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코 인사이드] 박상현 현대모비스 전력분석, 그의 과제가 ‘적응’인 이유는?
손동환 2023. 8. 12. 00:28
본 기사는 바스켓코리아 웹진 2023년 7월호에 게재됐다. 인터뷰는 6월 22일 오전에 이뤄졌다.(바스켓코리아 웹진 구매 링크)
FA(자유계약) 혹은 트레이드로 팀을 옮기는 선수들은 ‘적응’이라는 과제와 마주한다. 달라진 팀에 녹아들기 위해 ‘시간’을 필요로 한다.
선수만 그런 게 아니다. 스태프도 마찬가지다. 각 팀의 선수들이 다르고, 팀마다 운동 방식이 달라서다. 그래서 박상현 현대모비스 전력분석도 ‘적응’이라는 단어를 중요하게 여겼다. 고양에서만 10년을 보냈지만, 2023년 6월 12일부로 울산 현대모비스의 새로운 식구가 됐기 때문이다.
FA(자유계약) 혹은 트레이드로 팀을 옮기는 선수들은 ‘적응’이라는 과제와 마주한다. 달라진 팀에 녹아들기 위해 ‘시간’을 필요로 한다.
선수만 그런 게 아니다. 스태프도 마찬가지다. 각 팀의 선수들이 다르고, 팀마다 운동 방식이 달라서다. 그래서 박상현 현대모비스 전력분석도 ‘적응’이라는 단어를 중요하게 여겼다. 고양에서만 10년을 보냈지만, 2023년 6월 12일부로 울산 현대모비스의 새로운 식구가 됐기 때문이다.
1초가 소중했던 선수
박상현은 큰 신장을 지닌 선수였다. 비록 1군 드래프트에서는 선택 받지 못했지만, 인천 전자랜드(현 대구 한국가스공사)와 국군체육부대에서 출전 기회를 얻었다.
하지만 박상현의 개인 통산 정규리그 기록은 18경기 평균 3분 30초 출전에 불과했다. 누적 출전 시간으로 환산하면. 62분 30초. 어렵게 프로에 입성했음에도 불구하고, 1군 무대에 선 건 1시간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런 짧은 시간조차 박상현에게 소중했다. 코트에서 숨 쉴 수 있는 몇 안 되는 기회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박상현은 1초도 허투루 보내지 않았다.
검색해보니, 드래프트 관련 기록이 없었습니다.
드래프트에 나섰지만, 선발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신고 선수를 뽑는 팀들이 있었고, 저는 전자랜드의 신고 선수가 됐습니다. 운이 좋았죠.(웃음)
프로 입성 과정이 험난했습니다. 그렇지만 정규리그 무대도 밟았고, 최고의 선수들만 선발된다는 국군체육부대에서 군 복무를 했습니다.
1년 동안 전자랜드에서 뛴 후, 국군체육부대로 입대했습니다. 너무 영광스러웠어요. 양동근 코치님과 김도수 코치님(이상 울산 현대모비스), 기라성 같은 선배님들과 뛸 수 있어서, 배울 수 있는 것도 많았어요. 그렇지만 몸에 문제가 있어 의가사 제대를 했고, 제대 후 일반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습니다. 곧바로 은퇴를 했죠. 하지만 국군체육부대에 선발됐다는 것 자체가 큰 운이라고 생각해요.
코트에 서있는 모든 순간이 소중했을 것 같아요.
코트에 있는 시간이 거의 없었어요.(웃음) 그래서 코트에 있는 모든 시간이 소중했습니다. 그리고 제 실력이 부족했기 때문에, (코트에 뛰지 못하거나 빨리 은퇴한 게) 전혀 아쉽지 않았어요. 그리고 제가 만약 드래프트에서 ‘선수 박상현’을 본다면, 뽑지 않았을 것 같아요.(웃음) 기본기와 체격 조건, 운동 능력 모두 프로에서 뛰기는 부족했거든요.
박상현은 큰 신장을 지닌 선수였다. 비록 1군 드래프트에서는 선택 받지 못했지만, 인천 전자랜드(현 대구 한국가스공사)와 국군체육부대에서 출전 기회를 얻었다.
하지만 박상현의 개인 통산 정규리그 기록은 18경기 평균 3분 30초 출전에 불과했다. 누적 출전 시간으로 환산하면. 62분 30초. 어렵게 프로에 입성했음에도 불구하고, 1군 무대에 선 건 1시간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런 짧은 시간조차 박상현에게 소중했다. 코트에서 숨 쉴 수 있는 몇 안 되는 기회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박상현은 1초도 허투루 보내지 않았다.
