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스 프리즘] 의사 없는 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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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청과·외과 등 필수의료 소멸 위기
적절한 보상체계 등으로 막아야
」
과연 필수의료가 사라지면 어떻게 될까. 언론 보도를 통해 접할 수 있듯, 아픈 아이들은 진료가 가능한 병의원을 찾아 다녀야 한다. 응급환자는 제때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해 생명이 위험해 질 수 있다. 수술을 받아야 하는 환자는 오랜기간 수술을 기다려야 하고, 집중적인 관리가 필요한 중환자의 경우 적절한 케어를 받지 못하게 된다. 의료체계가 붕괴되는 것이다. 기피과 현상은 의료만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인 문제로 귀결된다. 의료체계는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토대다. 이런 토대가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이미 지방의 경우 의료체계 붕괴가 현실화되고 있다. 지방에서는 산부인과가 없어 출산을 앞두고 다른 지역 산부인과를 찾아가고, 의사를 구하지 못해 응급진료센터를 운영하지 못한다는 이야기도 기사를 통해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 문제는 지역의료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중소병원에서 필수의료 시스템이 무너지고 있다는 것이다. 중소병원은 우리나라 의료시스템의 허리다. 우리나라 의료전달체계에서 중소병원은 지역거점병원으로서의 역할을 이행하면서 지역주민들의 건강을 책임지고 있다. 그런 중소병원이 의사가 없어 더는 진료를 할 수 없는 상황에 놓여있다. 남아 있는 의사들은 악성민원에 시달리고, 수술결과에 납득하지 못한 환자나 보호자들로부터 법적 다툼을 벌여야 하는 위험에 노출돼 있다.
병의원만이 아니라 3차 의료기관인 종합병원에서도 필수의료분야에서 의사의 이탈이 가속화되고 있다. 의사 수급의 척도인 전공의 선발에서도 앞서 말한 진료과들은 정원을 채우기 쉽지 않다. 최근 레지던트 모집에 소아청소년과와 산부인과, 흉부외과 등은 지원자가 거의 없었다. 이런 현상은 지방의 병원뿐만 아니라 경기도와 서울도 비슷하다. 환자는 있지만 의사가 없는 병원이 되고 있다. 그럼에도 자신의 삶보다 환자를 위해 밤낮 가리지 않고 병원을 지키는 의사들.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통해 희생과 봉사로 환자를 진료하는 의사들이 있다. 이들은 의료 외적인 두려움 속에서 하루하루 환자를 진료하고 치료하고 있다.
그럼 우리는 필수의료를 유지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먼저 의료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변화가 필요하다. 의사는 최선을 다해 환자를 치료하고, 환자는 의사를 믿고 치료계획에 동참하며, 신뢰를 바탕으로 서로를 이해하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적절한 보상체계도 마련돼야 한다. 단순히 수가를 높이는 것이 아닌, 의사가 성실히 환자를 치료하고 이에 대한 적절한 보상을 통해 진료의 연속성을 가질 수 있도록 안정적인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의료서비스에서 서류 등 행정서비스를 간소화하거나 다양한 법률지원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것이다. 지역 의료기관간 환자케어 시스템을 구축해 응급·중증 환자에 대한 부담감을 낮추는 방안 등 다양한 사회적 의료시스템에 대한 논의도 필요하다.
의사의 기본은 환자 치료다. 환자를 두고 등을 돌리는 의사는 없을 것이다. 의사가 의사로서의 업(業)을 자랑스러워하고, 각자의 진료 영역에서 최선을 다할 수 있는 의료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우리 사회의 의료시스템을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길이다.
윤동섭 대한병원협회장·연세의료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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