‘장모가 냉대하며 쫓아보냈다’는 억측이 일었다. 이중섭을 다룬 책과 연극 등에서도 그렇게 그려졌다. 이 일이 아내에게 평생의 상처로 남았다. 2016년 인터뷰에서 오누키가 “그때 남편을 그냥 보낸 걸 후회하지 않으세요?”라고 물었을 때, 마사코는 말했다. “설마, 그렇게 오랫동안 헤어지게 될 줄은. 설마하고 생각했어요. 정말로 자주 왔다갔다 할 수 있겠거니, 하고….”
‘가까운 일본을 오고 가는 게 그렇게 힘든 일이었을까’라는 오누키의 의문은 타국과의 교류가 막힌 코로나 사태를 겪으며 해답을 찾았다. ‘아, 그럴 수 있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 오누키는 “이 책을 쓰는 작업이 나의 세계를 넓혀주었다”고 말했다. “한일 국교 정상화가 되지 않았던 시절에도 부부를 도와주는 친구들이 많이 있었다는 점에서 ‘한일 관계를 오래 취재해왔다 생각했지만, 몰랐던 부분이 많았구나’ 생각했어요. 인간관계에 대한 시야도 넓어졌죠. 야마모토 여사는 이중섭을 ‘위해’ 살았다기보다는, 의무감이나 강박이 아니라 정말 자연스럽게, 이중섭이 좋아서 그렇게 사셨던 것 같아요. 그건 대단한 거죠. ‘아, 이런 행복도 있구나’ 깨달았어요. 기다리고 그리워하는 행복. 그렇게 살 수도 있구나, 사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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