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 나도 범죄 예고… 자극적 콘텐츠가 ‘살인의 금기’ 깼다

김민정 기자 2023. 8. 12.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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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이슈 읽기] 잇따르는 흉기 난동

살인의 심리학

데이브 그로스먼 지음|이동훈 옮김|열린책들|512쪽|2만2000원

프로파일링 케이스 스터디

권일용 지음|EBS BOOKS|240쪽|1만5000원

“오락 산업은 군대와 정확히 똑같은 방식으로 젊은이들을 인간에게 총을 쏠 수 있는 자로 만든다.”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한 잇따른 흉기 난동 사건을 계기로, 언제 어디서든 목숨을 위협받을 수 있다는 공포를 우리 사회는 체감했다. 피해자의 근거리에서 이뤄지는 칼부림은 잔혹성과 대담성도 높을 뿐더러, 사건 이후 흉기 난동 예고 글을 써 검거된 다수가 10~20대였다는 점 역시 충격적이다. 사회가 왜 이렇게 ‘선을 넘은’ 것일까. 미국 군사 심리학의 고전으로 꼽히는 책 ‘살인의 심리학’이 제시하는 분석이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저자는 심리학자이자 군사학자이면서 직업 군인 생활도 했던 데이브 그로스먼 전 미 육군사관학교 교수. 군대가 어린 신병들에게 하듯 미디어가 살인에 대한 일반인의 ‘심리적 금기’를 깨트린 결과, 총을 쏘거나 칼로 찌르는 것 같은 ‘가중 폭행’ 범죄가 늘었다는 설명이다.

◇범죄자는 반드시 동기가 있다

이를 다루기 앞서, 불특정 다수를 향한 범죄를 ‘묻지 마 범죄’라는 유형으로 구분해 사회부적응자나 정신질환자의 이상 행동으로만 접근해선 반쪽짜리 문제 해결밖에 안 된다는 점을 짚을 필요가 있다. 프로파일러로 활동한 권일용 범죄학 박사는 그의 책 ‘프로파일링 케이스 스터디’에서 “’묻지 마 범죄’라는 말엔 동기가 불분명하다는 의미가 들어있는데, 학계에서는 적절하지 않다고 본다”며 “범죄자는 반드시 동기를 가지고 있다”고 했다. 이들의 동기는 공통적이었다. ‘자신이 처한 문제와 분노의 감정을 누군가를 향해 발산하겠다는 의도’, ‘자신이 갖지 못한 것을 가진 이들을 파괴하고자 하는 심리적 기제’ 등이다.

주목해야 할 점은 피해자가 ‘불특정 다수’였다는 것이 아니라 이들이 매우 무감각하게 ‘살인을 실행에 옮겼다’는 것이다. 그로스먼에 따르면 사람은 자신과 같은 인간을 죽이는 데 아주 강한 거부감을 갖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는 전쟁터에서 잘 관찰됐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연구에 따르면 참전한 미군 소총수 중 적군에게 총을 쏜 비율은 15~20%에 그쳤다. 대부분은 적군을 겨냥해 쏘지 못한 것이다. 전장에서 수거된 총기의 90%는 장전되었으나 쏘지 않은 총이었고, 절반 가까이는 중복 장전만 여러 차례 돼 있었다.

이후 군대는 군인들의 거부감을 억누르고 적군을 죽일 수 있도록 각종 훈련 기법을 개발한다. 대표적인 것이 원형 표적을 사람 형태에 가깝게 바꿨다. 갑자기 튀어나오게 해 반사적으로 쏘게 훈련했고, 명중하면 표적이 뒤로 넘어지며 즉각적인 반응을 얻게 했다. 명중하면 빨간 페인트를 내뿜기도 했다. 훈련 중 ‘죽여 죽여’ 같은 훈련 구호를 썼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적군을 향해 총을 쏜 비율은 한국전쟁에서 55%로, 베트남전에서 90~95%까지 올랐다.

◇잔혹 영화·게임, 살인에 대한 저항감 낮춰

그로스먼은 전쟁터에서 살인은 불가피하며, 군인들은 자신의 임무를 충실히 한 것이라는 점을 밝힌다. 다만 이 훈련 기법을 닮은 오늘날의 게임이나 영화가 일반인을 대상으로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 문제라고 주장한다. 총이나 칼로 사람을 죽이는 실감 나는 게임, 복수를 위한 영웅들의 살인을 정당하게 포장하는 영화 등의 서사가 ‘사람 모양 표적’ 사격 훈련처럼 살인에 대한 저항감을 낮춘다. 사람들은 살해 장면이 나오는 잔혹한 영화를 음료와 군것질 거리 등과 함께 즐기며 더욱 무감각해진다. 저자는 “미 정부의 노력은 이런 영화들 앞에서 명함도 못 내민다”며 “한 세대 전체를 암살자와 살해자로 길러낸다는 명확한 목표가 있다면, 그 목표를 이보다 더 효과적으로 수행하는 방법을 찾기도 아주 어려울 것”이라고 비판한다. 실제로 2010년 잠원동에서 모르는 이에게 칼을 휘둘러 살해한 범인(당시 23세)은 칼싸움 격투 게임을 매일 6시간씩 했고 게임 중독으로 모방 범죄를 저질렀다고 자백하기도 했다.

사회 경제적 양극화 등으로 점점 멀어지는 사람 사이의 ‘심리적 거리’도 폭력을 쉽게 만드는 요인이다. 인간성이 배제될 때 폭력이 쉬워지기 때문이다. 모방 범죄에는 군대에서 나타나는 ‘집단 면죄’ 심리가 비슷하게 작용한다. 서로의 행동을 반영하며 결과적으로 공격성의 강도를 높이게 되며, 책임이 희석된다고 느끼게 된다.

미디어에 담긴 잔혹성이 범죄와 연결된다는 논리는 근거 없다는 반론도 강력하게 제기된다. 전쟁 게임을 즐긴다고 해서 전쟁을 일으키는 것은 아니다. 그로스먼의 주장은 논쟁적이지만 “우리는 죽음을 고귀하게 다루는 예의를 어디서 잃어버린 걸까?”라고 물어볼 수는 있지 않을까.그로스먼은 “사회에서 유일한 연결 지점은 미디어다. 미디어는 우리를 하나로 뭉치게 하는 데 힘써야 한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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