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매도 보고서’ 매도(罵倒)하는 사회
지난 4일 김현수 하나증권 연구원이 2차전지 주(株) 에코프로에 대해 ‘매도(賣渡) 의견’을 담은 보고서를 내놓자, 온라인 주식 게시판은 육두문자로 도배됐다. 김 연구원에 대해 “X새끼” “공매도(주가가 내리면 수익을 내는 매매 기법) 세력 돈 먹은 X자식” 등 욕설이 난무하는 글이 수십 건 올라왔다. 김 연구원 사무실 전화번호를 올려놓고 “행동하자”고 하는 글도 있었다. 보고서는 “현 주가와 기업가치 간의 괴리가 크다”며 에코프로 적정 주가를 55만5000원으로 제시했다. 11일 종가는 113만7000원이다.
투자자들이 매도 의견을 쓴 애널리스트에게 ‘집단 린치’를 가하는 건 이미 일상이 됐다. 매도 보고서가 주가에 악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단체로 괴롭히는 것이다. 사무실에 끊임없이 항의 전화를 넣고 협박성 이메일을 보내는가 하면, 애널리스트가 일부러 주가를 내리려 한다는 투서를 금융 당국에 보낸다. 일부 합리적인 비판도 있지만, 무조건적인 비난과 조롱, 그리고 매도(罵倒)가 대부분이다. 매도 보고서를 써봤던 한 애널리스트는 “각오한 일이었지만, 욕설 전화로 정상적인 업무가 어려울 지경이었다”고 했다.
매도 보고서는 어떤 회사를 오랫동안 분석해 온 애널리스트가 회사의 실적과 업계 전망 등에 대한 의견을 종합해 ‘현재 주가가 과열됐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글로벌 증권사는 매도 보고서 비율이 10%가 넘지만, 국내 증권사들의 이 비율은 0.1%도 안 된다. 증권사들이 회사채 발행이나 인수합병(M&A) 등 금융 서비스의 ‘잠재적 고객’인 기업들 눈치를 보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최근 에코프로·에코프로비엠 등 대표적 2차전지 주에 대한 매도 보고서가 잇달아 나오고 있는 것은, 이 업종에 대해 전문가들이 ‘심각’ 단계의 경고등을 깜박인다는 뜻이다.
일부 주주들이 “주식 가격을 떨어뜨린다”며 애널리스트를 괴롭히는 것은 이런 경고등을 완력으로 꺼버리겠다는 것이다. 이들은 ‘애널리스트가 공매도 세력과 결탁했다’고 주장하지만, 구체적인 근거는 없다. 실제 지난 4월 김 연구원이 에코프로에 대해 첫 매도 보고서를 썼을 때 이런 결탁을 조사해 처벌해 달라는 내용의 민원이 금융감독원에 들어왔지만, 금감원은 ‘사실 오인(誤認)’이라는 이유로 민원을 기각했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매도 보고서’를 “주가가 곧 떨어진다” 혹은 “주가가 떨어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보고서로 오해해선 안 된다고 말한다. 그것은 분석(analysis)이 아니라 예견(prediction)의 영역이라는 것이다. 매도 보고서는 “회사의 적정 주가보다 현 주가가 높다”라는 의견을 말하는 것뿐이다. 애널리스트는 분석하는 사람이다.
의견이 다를 수 있다. 그렇다고 한 사람을 찍어 집단 화풀이를 하면 건강한 토론을 해칠 뿐이다. 요즘과 같이 시장 변동성이 큰 환경일수록, 애널리스트들이 이른바 ‘증권가 열풍’에 몸이 흔들리지 않고 소신껏 분석할 수 있는 업계 문화가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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