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데이 칼럼] 국가 대개조, 더는 미룰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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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잼버리 파행 책임 두고 네 탓 공방
무책임 정치, 미래 비전 없는 정부
복지부동 공무원 등 총체적 난맥
희생양 찾기보다 근원적 처방을
」
막대한 예산을 퍼붓고도 국제적 망신을 시키고 국격을 추락케 한 책임은 반드시 가려내야 한다. 그러나 흥분과 분노의 뜨거운 감정에만 휩쓸려선 안 된다. 냉철한 이성으로 무엇이 문제의 본질인지 복기해봐야 할 때다. 새만금 사태는 우리에게 국가 대개조의 과감한 수술을 더는 늦출 수 없다는 걸 일깨우고 있다. 수십년간 쌓이고 쌓인 총체적 난맥상이 얽혀 이번 사태를 불렀다. 일단 내질러놓고 책임은 지지 않는 정치, 네 탓 타령으로 날 새는 여야, 국가 백년대계 같은 미래 비전의 설계 능력과 의욕을 상실한 단명 정권, 내면화된 관료 사회의 복지부동, 정치 리더십의 부재…난맥상을 이대로 두고 희생양을 찾아내 호통치고, 그중 몇몇을 감방에 보낸들 달라질 건 없다. 하나씩 복기해보자.
①정치적 한탕주의가 낳은 비극
첫 번째 패착은 잼버리 대회가 성공 개최보다 새만금 개발 사업 촉진에 방점을 두고 추진된 점이다. 전북도 관계자의 말처럼 “인프라를 좀 더 빨리하기 위해 예산을 빼 오기 위한 명분으로 새만금에 잼버리 대회를 유치한 것”(2017년 전북도 의회)이다. 새만금 개발을 자신의 치적으로 삼으려는 지방 권력과 개발 이익을 노린 개발업자의 이해가 맞았다(※대회 유치의 일등 공신이라고 자화자찬했던 이들은 침묵하고 있다). 이들은 이미 매립된 땅을 놔두고 잼버리 대회를 위해 새로 부지를 매립했다. 기초 시설 공사가 끝난 게 지난해 5월이다. 대회 1년 전 사전 점검을 위해 열던 프레잼버리는 취소됐다. 코로나 때문이라지만, 기반시설 부족과 배수 불량으로 행사를 치를 수 없었던 게 더 크다. 야영지의 배수와 그늘막 조성, 부실한 샤워장·화장실 문제는 예견된 재앙이었던 셈이다. 전북도는 새만금 국제공항 건설(2028년 개항 예정) 예산을 따내고, 새만금을 동서와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고속도로를 완공하는 개가를 올렸지만, 명예와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 정치적 한탕주의가 부른 비극이다.
②60년 걸리는 국책사업
새만금 사업이 애물단지가 된 데는 정치의 책임이 크다. 노태우 대통령의 대선 공약으로 시작돼 1991년 간척 사업의 첫 삽을 떴지만 이후 7번 정권이 바뀔 때마다 토지이용 계획이 바뀌었다. ‘식량 증산’이 목표였다가 복합산업단지로 변경됐고, 환경단체의 반대로 수년간 공사가 중단되기도 했다. 해양개발 및 글로벌 허브(이명박)-동북아 경제 허브(박근혜)-재생에너지 단지(문재인)-금융·관광·IT 특화 기지(윤석열) 등 정권이 바뀔 때마다 개발 구호는 요란했지만, 32년이 되도록 기반시설 구축(1단계)도 하지 못한 상태다.
비슷한 시기에 간척사업을 시작한 중국 상하이 푸둥 지구는 아시아의 금융 허브로 자리 잡았다. 새만금은 차질없이 계획대로 진행된다 해도 2050년이 돼야 완료된다. 60년 걸린 국책사업인데, “새만금이 국가 발전과 미래 비전에 어떤 전략적 가치가 있는 건지 알 수 없다”(호남 출신 정치인)는 탄식이 나온다. 먼 미래를 내다본 전략적 고민과 청사진 없이 불쑥 던져놓고 보는 무책임한 정치가 재앙의 불씨를 잉태하고 있음을 보여준 사례다.
③임계점 넘어선 관료 사회의 무사안일
여성가족부의 수준 미달의 집행력은 혀를 내두를 정도다. “폭염·태풍·식재료·식중독 문제 등 모든 게 차질없이 준비됐다”고 큰소리치던 김현숙 장관의 발언은 거짓말로 드러났다. 현장에 가지 않고 서류와 보고서에만 의존했기 때문이다. 잼버리 대회를 위해 99번의 해외 출장을 다녀왔다는 공무원들의 출장 보고서는 코미디 수준이다. 이 와중에 공무원 노조는 잼버리 대원들이 전국으로 흩어지는 과정에서 하달된 공무원의 강제 동원을 중단하라는 성명을 냈다. 갑작스러운 상명하달식 동원령이 문제가 없는 건 아니지만, 국가적 위급 상황에 시민들까지 나서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얼른 납득이 가지 않는 대응이다. 관료사회의 나태와 무사안일 풍조가 임계점을 넘어서고 있음을 새만금 사태가 일깨워주고 있다.
이정민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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