검색해보니, 드래프트 관련 기록이 없었습니다.
드래프트에 나섰지만, 선발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신고 선수를 뽑는 팀들이 있었고, 저는 전자랜드의 신고 선수가 됐습니다. 운이 좋았죠.(웃음)
프로 입성 과정이 험난했습니다. 그렇지만 정규리그 무대도 밟았고, 최고의 선수들만 선발된다는 국군체육부대에서 군 복무를 했습니다.
1년 동안 전자랜드에서 뛴 후, 국군체육부대로 입대했습니다. 너무 영광스러웠어요. 양동근 코치님과 김도수 코치님(이상 울산 현대모비스), 기라성 같은 선배님들과 뛸 수 있어서, 배울 수 있는 것도 많았어요. 그렇지만 몸에 문제가 있어 의가사 제대를 했고, 제대 후 일반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습니다. 곧바로 은퇴를 했죠. 하지만 국군체육부대에 선발됐다는 것 자체가 큰 운이라고 생각해요.
코트에 서있는 모든 순간이 소중했을 것 같아요.
코트에 있는 시간이 거의 없었어요.(웃음) 그래서 코트에 있는 모든 시간이 소중했습니다. 그리고 제 실력이 부족했기 때문에, (코트에 뛰지 못하거나 빨리 은퇴한 게) 전혀 아쉽지 않았어요. 그리고 제가 만약 드래프트에서 ‘선수 박상현’을 본다면, 뽑지 않았을 것 같아요.(웃음) 기본기와 체격 조건, 운동 능력 모두 프로에서 뛰기는 부족했거든요.
새로운 시작
박상현의 통산 기록에서 알 수 있듯, 박상현은 선수로서 발자취를 거의 남기지 못했다. 오히려 남들보다 빨리 은퇴해야 했다. 다른 선수들보다 제2의 인생을 빨리 찾아야 했다는 뜻이다.
그러나 박상현은 제2의 인생을 빠르게 시작했다. 박상현이 새롭게 얻은 직책은 전력분석. 몸이 아닌 눈과 손을 주로 써야 했지만, 그것 역시 박상현한테 어려운 건 아니었다. ‘농구’와 관련된 일을 할 수 있다는 이유, 하나 때문이었다.
전력분석원은 언제부터 하신 건가요?
은퇴 후 1년 정도 쉬었습니다. 그리고 홍대부고에서 A코치를 4년 동안 했어요. 홍대부고에서 지도자 생활을 한 후, 2013년부터 고양 오리온에서 전력분석을 시작했습니다. 3년 정도 했죠.
오리온이 2015~2016시즌에 우승한 후, 저는 4년 동안 매니저를 했어요. 하지만 강을준 감독님께서 새롭게 부임한 후, 저는 다시 한 번 전력분석을 맡았어요. 그리고 지금까지 전력분석을 계속 하고 있습니다.
농구를 접한다는 면에서는 선수와 비슷하지만, 농구를 대하는 방식은 선수와 완전히 다릅니다.
선수 때는 생각 없이 뛰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전력분석원이 된 후, 농구를 더 디테일하게 보고 있어요. ‘A 선수는 어느 지역에서 슈팅 확률이 높은가? B 선수의 돌파 방향은 어느 쪽이 더 많은가?’ 등 선수들의 패턴이나 움직임을 보려고 했고, 저희가 상대할 팀의 공수 전술도 계속 살펴봤습니다. 기록도 많이 찾아봤고요. 그런 점들을 체크해 문서나 영상으로 만든 후, 코칭스태프와 선수들에게 공유했습니다. 그게 전력분석원의 주된 역할이거든요.
컴퓨터라는 생소한 도구가 난관이었을 것 같습니다. 어렵지는 않으셨나요?
소위 1세대 전력분석원으로 불리는 분들은 초창기 때 비디오 테이프로 경기를 녹화했습니다. 영상 하나를 편집할 때에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수기로 문서를 작성하는 사례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소위 말해, 시스템이 구축되지 않았던 때였죠.
그렇지만 저는 운이 좋았습니다. 영상 편집을 간편하게 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이 많이 생겼고, 선배님들 덕분에 좋은 시스템 속에서 업무를 할 수 있었거든요. 어떻게 보면, 저는 혜택을 받았다고 생각해요.
