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내수·부동산 위축에 위안화 약세 겹쳐 ‘D의 공포’
디플레 먹구름 드리운 대륙
팬데믹이 사실상 끝나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글로벌 공급망 재편이 이어지면서 세계 경제는 지난해부터 인플레이션(물가 상승)과 전쟁 중이다. 미국의 CPI 상승률은 지난해 6월 9.1%까지 치솟았다. 이후 가파른 기준금리 인상 등 고강도의 통화 긴축 정책으로 올해 1월 6.4%, 3월 5.0%, 5월 4.0%를 기록했다. 진정되고는 있지만 여전히 안심하기 어려운 수치다. 그런데 중국은 때아닌 ‘D의 공포’, 즉 디플레이션(물가 하락) 우려에 빠졌다. 중국 정부가 강력한 봉쇄 조치 등을 골자로 한 ‘제로 코로나’ 정책을 지난해 말 폐기하고 리오프닝(경제 활동 재개)에 나섰는데도 지표는 역주행 중이다.
물가가 너무 가파르게 올라도 경제에 안 좋지만, 디플레이션 국면이 되면 경제 활력이 떨어지므로 이 또한 안 좋다. 또 금리 인상으로 어느 정도 제어할 수 있는 인플레이션보다 나쁜 상황일 수 있다. 디플레이션 늪에 빠졌던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이 대표적 사례다. 중국은 최근 왜 이런 우려에 직면했을까. 전문가들은 몇 가지 배경으로 해석한다.
우선 내수 시장 소비 침체의 리스크로부터 눈을 돌린 중국 정부의 판단 미스다. 앞서 중국 정부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수출보다 내수 시장의 성장에 중점을 둔 경제 정책을 펼쳤다. 급변한 글로벌 환경 속에 세계 1위 인구를 자랑하는 내수 시장을 앞세워 미국을 빠르게 추격한다는 목표였다.
그러나 팬데믹 이후 중국 정부는 재정의 대부분을 내수 시장의 소비 진작이 아닌 기업들을 위해 투입했다. 그러면서 산업계 세금 감면과 인프라 구축 지원 등을 이어갔다. 글로벌 공급망 재편 등을 의식, 기업들의 수출 경쟁력 유지가 급선무라고 본 때문이다. 문제는 여기에 제로 코로나 정책이 겹치면서 소비 심리 위축이 이어진 것이다. 반면 미국은 대규모 재정을 대(對)국민 재난지원금과 실업수당 지급에 투입해 소비 심리를 유지시킬 수 있었다. 이치훈 국제금융센터 신흥경제부장은 “중국 정부가 과거와 달리 재정 여력이 부족해져 기업들 쪽에 ‘선택과 집중’을 해야 했고, 그러면서 내수 활성화에 힘쓰는 데 한계가 있었던 것”으로 분석했다.
이외에 위안화 약세도 디플레이션 우려를 심화시키고 있다. 최근 중국은 디플레이션 우려에 금리 인상을 자제, 미국과의 금리 격차가 벌어지면서 외국인 투자자들의 자금 이탈이 가속화하고 있다. 중국의 외국인 직접투자(FDI) 증가율은 올해 들어 4개월 연속 하락해 5월 0.1%에 불과했다. 블룸버그 등에 따르면 지난달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신흥시장통화지수 대비 위안화 가치는 16년 만에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성태윤 교수는 “중국도 디플레이션을 원치 않지만, 미국 등 대외 변수는 (중국이) 원한다고 제어 가능한 게 아닌 만큼 당분간 중국 경제의 어려움이 지속될 것”으로 내다봤다.
이런 가운데 일각에선 중국 경제가 과거 일본처럼 장기 침체 수순에 돌입한 게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 중이다. 다만 반론도 있다. 전병서 중국경제금융연구소장은 “가능성일 뿐 디플레이션이 본격화한 상황은 아니다”며 “중국의 소비 심리 악화는 사실이지만 다른 디플레이션 유발 요인인 통화 긴축이나 자산 거품 붕괴, 급격한 기술 발전으로 인한 제품 공급 증가와 생산 단가 하락은 아직 관측되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 소장은 “중국 정부가 지난달 중국공산당중앙정치국 회의에서 자동차·가전 등의 상품소비 진작을 통한 소비 심리 회복에 총력전을 펼치기로 정한 만큼 향후 내수 시장 분위기도 바뀔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창균 기자 smi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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