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란의 논문 근거 샅샅이 살펴 비판
와타나베 노부유키 지음
이규수 옮김
삼인
오는 9월 1일은 일본 관동대지진 100주년이 되는 날이다. 1923년 이날 오전 11시 58분 규모 7.9의 대지진이 관동지방 남부에서 발생해 도쿄, 요코하마 등에서 10만 명 가까이 사망하고 4만3000여 명이 실종됐다. 지진 직후에는 수천 명의 재일 조선인이 ‘불을 질렀다’거나 ‘우물에 독을 풀었다’는 등의 유언비어 때문에 끔찍하게 살해되는 참극이 빚어졌다.
당시 일본 제국은 관동대지진 때 벌어진 조선인 대학살을 애매모호하게 덮어 버렸다. 한 세기가 지난 지금은 학살부정론자들이 그 기억의 씨앗조차 지워 버리려고 하고 있다. 일본 미쓰비시 그룹의 지원을 받아 활동했던 존 마크 램지어 미국 하버드대 교수는 당시 유언비어가 실체가 없는 거짓말이 아니었다는 전제하에서, 살해당한 조선인의 수는 그동안 알려진 만큼 많지 않다는 주장을 담은 논문을 2019년 발표해 논란을 빚었다.
『관동대지진, 학살 부정의 진상』은 아사히신문 기자 출신인 논픽션 작가 와타나베 노부유키가 철저한 검증을 통해 램지어 교수의 논거가 잘못됐음을 드러낸 보고서다. 램지어 교수가 주장의 논거로 삼고 있는 것은 주로 당시 일본 신문 기사들이었다. 와타나베는 유언비어를 확인도 하지 않고 목격담으로 보도한 그 기사들이 작성된 배경과 실태를 낱낱이 살펴봤다. 학살 사실을 알고도 은폐하기 위해 당시 일본 정부가 조작한 가짜 뉴스와의 관계도 분석했다.
관동대지진 직후 내무대신을 지낸 고토 신페이가 남긴 ‘지진 후 형사 사범 관련 사항 조사서’는 유언비어의 내용처럼 조선인의 조직적인 범행으로 특정할 수 있는 것은 확인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고토 신페이 문서를 바탕으로 2008년 일본 내각부 중앙방재회의의 ‘재해 교훈 계승에 관한 전문조사회’가 정리한 보고서에도 비슷한 내용이 담겨 있다고 와타나베는 소개한다.
지금도 한·일 간에는 과거사를 둘러싼 갈등이 지속되고 있다. 국내 정치든 국제 관계든 ‘팩트’가 아니라 ‘내 주장’을 우선시하는 엉터리 논리가 통용되곤 하는 것이 안타깝다. 진실이 아니라 진실이라 우기는 것이 팩트인양 받아들여지는 세태에서도 밝힐 것은 밝혀야 한다. 한국 학자가 아니라 일본인이 관동대지진과 조선인 학살의 관계를 추적해 밝혀 낸 용기와 양심에 경의를 표하고 싶다.
한경환 기자 han.kyunghw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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