전력분석원을 맡고 난 후, 농구를 대하는 시각이 어떻게 달라졌나요?
선수 시절에는 하이라이트 위주로 경기를 봤어요. 그렇지만 전력분석원은 경기를 통째로 봐야 합니다. 여러 번 봐야 해죠. 그러다 보니, 각 팀의 공수 패턴이 보였습니다.
어떤 게 보였나요?
공격도 공격이지만, 수비를 많이 보게 됐습니다. 페인트 존에 있는 빅맨이 볼을 잡았을 때를 예로 들면, 수비하는 팀이 어느 쪽에서 함정수비를 하는지 살펴봤습니다. 도움수비 방식 또한 면밀히 관찰했고요.
선수를 볼 때도 디테일하게 봤습니다. ‘C 선수는 어느 위치에서 주로 움직이는지? D 선수는 어떤 공격 패턴을 좋아하는지?’ 등 선수가 지닌 스타일이나 장단점을 많이 봤어요. 그리고 선수들의 인성과 훈련 태도 또한 챙겨야 할 정보 중 하나입니다. 팀 분위기를 형성하는 중요한 요소거든요. 아마 다른 전력분석원들도 저와 비슷한 방식으로 업무를 하실 거예요.
박상현의 통산 기록에서 알 수 있듯, 박상현은 선수로서 발자취를 거의 남기지 못했다. 오히려 남들보다 빨리 은퇴해야 했다. 다른 선수들보다 제2의 인생을 빨리 찾아야 했다는 뜻이다.
그러나 박상현은 제2의 인생을 빠르게 시작했다. 박상현이 새롭게 얻은 직책은 전력분석. 몸이 아닌 눈과 손을 주로 써야 했지만, 그것 역시 박상현한테 어려운 건 아니었다. ‘농구’와 관련된 일을 할 수 있다는 이유, 하나 때문이었다.
전력분석원은 언제부터 하신 건가요?
은퇴 후 1년 정도 쉬었습니다. 그리고 홍대부고에서 A코치를 4년 동안 했어요. 홍대부고에서 지도자 생활을 한 후, 2013년부터 고양 오리온에서 전력분석을 시작했습니다. 3년 정도 했죠.
오리온이 2015~2016시즌에 우승한 후, 저는 4년 동안 매니저를 했어요. 하지만 강을준 감독님께서 새롭게 부임한 후, 저는 다시 한 번 전력분석을 맡았어요. 그리고 지금까지 전력분석을 계속 하고 있습니다.
농구를 접한다는 면에서는 선수와 비슷하지만, 농구를 대하는 방식은 선수와 완전히 다릅니다.
선수 때는 생각 없이 뛰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전력분석원이 된 후, 농구를 더 디테일하게 보고 있어요. ‘A 선수는 어느 지역에서 슈팅 확률이 높은가? B 선수의 돌파 방향은 어느 쪽이 더 많은가?’ 등 선수들의 패턴이나 움직임을 보려고 했고, 저희가 상대할 팀의 공수 전술도 계속 살펴봤습니다. 기록도 많이 찾아봤고요. 그런 점들을 체크해 문서나 영상으로 만든 후, 코칭스태프와 선수들에게 공유했습니다. 그게 전력분석원의 주된 역할이거든요.
컴퓨터라는 생소한 도구가 난관이었을 것 같습니다. 어렵지는 않으셨나요?
소위 1세대 전력분석원으로 불리는 분들은 초창기 때 비디오 테이프로 경기를 녹화했습니다. 영상 하나를 편집할 때에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수기로 문서를 작성하는 사례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소위 말해, 시스템이 구축되지 않았던 때였죠.
그렇지만 저는 운이 좋았습니다. 영상 편집을 간편하게 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이 많이 생겼고, 선배님들 덕분에 좋은 시스템 속에서 업무를 할 수 있었거든요. 어떻게 보면, 저는 혜택을 받았다고 생각해요.
전력분석원을 맡고 난 후, 농구를 대하는 시각이 어떻게 달라졌나요?
선수 시절에는 하이라이트 위주로 경기를 봤어요. 그렇지만 전력분석원은 경기를 통째로 봐야 합니다. 여러 번 봐야 해죠. 그러다 보니, 각 팀의 공수 패턴이 보였습니다.
어떤 게 보였나요?
