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남수의 視線] 평화를 위협하는 통일부를 폐지하라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으로 시작하는 우리 헌법 전문은 “조국의 민주개혁과 평화적 통일의 사명에 입각하여 정의·인도와 동포애로써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하고…”라면서 평화적 통일을 사명으로 규정하고 있다. 제4조에도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 정책을 수립하고 추진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평화적 통일’이 헌법 정신인 셈이다. 여기에 제69조에는 ‘조국의 평화적 통일’이 대통령의 책무임을 선서하도록 하고 있다.
우리가 지상과제로 삼고 있는 ‘평화적 통일’은 무엇인가.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가 있듯 진정 통일이 최고의 가치인가. 그렇다면 다음을 고려해야 한다. 먼저 통일 방법이 다양하다는 점이다. 희생을 감수하더라도 무력을 사용해 통일을 할 수도 있다. 북진통일이 그것이다. 또한 직접적 공격을 통한 점령이 아니더라도 북한 스스로 무너지면서 통일이 될 수도 있다. 이 역시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 미국과 중국 등 주변국의 간섭도 예상된다.
반면 남북한 당사자 간의 합의에 의한 통일도 가능하다. 우리가 강조하는 평화적 통일이 이에 해당한다. 다만 앞에 ‘평화적’이란 전제가 있으면, 상황은 많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평화적 통일이란 무력 사용이 없어야 함은 물론, 어떠한 희생도 발생해서는 안 된다. 동등한 조건에서, 민족애적 원칙을 가지고 진지한 대화가 전제돼야 함은 물론이다. 동시에 한반도 주변국과의 합의도 필요하다. 돌이켜 보면, 남북이 갈라진 것도 강대국 간의 대립의 결과 아니었는가. 평화적 통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극한의 인내가 필요한 이유다.
한편 윤석열 정부의 대북 정책 기조를 보면, 힘에 의한 우위를 바탕으로, 특히 한미일 동맹을 기본으로 삼고 있다. 강력한 동맹관계 정립은 북한은 물론 중국에 대응하는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과 맞닿아 있다. 이것이 현실화한 것이 ‘대북 강경기조’다. 윤석열 정부의 대북 강경정책은 북한의 반발을 불러왔다. 한미일 동맹강화는 중국의 견제심을 자극했다. 이는 한반도 긴장 고조로 나타났다. 북한과의 교류 협력의 중심인 통일부의 역할이 축소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됐다.
실제로 윤석열 대통령은 통일부를 향해 ‘대북지원부’라고 했다. 통일부가 대북 지원사업에 매몰되어 왔다는 것이다. 윤 대통령의 통일부에 대한 인식의 일단이 드러난 계기가 됐다. 최근 통일부 조직개편과 축소도 이같은 인식에서 비롯됐다. 1969년 국토통일원으로 시작된 통일부는 출범 당시에는 통일문제를 다루는 연구기관의 역할에 그쳤지만, 1990년 남북 최초의 고위급 회담이 성사되면서 부총리 부서로 격상되기도 했다. 2000년대에는 남북정상회담이 이뤄지는 등 통일부의 역할이 날로 커졌다.
하지만 2010년 남북한 경제교류를 제한했던 이명박 정부의 5·24조치와 천안함 폭침사건 등으로 남북관계는 악화되어 갔다.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폐쇄는 그나마 유지되어 오던 최소한의 관계마저 끊어지게 했다. 자연히 통일부의 역할도 축소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2018년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불어온 한반도 평화의 바람은 다시한번 국민을 설레게 만들었다. 통일부의 역할도 다시 커졌다. 그러나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이 잇달아 열리면서 다시 훈풍이 부는 듯했지만, 하노이 노딜 이후 다시 한반도는 적막감에 빠졌다. 서로를 향한 노골적인 적대감 속에 국민의 마음은 타들어 갔다.
이런 상황에서 윤석열 정부가 들어섰고, 한미일 동맹강화는 한반도에 긴장감을 높였다. 그리고 대북 강경파로 알려진 김영호 신임 통일부 장관이 취임했다. 그의 취임과 함께 통일부의 조직축소는 북한정책에 대한 대대적인 변화를 예고하는 신호였다. 무엇보다 북한과의 교류협력에 대한 지원사업보다는 북한 인권 문제 등을 우선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반발은 당연한 수순일 것이다. 하지만 정부는 이를 감수하면서 이같은 기조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통일부의 존재 가치가 소멸하고 있음을 상징한다.
지난 2일 문재인 정부에서 통일부 장관을 지냈던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윤석열 정권이 전방위적으로 통일부 무력화 공세를 하고 있다”면서 이는 “평화적 통일을 대한민국의 사명이자 대통령의 책무로 명시하고 있는 헌법을 위반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대화와 교류협력이 막혀있을수록, 긴장이 격화될수록 대화의 물꼬를 트는 노력을 강화해야 하는데, 그 역할이 바로 통일부”라고 주장했다. 경제를 위해서도 기본적 평화는 유지돼야 하는데, 유독 윤석열 정부는 이를 무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통일을 만고불변의 지상과제라고 여기는 것 자체가 평화를 위협한다고 주장한다. 통일의 주체가 누구인가부터, 어떤 방법으로 통일을 이룰 것인가 등 매우 다양한 변수가 있다는 것이다. 적대적인 상황이 연출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반면 평화를 어떻게 이룰 것인가를 고민한다면, 적대감보다는 상호 존중의 가치중립적 상황에서 얼마든지 실현가능한 방안을 찾을 수 있다. 대화와 조정을 통한 상황관리가 평화라는 결실을 가져올 수 있는 까닭이다.
통일부 축소를 놓고 서로 격돌하고 있는 상황은 어쩌면 오늘의 한국 정치의 현실에서는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만큼 남북관계 못지않게 진영 간 화해하기 어려운 골이 깊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도발적인 문제 제기이지만, 차라리 통일부를 폐지하자는 것이다. 앞서 통일도 ‘평화적’이라는 말에 주목하듯, 통일부 폐지 주장도 ‘차라리’라는 말에 방점이 있음을 밝힌다. 또한 전제는 통일부가 남북한 교류협력을 통한 화해와 평화 구축이라는 본연의 책무를 외면했을 때이다. 아, 갑자기 ‘현타’가 온다. 통일부 폐지를 주장하다니? 그야말로 역설의 시대다. 2023년 8월 15일, 무거운 마음으로 광복 78주년이자, 분단 78주년을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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