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로변서 음란행위 한 50대…현직 검사장이었다 [그해 오늘]
CCTV에 5차례 음란행위 장면 포착
검찰, 3달 만에 치료조건부 기소유예
2016년 성매매 알선 사건 변호하기도
“잘못 깨닫고 비난받을 일 안 하려 해”
[이데일리 이재은 기자] 2014년 8월 12일 오후 11시 58분께 112에 “어떤 사람이 자위행위를 하고 있다”는 고교생 신고가 접수됐다. 제주시 중앙로 인근 분식점 앞을 지나던 고교생이 한 남성의 음란행위를 목격하고 경찰에 신고한 것이다. 현장에 출동한 경찰은 순찰차가 다가가자 이 남성이 옆 골목길로 빠르게 이동하는 것을 보고 그를 현행범으로 붙잡았다.
그러나 경찰서에서 이름을 조회했을 때는 다른 사람의 신원이 나왔다. 이 남성이 동생의 이름을 말했던 것이다. 결국 거짓말이 들통 난 남성은 스스로 이름을 밝혔다. 그의 이름은 김수창, 2013년 검사장으로 승진해 제주지검장이 된 인물이었다. 대검 감찰1과장에 특임검사까지 지낸 김씨는 어떻게 공연음란죄로 체포된 것일까.
김씨는 13일 오전 0시 45분께 분식점 인근에서 공연음란 혐의로 체포된 뒤 8시간가량 유치장에 입감됐다가 오전 11시 30분께 귀가했다. 그는 풀려나기 전 진행된 조사에서 ‘경찰이 음란행위를 한 사람과 옷차림이 비슷한 자신을 오인해 벌어진 일’이라며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그는 언론에 “관사 근처를 걸어가는데 갑자기 경찰이 차를 세워 붙잡았고 결국 조사까지 받게 된 것”이라며 “술에 취한 상태도 아니었고 음란행위를 하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초반에 자신의 신원을 밝히지 않은 이유로는 “제주지검장이 입건됐다는 내용이 알려지면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망신을 당할 수 있어 그렇게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대검 감찰본부장은 같은 달 15일 제주로 급파됐지만 경찰 수사를 지켜보고 감찰 착수 여부를 결정하겠다며 하루 만에 되돌아갔다. 경찰은 다음 날인 16일부터 17일에 걸쳐 사건 장소 인근에 있는 폐쇄회로(CC)TV 13여대를 확보하고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감식을 의뢰했다. CCTV에는 12일 오후 9시 30분부터 13일 오전 1시까지의 장면이 담겼으며 김씨로 추정되는 인물이 체포 2시간여 전부터 인근 고등학교 건물과 상가 등을 배회하는 모습도 있었다.
이 기간 김씨는 산책하던 중 오르막길이라 힘들고 땀이 나서 문제의 식당 앞 테이블에 앉아 있던 것이었으며 다른 남성이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사라졌다는 취지로 주장했다. CCTV 속 인물은 자신이 아니었다는 의미다. 김씨는 사건 발생 6일 만인 18일 사표를 제출했고 법무부가 당일 사표를 수리하며 면직됐다.
김씨는 같은 달 22일 ‘CCTV 속 음란행위를 한 인물은 제주지검장’이라는 국과수 감정 결과가 나오고 경찰이 이를 발표한 뒤에야 혐의를 인정했다. 당시 국과수는 사건 현장에서 촬영된 CCTV 8대와 유치장 CCTV 등 19개의 화면을 분석했고 해당 공간 속 인물이 동일하다고 판단했다. 이와 함께 김씨가 12일 오후 11시 32분부터 20분간 제주시 중앙로 왕복 7차선 도로변에서 5차례 음란행위를 하는 모습도 확인했다.
김씨는 경찰 발표 4시간 뒤 법률 대리인을 통해 사과하며 “현재 몸과 마음이 극도로 쇠약해져 입원 치료 중이다. 극도의 수치심으로 죽고 싶은 심정이지만 가족들을 생각해 차마 그러지 못한 점 살펴 달라”고 했다. 그러면서 “정신적 문제에 대해서도 전문가와 상의해 적극적으로 치유하겠다”고 전했다.
경찰은 같은 날 김씨를 검찰에 넘겼지만 그에 대한 처분은 쉽사리 나오지 않았다. 초범이고 정황상 의도적으로 범행하지 않았으며 뒤늦게나마 혐의를 인정했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공연음란죄 사건은 약식기소에 기소유예 되는 경우도 있지만 여론을 고려했을 때는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비판이 예상되는 상황이었다.
이에 같은 해 10월 국정감사에서는 김씨 사건을 두고 검찰의 ‘제 식구 감싸기’라는 지적도 나왔다. 김진태 당시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 의원은 “검찰은 조금 더, 조금 더 하는데 사건 발생 한 달 후 방문조사 한 번 하고 또 한 달이 지났다. 자꾸 이런 식이니 제 식구 감싸기라는 시선이 가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서기호 당시 정의당 의원은 “기존 수사와 재판 관행처럼 경범죄 정도로 접근하는 경향이나 동정론은 경계해야 한다. 김씨는 증상이 심해지기 전에 치료를 받아야지 검사장이라는 고위직에 있는 것은 적절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검찰은 김씨가 송치된 지 두 달이 넘은 시점에 광주고검 검찰시민위원회에 사건을 회부했다. 일시적으로 부담을 분산하려 했던 셈이다. 시민위원회는 경찰 수사기록과 검찰 수사자료, 과거 공연음란죄 사례 등을 검토했고 이들 13명 중 11명이 ‘치료조건부 기소유예’ 결론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제주지검은 같은 해 11월 시민위원회 결정에 따라 김씨에게 병원 치료를 전제로 한 기소유예 처분을 내렸다.
검찰은 정신과 의사가 김씨를 감정한 내용을 인용해 범행 당시 그는 성장 과정에서 억압된 분노감이 비정상적인 충동과 폭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김씨가 ‘성선호성 장애’ 상태였다며 “목격자나 특정인을 향해 범행한 것이 아니며 노출증에 의한 전형적인 공연음란죄에 해당하는 ‘바바리맨’ 범행과도 차이가 있는 행동”이라고 했다. 이어 “이 사건으로 면직된 김씨는 병원에 입원해 6개월 이상의 정신과 치료가 필요하고 재범 위험성이 없다”며 “목격자와 가족이 김씨의 선처를 바라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씨는 이듬해 변호사로 개업했고 2016년 카지노 고객 성매매알선 혐의로 구속기소된 여행사 대표의 변호를 맡기도 했다. 그는 이 사건 재판에서 “부끄러운 일이지만 2년 전 이맘때 본인도 현재 피고인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이후 잘못을 제대로 깨닫고 비난받을 만한 일을 하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다”며 “피고인에게 엄벌보다 조금이라도 세상을 이롭게 할 수 있도록 미래를 위해 마지막 기회를 달라. 새롭게 태어나 사회에 복귀할 수 있도록 외면하지 말아달라”고 했다.
이재은 (jaeeun@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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