공격도 공격이지만, 수비를 많이 보게 됐습니다. 페인트 존에 있는 빅맨이 볼을 잡았을 때를 예로 들면, 수비하는 팀이 어느 쪽에서 함정수비를 하는지 살펴봤습니다. 도움수비 방식 또한 면밀히 관찰했고요.
선수를 볼 때도 디테일하게 봤습니다. ‘C 선수는 어느 위치에서 주로 움직이는지? D 선수는 어떤 공격 패턴을 좋아하는지?’ 등 선수가 지닌 스타일이나 장단점을 많이 봤어요. 그리고 선수들의 인성과 훈련 태도 또한 챙겨야 할 정보 중 하나입니다. 팀 분위기를 형성하는 중요한 요소거든요. 아마 다른 전력분석원들도 저와 비슷한 방식으로 업무를 하실 거예요.
역경의 길
박상현은 고양 오리온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변수가 생겼다. 오리온이 2021~2022시즌 종료 후 프로농구단 운영을 종료하기로 했고, 데이원스포츠가 2022~2023시즌부터 농구단의 새로운 주체가 된 것.
하지만 데이원스포츠는 운영 기간 동안 자금난에 계속 시달렸다. 선수들에게 월급도 주지 못했다. 데이원스포츠의 스태프였던 박상현 또한 생계의 어려움과 직면했다. 부양해야 할 자식도 있었기에, 박상현의 마음고생은 더욱 심했다.
어려움을 겪던 데이원스포츠는 KBL에서 결국 제명됐다. 이는 데이원스포츠 스태프였던 박상현에게도 아픔으로 작용했다. 자신이 보냈던 시간과 추억이 사라지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데이원스포츠가 새롭게 창단했습니다. 김승기 감독님을 포함한 코칭스태프도 새롭게 부임했지만, 박상현 전력분석원은 그 자리를 지켰습니다.
추일승 감독님(현 대한민국 남자농구 국가대표팀 감독)께서는 포워드 농구를 하셨고, 강을준 감독님은 자율적인 농구를 추구하셨습니다. 새롭게 부임한 김승기 감독님께서는 뛰어난 전략을 지닌 분이셨죠. 상대의 장단점을 잘 알기에, 상대에 따른 경기 운영 계획이 확실하셨습니다. 감독님마다 지닌 스타일이 다르고 감독님마다 원하는 자료가 다 달랐기에, 저는 전력분석원을 하는 동안 많은 걸 배울 수 있었습니다.
여담이지만, 박상현 전력분석원이 본 데이원스포츠의 농구는 어땠나요? 꽤 독특했잖아요.
(전)성현이와 (이)정현이, 디드릭 로슨에게서 파생되는 공격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선수들은 코너에서 공격 공간을 잡아줬죠. 그게 큰 틀이었습니다.
아무래도 선수들 특성상, 3점 시도 비중이 높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른 팀의 2배 이상 3점을 던진 날도 있었고, 저희 팀의 3점 시도가 저희 팀의 2점 시도보다 많은 경기도 있었죠.(웃음) 그런 색깔이 확실하게 나타났던 것 같아요.
경기력과 별개로, 선수단 임금 체불이 계속 발생했습니다. 마음고생이 심했을 것 같아요.
감독님과 코치님, 선수들과 사무국 모두 같은 상황에 처했습니다. 다들 힘들었지만, 내색하지 않고 경기에만 집중했습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였죠. 그렇지만 구성원들 모두 열심히 준비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좋은 성적을 냈다고 생각합니다. 팬들도 저희를 많이 좋아해주셨고요.
데이원스포츠가 결국 제명됐습니다. 마음이 복잡했을 것 같아요.
고양에만 10년 가까이 있었습니다. 정이 많이 든 공간이었죠. 애정도 컸고요. 또, 제가 현대모비스에 온 지 얼마 됐을 때, 데이원스포츠가 제명됐습니다. 안타까운 마음이 더 컸습니다. 마음이 너무 아프더라고요.
그렇지만 기회가 아직 남아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함께 했던 (데이원스포츠) 선수들한테 좋은 일이 생겼으면 해요. 잘 해결됐으면 좋겠어요. 아무쪼록 10개 구단 체제가 유지됐으면 좋겠습니다.
박상현은 고양 오리온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변수가 생겼다. 오리온이 2021~2022시즌 종료 후 프로농구단 운영을 종료하기로 했고, 데이원스포츠가 2022~2023시즌부터 농구단의 새로운 주체가 된 것.
