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 한벌 1000원, 갬성은 덤…2030 ‘고물’서 ‘보물’ 찾기 바람
열기 뜨거운 구제시장
미국에서 온 하이디(27)도 핸드백 더미 속에서 보물 하나를 건졌다. “저쪽에서 보물을 찾고 있는 친구 나탈리를 따라 왔다”는 하이디는 “이미 한국을 찾으려는 미국 친구들 사이에서 (이곳에 대한) 소문이 쫙 퍼져 있다”고 말했다. 나탈리(27)는 덴마크에서 온 유학생으로, 이곳을 일곱 번째 찾고 있는 ‘베테랑’이었다. 하이디는 시중 20만원인 백을 5만원에 득템했다. 나탈리는 하이디에게 “한국말로 ‘심봤다’고 해야 한다”고 농담을 던졌다.
8만 명. 평일 하루 동묘 구제시장을 오간다는 사람들이다. 박원규 동묘 구제시장 매니저는 “요새 젊은 손님도 많지만, 외국인 관광객도 많이 늘어 유동인구가 그쯤 되는 것 같다”고 밝혔다. 동묘 구제시장 인기는 이 여름의 폭염만큼이나 뜨거웠다.
반세기 전으로 온 듯했다. 알록달록 파라솔 밑에 널린, 1970~80년대 전성기를 누린 카시오·시티즌 전자시계부터 골드스타(금성사, 현재의 LG전자) TV가 새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초기 디지털카메라, 모토로라 폴더폰 등도 진열돼 있었다. 2030세대에 10대까지, 이들이 이곳에 몰리는 이유는 뭘까. ▶고물가의 대안 ▶감성 향유와 놀이문화 ▶리셀테크 등이 맞물려 있다.
디지털 기기로 정보를 획득하고, 옛 감성을 향유하고 싶어하는 젠지세대(Gen-Z)의 특성이 구제시장으로 발걸음을 이끌기도 했다. 젠지세대는 Z세대(1990년대 중반~2000년대 초반 출생한 세대)의 줄임말이다. 이수진 서울대 소비자트렌드분석센터 연구위원은 “Z세대는 Y2K(1990년 후반~2000년대 후반) 시대를 경험해보지 않았음에도 유튜브 상 팬시하고 힙해 보여 지금의 어렵고 각박한 현실을 벗어나 그때의 낭만을 누리고 싶어 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이 연구위원은 이를 ‘아네모이아’(Anemoia·경험하지 못한 시대에 대한 향수) 현상이라 분석했다.
구제시장에서의 ‘보물찾기’가 일종의 놀이문화를 만들기도 한다. 김나리(32)씨는 “오늘의 보물찾기 미션은 일반 SPA 브랜드보다 더 특별한 것을 찾는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김준혁(가명·16)씨는 “유튜브에서 동묘 구제시장 영상을 보니 ‘나이키’가 아니라 ‘나이스’로 바꿔서 파는 제품을 봤는데, 흥미가 당겨서 왔다”고 말했다. 이수진 연구위원은 “내가 발굴해 내가 탈바꿈시킬 수 있다는 자기 효능감은 흥미를 더 키울 수 있다”고 분석했다.
중고 물품을 사서 되파는 ‘리셀테크(resell-tech)’도 구제시장 인기를 거든다. 희소성이 있는 도라에몽, 슬램덩크 등 피규어 판매를 하는 김모(55) 사장은 “태권브이 같은 70~80년대 장난감은 인터넷에선 100만원이라면, 여기선 60만원에 판다”며 “젊은층이 재판매(리셀)해 이득을 챙기는 것도 본인 능력”이라고 밝혔다. 물품은 구제라도 잘만 찾아내면 이득인 셈이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Z세대의 ‘리셀테크’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언급량은 2018년 1만5000건에서 2021년에는 2배 증가한 3만여 건이다.
동묘 구제시장 케이스는 내수 활성화를 위해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하나금융연구소에 따르면 국내 중고거래 시장은 2020년 20조원 규모에서 올해 1.5배 뛴 30조원대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한다. 이수진 연구위원은 “경기 침체 속 저렴한 것을 구매할 수 있고, 돈을 벌 수 있고, 과거의 향수를 채울 수 있는 기제라는 다면적 요소가 결합해 중고거래 시장은 확대될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이 연구위원은 “QR코드로 쉽게 결제한다든지, 힙한 패션을 촬영할 장소가 있다든지 등 전통시장에 접목할 수 있는 편의적이고 디지털적 요소가 있다면 시장을 더 살릴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일단은 발품을 팔아야 한다. 그래서 오늘도 동묘 구제시장에 발길이 잦아지고 있다.
신수민 기자 shin.su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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