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볶이 포장마차 그녀의 이상한 계산법
[길해연이 만난 사람]
거리에서 만난 친구 보혜
깻잎 떡볶이 만드는 여자
오랜만에 그녀를 만나러 간다. 날이 덥다 못해 뜨거운데 이런 날도 나와 있을까? 헛걸음하면 어쩌나 걱정도 되지만 용기를 내 거리로 나선다.
나는 그녀에 대해 아는 것이 정말 없다. 나이가 몇인지, 어디서 어떻게 살다가 서울 수유역 7번 출구 옆에 자리를 잡게 되었는지 나는 모른다. 알고 있는 것이라곤 이름이 ‘보혜’라는 것과 얼굴이 애니메이션 영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나오는 여자 주인공과 정말 닮았다는 것뿐이다.
소녀 같은 그 두 볼은 늘 발갛게 달아올라 있다. 다섯 개의 불판 위에서 익어가는 음식들이 뿜어내는 열기 때문이다. 벌겋게 익은 얼굴로 깻잎 향 가득한 떡볶이를 담아내고, 심심한 듯 담백하게 어묵 국물 간을 맞추고, 지글지글 끓는 기름에서 튀김을 건져 올린다.
힘겨운 노동의 대가로 거둔 수익금 일부를 그녀는 아동 양육시설에 기부한다. 어떻게 기부를 하게 되었냐 물었을 때 그녀의 대답은 아주 간단했다 “그냥…. 그러고 싶었어요.” 어떤 포장도 거창한 의미 부여도 없었다. 그때 그녀에게 반했던 것 같다.
시간이 날 때면 그녀를 만나러 갔다. 포장마차 안 구석진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들고 나는 사람들 바라보는 게 좋았다. 그녀는 맛난 음식을 내주고 나는 그것을 오래도록 찬찬히, 하나도 안 남기고 먹어치운다. 그러다 눈이 마주치면 그녀나 나나 이유도 맥락도 없이 헤헤 웃곤 했었다. 서로에 대해 아는 것은 별로 없지만 얼굴 보면 반갑고 무어든 챙겨주고 싶다. 친구가 별거인가, 그렇게 우리는 거리에서 만나 친구가 되었다.
그녀를 알게 된 것은 6년 전 겨울 무지막지하게 추운 어느 날이었다. 안과에 가서 고장 난 눈을 치료받고 칼바람에 따귀를 맞으며 거리를 걸어가는데 춥고 배고프고 서러웠다. 당장 어디라도 들어가 몸도 녹이고 주린 배도 채웠으면 좋으련만. 혼자 식당 가는 게 멋쩍어서 쭈뼛대는 내가 한심했다. 그러다 발이 머문 곳이 그녀의 포장마차 앞이었다.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엉거주춤 서서 따끈한 어묵을 들어 한입 베어 무는데 그녀와 눈이 딱 마주쳤다. “어머!” 그녀와 나는 동시에 입술소리를 내며 정지 화면처럼 서로를 쳐다보았다. 그녀의 “어머”는 그 무렵 내가 출연하던 TV 드라마를 보고 있던 터라 알아보고 낸 소리였고, 나의 “어머”는 그녀가 만화영화 주인공과 꼭 닮아 놀라 나온 소리였다 .
그녀는 입을 동그랗게 모으고 “쉬!” 하며 집게손가락을 입술에 갖다대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내가 아는 척 안 할게요’ 하는 듯 눈을 비장하게 빛냈다. 거기 있는 사람 아무도 날 알아보지 못하는데 그녀만 혼자 다른 사람들을 살피며 내게 다가와 속삭이듯 물었다.
“떡볶이 좀 드실래요? 진짜 맛있어요. 순대도 새로 쪄서 맛있어요.”
그녀의 눈빛이 너무 진지해서 나까지 목소리가 작아졌다.
“순대는 안 주셔도 돼요.”