하지만 데이원스포츠는 운영 기간 동안 자금난에 계속 시달렸다. 선수들에게 월급도 주지 못했다. 데이원스포츠의 스태프였던 박상현 또한 생계의 어려움과 직면했다. 부양해야 할 자식도 있었기에, 박상현의 마음고생은 더욱 심했다.
어려움을 겪던 데이원스포츠는 KBL에서 결국 제명됐다. 이는 데이원스포츠 스태프였던 박상현에게도 아픔으로 작용했다. 자신이 보냈던 시간과 추억이 사라지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데이원스포츠가 새롭게 창단했습니다. 김승기 감독님을 포함한 코칭스태프도 새롭게 부임했지만, 박상현 전력분석원은 그 자리를 지켰습니다.
추일승 감독님(현 대한민국 남자농구 국가대표팀 감독)께서는 포워드 농구를 하셨고, 강을준 감독님은 자율적인 농구를 추구하셨습니다. 새롭게 부임한 김승기 감독님께서는 뛰어난 전략을 지닌 분이셨죠. 상대의 장단점을 잘 알기에, 상대에 따른 경기 운영 계획이 확실하셨습니다. 감독님마다 지닌 스타일이 다르고 감독님마다 원하는 자료가 다 달랐기에, 저는 전력분석원을 하는 동안 많은 걸 배울 수 있었습니다.
여담이지만, 박상현 전력분석원이 본 데이원스포츠의 농구는 어땠나요? 꽤 독특했잖아요.
(전)성현이와 (이)정현이, 디드릭 로슨에게서 파생되는 공격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선수들은 코너에서 공격 공간을 잡아줬죠. 그게 큰 틀이었습니다.
아무래도 선수들 특성상, 3점 시도 비중이 높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른 팀의 2배 이상 3점을 던진 날도 있었고, 저희 팀의 3점 시도가 저희 팀의 2점 시도보다 많은 경기도 있었죠.(웃음) 그런 색깔이 확실하게 나타났던 것 같아요.
경기력과 별개로, 선수단 임금 체불이 계속 발생했습니다. 마음고생이 심했을 것 같아요.
감독님과 코치님, 선수들과 사무국 모두 같은 상황에 처했습니다. 다들 힘들었지만, 내색하지 않고 경기에만 집중했습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였죠. 그렇지만 구성원들 모두 열심히 준비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좋은 성적을 냈다고 생각합니다. 팬들도 저희를 많이 좋아해주셨고요.
데이원스포츠가 결국 제명됐습니다. 마음이 복잡했을 것 같아요.
고양에만 10년 가까이 있었습니다. 정이 많이 든 공간이었죠. 애정도 컸고요. 또, 제가 현대모비스에 온 지 얼마 됐을 때, 데이원스포츠가 제명됐습니다. 안타까운 마음이 더 컸습니다. 마음이 너무 아프더라고요.
그렇지만 기회가 아직 남아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함께 했던 (데이원스포츠) 선수들한테 좋은 일이 생겼으면 해요. 잘 해결됐으면 좋겠어요. 아무쪼록 10개 구단 체제가 유지됐으면 좋겠습니다.
새로운 시작
박상현은 생계의 어려움을 극복하지 못할 뻔했다. 그러나 울산 현대모비스가 전력분석원을 새롭게 모집했고, 그 분야의 베테랑이었던 박상현은 현재 현대모비스의 전력분석원으로 활약하고 있다.
어렵게 잡은 기회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을 더욱 강하게 다잡았다. 자신에게 기회를 준 현대모비스에 보답해야 한다는 마음이었다. 그래서 ‘적응’이라는 단어를 강하게 이야기했다.
현대모비스가 마침 전력분석원 모집 공고를 냈습니다.
현대모비스로부터 연락을 받고, 면접을 보러 갔습니다. 그 동안 작업해왔던 자료들을 포트폴리오로 만들었습니다. 외국 선수 데이터와 국내신인선수 드래프트 준비 방식, 각 팀의 공수 패턴 등으로 이뤄진 포트폴리오를 조동현 감독님에게 보여드렸습니다. 다행히 감독님께서 제 자료를 좋게 봐주셨고, 저는 6월 12일부터 현대모비스 연습체육관으로 출근했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팀마다 그리고 코칭스태프마다 요구하는 것들이 다릅니다. 오랜 시간 전력분석원으로 일했다고는 하지만, 현대모비스에 적응하는 게 먼저일 것 같아요.
