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은의 고전 노트] 건강한 지구의 싱그러운 여름 향기
펄펄 끓는 날씨에 연이은 흉흉한 뉴스들까지, 세상이 미쳐 돌아가는 줄 알았다. 문제는 이것이 올해만의 ‘이변’이 아니라, 장차 우리의 기본 생존 환경이 되리라는 암울한 전망이다. 하지만 난폭한 변화에 휩싸인 세계를 제어할 어떤 미미한 능력도 가지지 못한 보통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 그저 고요히 멈춘 채로 숨을 천천히 쉬면서 오래된 소박한 시집을 읽는 것이 스스로를 견디고 아무것도 해치지 않을 현명한 길인지 모른다. ‘클로버 한 포기와 꿀벌 한 마리,/그리고 환상이 있어야 초원이죠./꿀벌이 보기 힘들면,/환상만 있어도 초원이죠.’(1755)
1830년 미국 매사추세츠주 애머스트에서 태어난 에밀리 디킨슨은 열 살에, 여학생을 받기 시작한 지 불과 2년째였던 애머스트 아카데미에 입학해 7년간 영문학, 라틴어, 식물학, 역사, 대수를 배웠다. 이후 학업을 중단한 그녀는 30년을 줄곧 병석에 누워 지낸 어머니를 돌봤다. 살림을 맡아 했으며, 결혼은 하지 않았고, 나중에는 사람들과 ‘대면’도 하지 않았다. 살아생전 디킨슨은 단 10편의 시를 발표했다. 그녀가 죽고 4년 뒤에, 여동생이 찾아낸 1800편의 시가 유고집으로 출판됐다. 디킨슨은 시에 제목을 붙이지 않았는데, 그래서 이 첫 전집 출판 때 창작 연대를 추정해 매긴 번호로 지금도 분류된다. 디킨슨 시집은 2년간 11쇄를 찍을 만큼 성공을 거뒀다. 그리고 오늘날까지 가장 사랑받는 미국 시집 중 하나로 꼽힌다.
외국어로 쓰인 시는 그 언어를 느끼기 전에 먼저 이해해야 하기 때문에 어렵다고들 한다. 디킨슨의 시는 짧고 직관적이다. 번역의 장벽을 편안하게 뛰어넘는 깊은 울림이 있다. 디킨슨의 시에서 지구가 건강했던 때의 싱그러운 여름 냄새를 맡는다. 돌이킬 수 없이 지나온 시간들이 애통하지만, ‘희망은 날개를 가지고 있다-/영혼에 앉아-/가사 없는 노래를 부른다’(254) 같은 구절을 읽을 때면 정말로 마음이 조금쯤 진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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