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칼럼] 교사를 악당으로 만들기 전에

조미현 2023. 8. 12. 0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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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가 겪는 불편조차 학대로 인식
교권침해 무기가 된 아동학대법
지나친 개념 확대의 부작용
불행 과장하고 소송 남발하기도
"이기적으로 키운 아이, 족쇄될 것"
학부모가 명심해야 할 경고
조미현 금융부 기자

한 초등학교 교사의 비극과 ‘갑질 논란’을 일으킨 교육부 사무관 사건을 계기로 공개된 교권 침해 사례를 보면 지금의 교육 현장에서 아동학대란 말이 남용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교사가 학생의 싸움을 말리는 과정에서 아이를 붙잡았다고 폭력이라고 하거나, ‘똑바로 앉으라’는 지시가 아이에게 위협적이었다며 정서적 학대라고 주장하는 사례도 있었다. 자녀가 겪는 물리적, 정신적 불편을 아동학대로 싸잡아 교사를 옥죄는 현실이다. 아동학대법이 교권 침해의 무기가 되고 있다는 일각의 지적은 지나치지 않다.

아동학대는 보호자를 포함한 성인이 아동의 건강 또는 복지를 해치거나 정상적 발달을 저해할 수 있는 신체·정신적·성적 폭력, 가혹행위를 하는 것과 아동의 보호자가 아동을 유기하거나 방임하는 것(아동학대법)을 말한다. 폭력은 남을 거칠고 사납게 제압할 때 쓰는, 주먹이나 발 또는 몽둥이 따위의 수단이나 힘이고, 가혹행위는 상대에게 심한 수치심이나 모욕감, 고통 따위를 주는 모질고 악한 행위(네이버 사전)다. 법적·사전적 의미를 따져보면 아동학대는 교사의 당연한 지도에 함부로 이름 붙일 만한 성격의 것이 아니다.

지나친 개념 확대가 모두를 병들게 하는 것 같다. 호주의 심리학자 닉 헤이즐램 멜버른대 교수는 2016년 논문에서 이런 현상을 ‘개념 크리프(concept creep)’라고 규정했다. 초기 심리학에서 학대(abuse)는 신체적 학대와 성적 학대 등 두 가지 형태로 인식했다. 이후 정서적 학대까지 개념이 확대됐고, 협박·위협·비하와 같은 행동도 학대로 규정됐다. 아동에 대해서는 적절한 보살핌과 관심이 결여된 방임까지 학대의 범주에 포함됐다. 이렇다 보니 훨씬 경미하거나 미묘한 행동까지 학대로 부풀려질 가능성이 있다고 논문은 지적했다.

개념의 확대는 피해에 대한 사회적 민감도와 도덕적 관심이 커진 데 따른 현상이기도 하다. 한국에서는 2년 전 민법상 부모의 체벌을 허용한 조항이 폐지됐다. 더구나 부모나 보육기관에 의한 학대가 잇따르면서 아동학대에 대한 문제의식이 높아졌다. 아동학대의 개념이 확장된 건 그만큼 우리 사회에서 아동의 권리가 신장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의 교육 현장에서는 아이들이 학교나 교사로부터 겪는 사소한 좌절마저 아동학대의 범주에 포함되고 있다. 자녀가 ‘왕의 DNA’라고 주장하며 “하지 마, 안 돼”라는 말을 절대 하지 말라는 등 교사에게 어이없는 요구를 한 교육부 5급 공무원도 진작에 자녀의 담임을 아동학대로 신고한 것으로 드러났다.

무분별한 개념 확장으로 나타나는 부작용은 간단하지 않다. 헤이즐램 교수는 “점점 더 많은 사람이 불행을 과장하고 자신을 피해자로 여긴다”며 “부당한 비난과 과도한 고발 및 소송을 초래한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이런 피해자 의식의 이면에는 ‘도덕적 악당(villains)’이 반드시 존재한다. 교사를 악당으로 만들어 사법적 틀에서 쉽게 단죄하려는 한국의 무너진 교육 현장과 겹치는 분석이다.

개념 확장의 가장 큰 문제는 자신의 처지를 스스로 극복할 주체성이 약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자녀가 학교에서 경험하는 작은 상처나 불편까지 아동학대라는 큰 범주로 확대한다면, 부모가 교사와 터놓고 대화할 여지는 사라진다. 학교에 도움을 요청하거나 교사로부터 필요한 조언을 얻는 등의 건강한 관계를 맺기 어렵다.

자녀에게는 좌절을 견디고 일어설 기회를 박탈하는 것이기도 하다. 사회는 가정보다 덜 친절하고 내 마음대로 하기 어렵다는 당연한 교훈을 학교생활로부터 배워야 한다. 그래야 사소한 불편과 좌절을 참고 견디는 심리적 근육을 단련할 수 있다는 게 많은 소아청소년 전문가의 조언이다. 부모가 일상에서 맞닥뜨리는 문제를 과도하게 부풀려 대처하는 모습을 아이들이 배우는 건 무엇보다 안타깝다. 일부 학생이 교사를 향해 “아동학대로 신고하겠다”는 겁박을 서슴지 않는다는 걸 보면 어른들의 극단적인 갈등 해결 방식을 그대로 답습하는 건 아닌지 걱정된다.

그런 면에서 이번 사태로 대한정신건강의학과의사회가 내놓은 성명은 자식을 키우는 입장에서 무겁게 다가왔다. “가정에서도 실천하기 어려운 이상적인 사랑과 교육을 교사에게 강요하는 것은 결국 아이들의 무절제와 방종을 낳고, 이렇게 이기적이고 정신적으로 미성숙하게 자란 자녀들은 결국 부모에게 족쇄로 돌아올 수 있다.” 학교와 교사를 악당으로 만들기 전에 학부모들이 곱씹어 봐야 할 경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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