밖에서 봤던 현대모비스는 뛰어난 조직력을 갖춘 팀이었습니다. 시스템도 잘 갖춰진 팀이었고요. 현대모비스에 합류하고 보니, 그런 게 더 강하게 느껴졌습니다. 감독님과 코치님도 열정적이고 훌륭하시지만, 선수들도 운동을 열심히 하더라고요.
하지만 제가 전력분석원으로서 해야 할 일은 다른 문제입니다. 입사한 지 아직 10일 정도 밖에 되지 않아서, 감독님과 코치님께서 원하는 걸 파악해야 해요. 그래서 감독님한테 많은 걸 여쭤보고 있고, 감독님께서도 “우리 팀의 운동 스타일과 우리 팀의 전술을 한 번 살펴봐라”며 ‘적응’을 중요하게 생각하세요. 저 역시 그렇게 생각합니다. 저희 팀의 시스템을 알아야, 다른 팀을 분석할 수 있거든요.
어렵게 얻은 기회입니다. 보답하고 싶은 마음이 클 것 같아요.
전력분석 업무를 시작할 때부터,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 업무를 늘 열심히 해왔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현대모비스 소속이기 때문에, 현대모비스라는 팀에 잘 녹아들어야 합니다. 팀에서 요구하는 걸 잘 이행해야 합니다. 그게 저한테 기회를 준 현대모비스에 보답하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러스트 = 정승환 작가
사진 = KBL 제공(본문 1~3번째 사진), 손동환 기자(본문 마지막 사진)
박상현은 생계의 어려움을 극복하지 못할 뻔했다. 그러나 울산 현대모비스가 전력분석원을 새롭게 모집했고, 그 분야의 베테랑이었던 박상현은 현재 현대모비스의 전력분석원으로 활약하고 있다.
어렵게 잡은 기회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을 더욱 강하게 다잡았다. 자신에게 기회를 준 현대모비스에 보답해야 한다는 마음이었다. 그래서 ‘적응’이라는 단어를 강하게 이야기했다.
현대모비스가 마침 전력분석원 모집 공고를 냈습니다.
현대모비스로부터 연락을 받고, 면접을 보러 갔습니다. 그 동안 작업해왔던 자료들을 포트폴리오로 만들었습니다. 외국 선수 데이터와 국내신인선수 드래프트 준비 방식, 각 팀의 공수 패턴 등으로 이뤄진 포트폴리오를 조동현 감독님에게 보여드렸습니다. 다행히 감독님께서 제 자료를 좋게 봐주셨고, 저는 6월 12일부터 현대모비스 연습체육관으로 출근했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팀마다 그리고 코칭스태프마다 요구하는 것들이 다릅니다. 오랜 시간 전력분석원으로 일했다고는 하지만, 현대모비스에 적응하는 게 먼저일 것 같아요.
밖에서 봤던 현대모비스는 뛰어난 조직력을 갖춘 팀이었습니다. 시스템도 잘 갖춰진 팀이었고요. 현대모비스에 합류하고 보니, 그런 게 더 강하게 느껴졌습니다. 감독님과 코치님도 열정적이고 훌륭하시지만, 선수들도 운동을 열심히 하더라고요.
하지만 제가 전력분석원으로서 해야 할 일은 다른 문제입니다. 입사한 지 아직 10일 정도 밖에 되지 않아서, 감독님과 코치님께서 원하는 걸 파악해야 해요. 그래서 감독님한테 많은 걸 여쭤보고 있고, 감독님께서도 “우리 팀의 운동 스타일과 우리 팀의 전술을 한 번 살펴봐라”며 ‘적응’을 중요하게 생각하세요. 저 역시 그렇게 생각합니다. 저희 팀의 시스템을 알아야, 다른 팀을 분석할 수 있거든요.
어렵게 얻은 기회입니다. 보답하고 싶은 마음이 클 것 같아요.
전력분석 업무를 시작할 때부터,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 업무를 늘 열심히 해왔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현대모비스 소속이기 때문에, 현대모비스라는 팀에 잘 녹아들어야 합니다. 팀에서 요구하는 걸 잘 이행해야 합니다. 그게 저한테 기회를 준 현대모비스에 보답하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러스트 = 정승환 작가
사진 = KBL 제공(본문 1~3번째 사진), 손동환 기자(본문 마지막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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