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진의 민감(敏感) 중국어] 푸즈리
성을 보호하기 위해 성곽 사방을 파헤쳐 만든 수로를 뜻하는 중국어 ‘후청허’는 한국에서 해자(垓子)로 불린다. 이번 홍수로 베이징을 둘러싼 허베이는 실제 해자처럼 물에 잠겼다. 바오딩시 줘저우(涿州) 전역이 침수됐고 이재민 13만여명이 발생했다. 니 서기의 발언에 베이징 대신 허베이가 희생양이 된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네티즌 허안취안은 “허베이는 베이징의 후청허, 베이징이 잠기기 전에 먼저 침수된다. 민중은 지도자의 후청허, 지도자는 먼저 나가고 나는 남는다. 자연재해는 인재(人災)의 후청허다. 줘저우 사람의 생명은 후청허 속 목숨일 뿐”이라며 자조했다. 파문이 커지자 니 서기의 발언이 담긴 뉴스 영상은 자취를 감췄다. 총리는 휴양지 베이다이허에서의 휴가 중에 국무원(정부) 상무회의를 소집해 복구와 예방을 강조하고 나섰다.
해자 논란처럼 정부의 행정이 국민을 더 어렵게 만든다는 의미의 ‘푸즈리(負治理)’라는 신조어가 등장했다. 정부의 직무는 사회에 공공질서를 포함한 공공재를 제공하는 일이다. 이 과정을 거버넌스라고 부른다. 중국어로 ‘즈리(治理·치리)’다. 좋은 거버넌스는 선정(善政)을 낳지만, 악랄하게 거버넌스 목표만 달성하면 악정(惡政)이 된다. 나쁜 거버넌스란 뜻의 푸즈리(負治理)는 곧 악정으로 이어진다.
나쁜 거버넌스는 코로나19를 만나 힘을 키웠다. 2019년 12월 우한을 시작으로 중국은 3년간 이른바 무자비한 ‘다이내믹 제로화(動態清零·동태청령)’ 방역을 고수했다. 지난해 12월 초 백지시위 직후 갑자기 방역을 포기했다. ‘확진될 수 있는 사람은 남김 없이 확진시키는(應陽盡陽·응양진양)’ 태세로 돌변했다. 코로나 쓰나미가 덮쳤다. 올 1~2분기 사망자 통계는 아직 발표하지 않았다. 태풍 독수리는 폭우와 더불어 ‘누가 해자인가’라는 무거운 질문을 던졌다.
신경진 베이징 총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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