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재밌는 거였어?” 여성극 부활 조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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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욘드 스테이지] ‘여성국극 레전드 춘향전’ 리허설 보니
“춘향아, 너와 헤어질 생각을 하니 눈앞이 캄캄하다”(이도령)
“도련님, 헤어지다뇨? 설마 제가 안 따라 갈까봐요?”(춘향)
“15세 느낌을 살려야 돼요. 쓰다듬듯이 볼을 만져야죠.”(연출)
“아직 안 익어서 그래요. 잘할 수 있어요.”(이도령)
전성기 땐 극성팬과 결혼사진까지 찍어
여성국극은 1948년 탄생한 한국 최초의 뮤지컬이다. 판소리를 바탕으로 하지만 남장 여배우를 포함해 여성들만 무대에 서는 파격적인 장르로, 1950년대 푸치니 오페라 ‘투란도트’를 재해석한 ‘햇님달님’ 등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공연을 놓치지 않으려다 극장 안에서 출산을 한 관객도 있고, 극성팬 성화에 가상 결혼사진까지 찍어줘야 했다니, 이들이 바로 ‘원조 아이돌’이다.
국악계 남성 중심으로 재편, 설자리 잃어
그런데 최근 들어 부활 조짐이 보인다. 국극을 소재로 한 웹툰 ‘정년이’가 인기를 끌자 올해 초 국립창극단이 동명 창극을 선보였고, 김태리 주연의 드라마도 제작 중이다. 꺼질 듯 꺼질 듯 용케 세월을 버텨온 국극의 생명력의 근원은 뭘까. “전통에 바탕한 민속예술이지만, 50년대에 미러볼을 돌렸을 정도로 화려한 장르”라는 게 조영숙 선생의 말이다. “같은 사랑가를 불러도 판소리와는 소리길이 다릅니다. (판소리 버전과 여성국극 버전을 차례로 시연한 후) 이렇게 감정이 다르니 춘향이 안 미칠 수 없겠죠.(웃음) 이게 여성국극의 본질이에요.”
■ “창작 뮤지컬 콘텐트 국극, 미래무형유산으로 개발돼야”
Q : ‘레전드 춘향전’은 어떻게 다른가.
A : 박 “춘향도 2명, 몽룡도 2명이다. 70대인 2세대와 30대인 3세대가 엇갈려 짝을 이루고 90대인 1세대는 월매와 이방 역을 맡아 1,2,3세대가 하모니를 이룬다. 눈대목 중심으로 압축하면서 결말은 열어 둘 거다. 어사출두 전에 옥중가에서 마무리 짓는 게 여운이 남는다 생각한다.”
A : 황 “많은 분들이 국극을 전통장르라 생각하지만, 1940년대 후반 생겨난 창작뮤지컬 콘텐트라는 걸 강조하고 싶다. ‘제작소’인 만큼 시행착오도 겪으면서 대중과 가까워질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찾으려고 한다.”
Q : 선배들이 사재를 털어 이어왔는데.
A : 박 “이제 선생님들이 연세도 많으시고, 더 이상 개인의 힘으로 할 수 없다. 지금 시점에 우리가 적을 두고 있는 안산시를 국극의 메카로 삼아 관심 있는 사람들이 찾아오게 만들려고 한다. 아직 여성국극에 호의적인 분위기가 아니라서 어렵지만, 이번 공연은 크라우드 펀딩도 하고 안산문화재단의 지원도 좀 받아서 공동주최로 준비하고 있다.”
Q : 국극 부활에 열심인 이유는.
A : 황 “어려서부터 무대를 봐서 얼마나 매력적인 장르인지 안다. 한 번만 보면 매력에 빠지게 할 자신이 있는데 그 한 번의 기회가 없었다. 전성기를 누린 1세대에게 이번이 마지막 무대가 될 텐데, 내가 느꼈던 희열과 감동을 다시 느껴볼 수 없다는 게 너무 안타깝다.”
A : 박 “남장의 매력은 현실의 남자들에게 강요할 수 없는 섬세한 이상형에 대한 판타지 때문이었다고 본다. 지금은 그런 옛날 맛을 한 번만이라도 느껴 보라는 의미지만, 앞으로의 행보는 과거 답습이 아니라 현 시대와 호흡할 수 있는 창작을 많이 할 거다. 사랑이야기만 중요한 게 아니라 다양성을 보여줄 수 있는 무대로 만들고 싶다. 여성국극은 다양성과 대중성, 포용성으로 만들어진 장르고, 안산이 메카가 될 수 있는 이유도 그 세 가지를 가진 도시라서다.”
연습실에는 여성만 있는 건 아니었다. 두 사람의 판소리 제자인 안병도 단원국악예술단장이 ‘운영위원장’이란 직함으로 홍보와 실무를 거들고, 서울예술단 최병규 지도위원이 연출을 맡아 연기지도에 열심이었다.
Q : 여성국극은 고정적 젠더 관념을 강화한다는 비판도 있었다.
A : 황 “우리 목표는 젠더 해체다. 그 옛날엔 여성이 뭔가를 만들어내는 게 정말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에 굳이 여성이라는 구분이 붙은 것이고, 그런 역사적 아픔이 있다고 생각해서 여성국극이라는 명칭을 굳이 가져가는 거다. 요즘 흔한 젠더 프리극 중 하나로 볼 수도 있지만, 장르의 정체성을 중심에 두고 현대와 소통하려고 한다.”
A : 박 “그래서 남성 제작진과 같이 만든다. 좀 같이 나서줘야 예술적 장르로서 대명사가 될 수 있지, 여성들끼리 으쌰으쌰하면 동호회에 그칠 수 있다. 예술적 가치를 충분히 보여줄 수 있는 기회를 남녀가 같이 만들어야 지역에서 전국으로, 또 세계로 뻗어나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Q : 지속 가능하기 위한 과제라면.
A : 박 “국극이 무형문화재가 돼야 한다는 선배도 있지만, 전통으로 물러나 도태되는 건 바라지 않는다. 국극은 태생부터 전통이 대중적으로 다가가기 위해 만들어졌고, 미래무형유산으로서 지속적으로 개발되어야 하는 장르다. 그러려면 먼저 지자체의 협조가 필요하다.
A : 황 “그래서 안산문화재단과 많은 얘기를 하고 있고, 이번 공연도 ASAC(안산문화예술의전당 기획 프로그램) ‘주목과 발견’ 시리즈의 첫 프로젝트로 출발하게 됐다.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해 인재도 기르고, 여성국극만으로 살아갈 수 있는 지평을 여는 것이 최종 목표다.” 」
유주현 기자 yj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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