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대·X세대 떠오르고 Y2K 걱정한 그 시절
척 클로스터만 지음
임경은 옮김
온워드
모든 현재의 시작, 1990년대
윤여일 지음
돌베개
인터넷은 있었지만 각종 소셜미디어는 아직 없었다. 지금의 각종 우려나 비판과 비교하면, 1990년대의 인터넷은 낙관주의적 전망으로 점철된 신세계였다. 실은 일상의 필수품도 아니었다. 기업에 요긴한 건 인터넷이 아니라 여전히 팩스였다. 일례로 미국의 팩스 판매 수익은 1997년 처음 10억 달러를 넘어 정점을 찍었다고 한다.
이 책이 다루는 90년대의 성격은 저자가 그 시작을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로, 그 끝을 2001년 9·11테러로 꼽는 데서도 짐작된다. 구 소련 붕괴와 냉전 종식 이후 세계 유일 최강대국이 된 미국에게 대외적 위협이 없었던 시기, 대내적으로 경제가 상대적으로 긴 호황을 누렸던 시기다. 전 세계에 전쟁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걸프전은 미국 바깥에서 벌어졌고 미국의 빠른 승리로 끝났다. 저자는 승리한 전쟁을 주도한 조지 H W 부시가 재선에 실패하고 로스 페로라는 제3후보가 약진한 1992년 대선은 물론 전통적인 양당 후보 간 차이가 두드러지지 않았던 2000년 대선까지 이 책에 포함한다. 특히 플로리다주 재검표 여부를 두고 대법관들의 견해가 양분된 것은 이분법적 대립이 극단화한 현재 미국 상황의 전조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 자신이 X세대인 저자는 사건과 인물을 연대기적으로 나열하는 대신 주제마다 자신감 있게 뚜렷한 초점을 내세워 이야기를 엮어낸다. 예컨대 농구 스타 마이클 조던이 갑자기 야구에 뛰어든 일은 90년대 중반 메이저리그의 위상 변화 얘기로 이어진다.
그렇다고 90년대를 미화하거나 입맛에 맞춰 재단하는 것 같진 않다. TV 드라마 ‘사인필드’와 ‘프렌즈’, 온갖 철학적 해석을 낳은 영화 ‘매트릭스’와 시나리오는 지극히 평범했던 ‘타이타닉’ 등 서로 대비되는 특징을 지적하면서도 각각의 인기에 대해 내놓은 해석이 꽤 설득력 있다.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한국의 90년대와 비슷하거나 다른 점을 떠올리게 마련이다. 『모든 현재의 시작, 1990년대』가 눈길을 끄는 것은 그래서다. 사회학을 전공한 저자가 학술지·문예지·대중문화지를 비롯한 당시 잡지들의 문헌을 바탕으로 한국의 90년대를 조명한 책이다. 지성사를 필터로 삼은 점에서 읽는 재미는 덜하지만, 필터 자체가 90년대의 특징을 뚜렷이 보여주기도 한다. 한국의 90년대는 강제 폐간됐다 복간된 잡지들에 더해 새로운 잡지들이 봇물처럼 창간되고, 신세대·지식인·문화권력·박정희 등 논점마다 지성계의 논쟁이 뜨거웠던 시기였다.
저자는 90년대의 시작으로 1987년의 민주화 운동을 비롯해 여러 가지 시점을 제안하는데, 그 끝은 IMF 외환위기를 넘어 2002년으로 이어간다. 월드컵과 촛불시위와 노무현 대통령 당선까지 2002년을 아우르는 키워드 ‘대중’을 90년대의 특징으로도 보는 셈이다.
Y2K는 한국이든 미국이든 90년대에 빠지지 않는 얘기다. 컴퓨터가 두 자리 숫자로 연도를 인식해 2000년을 ‘1900년’으로 오인해서 생길 문제는 새천년을 앞둔 전 세계의 공통된 근심이었다. 결과적으로 별 일은 없었다. 『90년대』의 저자는 Y2K를 사기로 치부하는 대신 이를 미리 준비하고 대처한 결과로 본다.
그에게 90년대, 아니 어느 시대든 20년쯤 전 시대에 대한 관심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기성 세대가 ‘게으르다’ ‘나약하다’며 젊은 세대를 싫어하는 것도 어느 시대나 마찬가지. 그는 “사회가 진보하면 그 사회에서 성장하는 다음 세대의 생활은 덜 고되고 더 안락해져야 한다”며 “다음 세대가 나약하거나 게으르지 않다면 뭔가 잘못된 것”이라고 썼다. 복고풍으로 세기말 패션이나 Y2K 패션을 즐기는 지금 젊은 세대는 과연 나약하고 게으를 수 있는 세상을 물려받게 될까. 『90년대』에 따르면 90년대는 ‘쿨(cool)’이 두드러진 시대, 너무 애쓰기를 거부하는 시대이기도 했다. 21세기 한국에서 흔히 말하는 ‘노오력’과는 거리가 있었다.
이후남 기자 hoonam@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SUNDAY.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