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이진영]“왕의 DNA를 가진 내 아이” “또래 갈등 때 철저히 편들어라”
▷대전시교육청의 A 사무관은 초3 자녀의 담임교사들에게 ‘갑질’한 의혹이 제기돼 어제 직위 해제됐다. 교사노조에 따르면 A 사무관은 담임이 자녀를 학대한 일이 없는데도 아동학대로 신고했다. 새로 온 담임에게는 자녀를 대할 때 주의사항 9가지를 교육공무원 인증이 필요한 공직자 메일로 보냈다. “왕의 DNA를 가진 아이이므로 왕자에게 말하듯 듣기 좋게 돌려 말해도 다 알아 듣는다” “고개 숙이는 인사를 강요하지 않는다” “또래의 갈등이 생겼을 때 철저히 편들어 달라”는 내용들이다.
▷A 사무관의 독특한 ‘교육관’은 약 없이도 정신질환을 치료한다는 모 연구소의 육아지침과 비슷하다. 그의 아이는 경계성 지능장애를 앓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9가지 요구사항에는 ‘극우뇌’라는 표현도 나온다. 이 연구소는 자폐나 ADHD 같은 병명 대신 우뇌가 극도로 발달했다는 뜻의 ‘극우뇌인’이라는 용어를 쓰고 이 환자들은 왕의 DNA를 갖고 태어났다고 본다. 극우뇌인은 천재이고 분노조절이 어려우나 상담만으로 치료할 수 있다는 것이다. 치료법에는 ‘왕자나 공주라 불러 우월한 존재임을 확인시켜주기’도 있다. 의학계에선 약물치료가 필요한 환자를 ‘천재적인 극우뇌인’으로 호도하며 치료를 방해하는 위험한 주장이라고 본다.
▷내 아이는 진짜 유전자가 다른 왕자라 생각했을까. 아니면 대인관계에 어려움이 있지만 그건 천재라서 그렇다고 믿고 싶었던 걸까. 교사노조에 따르면 A 사무관은 자녀의 특별대우를 요구하며 “나는 담임 교체를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압박하고, 학급 내 다른 학생들의 행동까지 매일 보고하라고 요구했다. 사실이라면 교권을 보호해야 할 공무원이 직위를 이용해 교권을 침해하고 있었던 셈이다.
▷교사들이 학부모와 상담할 때 절대 건드리면 안 되는 것이 학생의 단점이다. “아이가 쉽게 포기하는 성향이 있다”고 하면 “끈기 있는 영재한테 무슨 소리냐”고 반발하고, “문해력이 떨어지니 독서 습관을 길러주라”고 조언하면 “집에선 활자중독일 정도로 책을 좋아한다”며 적개심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제 자식 못난 꼴 못 보는 맹목이 아이 성장을 가로막고 있다. ‘교육은 교사의 질을 넘을 수 없다’는 말이 있는데 ‘교육은 학부모 수준도 넘어설 수 없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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