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와 사색] 고부
고부
김수열
예순 살짝 넘긴 며느리가 여든 훌쩍 넘긴 시어매한테 어무이, 나, 오도바이 멘허시험 볼라요 허락해주소 하니 그 시어매, 거 무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여, 얼릉 가서 밭일이나 혀!
요번만큼은 뜻대로 허것소 그리 아소, 방바닥에 구부리고 앉아 떠듬떠듬 연필에 침 발라 공부를 허는데, 멀찌감치 앉아 시래기 손질하며 며느리 꼬라지 쏘아보던 시어매 몸뻬 차림으로 버스에 올라 읍내 나가 물어물어 안경집 찾아 만 원짜리 만지작거리다 만오천 원짜리 돋보기 사 들고 며느리 앞에 툭 던지며 허는 말, 거 눈에 뵈도 못 따는 기 멘허라는디 뵈도 않으믄서 워찌 멘헐 딴댜? 아나 멘허!
『물에서 온 편지』 (삶창 2017)
원동기 면허 시험 응시를 두고 벌어진 며느리와 시어머니의 신경전이 유쾌합니다. 하지만 작품 이면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합니다. 일단 두 인물의 매개가 되었을 한 남자가 언급되지 않습니다. 그는 어디로 가고 고부끼리 밭일을 하며 함께 늙어가고 있을까요? 그런가 하면 “요번만큼은 뜻대로 허것소”라는 며느리의 말에서는 지난 세월의 인고가 느껴집니다. 이 시간은 어떤 시간이었을까요? 끝으로 읍내 안경집에서 시어머니는 만 원짜리 돋보기를 만지작거리다가 만오천 원짜리 돋보기를 집어듭니다. 만약 당신이 쓸 돋보기였다면 얼마짜리 돋보기를 샀을까요? 시를 읽는 우리는 이 모든 문제의 답을 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박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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