그렇게 처음 말문을 터서인지 다른 사람들이 없을 때도 괜히 눈짓으로 신호를 보내고 속삭이듯 말하는 게 우리의 버릇이 되었다.
어묵 서너개로 속이나 녹이고 가려던 나는 구석진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그녀가 내어 준 음식을 사양하지 않고 먹어치웠다. 처음 보는 사람의 호의는 보통 부담스러워 피하게 되기 십상인데 그녀는 좀 달랐다. 마치 오래전부터 알아온 사람처럼 무덤덤하게 그녀의 친절을 받아먹었다.
내가 그녀의 음식을 축내는 사이에 참으로 많은 사람이 오고갔다. 볼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자녀들을 위해 떡볶이며 튀김, 순대를 잔뜩 포장해 가는 어머니, 시간을 연신 확인하며 어묵을 거의 입에 쓸어담고 우물거리며 급하게 나가는 양복 입은 아저씨, 주머니의 돈을 탈탈 털어 가격을 묻고 또 물으며 주문하시는 할머니, 거리 청소를 하시다 국물 한 컵 얻어 가시는 미화원 아저씨. 오고 가는 길목에서 사람들은 잠시 그곳에 들러 언 몸을 녹이고 속을 덥히고 총총 걸음으로 제 갈 길 바삐 돌아간다. 그녀만 아침부터 밤 늦게까지 그 자리에 서서 사람들에게 온기를 나누어 줄 음식을 정성 들여 만들고 있었다.
그녀에게는 독특한 계산법이 있다. 손님 대부분은 자기가 먹은 것들을 알아서 셈한 뒤 돈을 놓고 가거나 “이체했어요” 하고는 휑하니 나가버렸다. 그녀는 먹은 음식과 돈 계산이 맞는지, 이체는 제대로 했는지 확인도 안 하고 고개를 푸욱 숙인 채 떡볶이만 열심히 휘젓는다. 아무리 고객을 신뢰한다고 해도 손해가 생길 수 있을 텐데, 속을 알 수 없었다. 나중에 물었더니 그녀는 쑥스러운 듯 말했다. “있어요, 계산 안 하고 했다고 하는 사람. 근데 괜찮아요. 오죽했으면… 이건 얼마 안 하잖아요.”
그런 그녀는 나와의 계산법에서는 눈치가 9단이었다. 몰래 돈을 놓고 나오면 귀신같이 알아채고 달려 나와 주머니에 다시 구겨 넣어준다. 한 번은 내가 놓고 온 돈을 도로 떡볶이 포장 안에 집어넣어, 집에서 포장을 풀던 어머니만 횡재했다며 기뻐한 일도 있다. 계좌이체도 해 보고 다른 선물을 사 들고 가 보기도 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몰래 돈을 놓고 가려는 나와 돌려주려는 그녀와의 실랑이는 결국 내가 먹은 음식 값을 기부 모금함에 넣기로 하면서 끝이 났다.
그렇게 착하기만 한 그녀를 오랜만에 만나러 간다. 한겨울에는 귀중한 피난처 역할을 해주던 포장마차가 이 폭염에는 어떨지 걱정이 앞선다. 다섯 개의 불판 앞에서 땀 흘리는 그녀의 모습이 저만치 보인다. 나는 늘 그래왔듯 다른 손님들 속에 섞여 뜨거운 어묵을 먹으며 그녀가 내가 온 걸 알아차릴 때까지 기다릴 것이다.
드디어 그녀 앞에 섰다. 어묵 하나를 들어 크게 한입 베어 물었다. 나를 알아본 그녀가 입술소리로 “어머” 인사를 한다. 그렇게 나를 반기는 그녀의 머리 위로 예쁘게 써놓은 글이 훈장처럼 반짝였다. “저희 깻잎 떡볶이는 아동 양육시설 ‘이든아이빌(Eden I ville)’에 수익의 일정 부분을 기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께 항상 감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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