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론/김상겸]탄핵심판이 政爭의 수단이 돼서는 안 된다
정치적 분쟁까지 헌법재판으로 해결할 순 없어
국회, 정치적 책임과 법적 책임 구분해 따져야
국회는 1948년 개원 이래 22차례 탄핵소추를 발의했고, 2명의 대통령을 포함한 4차례 탄핵소추가 가결됐다. 헌법재판소는 4차례의 탄핵심판 중 박근혜 전 대통령 사건만 인용했다. 헌법재판소는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심판에서 ‘중대한 법 위반’을 심판의 기준으로 제시했고, 박 전 대통령 사건에서는 직책을 성실히 수행했는지 여부는 그 자체로 소추 사유가 될 수 없다고 밝히기도 했다.
헌법은 제65조 제1항에서 공무원이 직무집행에 있어 헌법이나 법률을 위반할 때 탄핵소추를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국회는 사법기관이 아니지만, 공무원의 직무수행에서 위헌·위법 여부를 헌법재판소가 탄핵심판의 기준으로 제시한 중대한 법 위반 여부에 대해 가능한 한 법리적으로 판단해 탄핵소추 여부를 의결해야 한다. 헌법이 탄핵제도를 탄핵소추와 탄핵심판으로 이원화하고 있지만, 탄핵소추도 정치적 절차는 아니다.
그동안 축적된 탄핵제도의 법리를 고려하면 이 장관의 탄핵에서도 주된 쟁점은 이태원 사고와 관련해 중대한 법 위반의 여부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국회는 이 장관의 탄핵소추 사유로 재난 안전관리의 업무를 총괄하는 장관의 위치를 고려할 때 헌법과 법률 위반, 국가공무원법상 성실의무 위반, 재난안전관리법상 의무 위반, 유족들에 대한 가해성 발언, 국정조사에서의 위증 등을 들었다.
이 장관의 탄핵소추에 대해 여당은 참사 발생 후 장관의 일부 언행이 부적절했다고 해도 중대한 법 위반이 있었다고 볼 수 없다며 반대했다. 야당 일각에서도 탄핵심판은 본질적으로 사법 재판이라서 장관이 직책을 수행하지 않은 중대한 결함으로 헌법과 법률을 구체적으로 위반했어야 하는데, 직무만 정지시키고 탄핵심판이 기각되면 오히려 면죄부만 주는 결과가 된다고 우려하기도 했다.
헌법이 정치적 성격을 가지고 있는 법이지만 탄핵심판과 마찬가지로 탄핵소추도 헌법과 법률에 따라 공정하게 결정돼야 한다. 헌법재판소는 탄핵이 일반적인 사법절차나 징계절차로 소추나 징계하기 곤란한 고위공무원, 법관 등과 같이 신분이 보장된 공무원이 직무상 중대한 비위를 범한 경우에 처벌하거나 파면하는 절차라고 했다. 또한 탄핵심판은 고위공직자에 의한 헌법침해로부터 헌법을 수호하기 위한 제도라고 했다.
우리나라의 탄핵제도는 헌법수호를 본질적 징표로 하며 법적 책임을 추궁하는 제도다. 탄핵은 파면의 책임을 지우는 것으로 형사처벌이 아니며 직무수행의 무능력, 정책의 실패나 정치적 이유로 책임을 묻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탄핵심판은 정치재판이나 여론재판이 아니며 형사재판도 아니다. 탄핵제도를 법리적으로 공정하게 운영해야 한다는 것은 헌법과 법률을 정치적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는 우리 헌법재판소와 달리 대부분의 헌법분쟁을 관장하는 권한을 갖고 있다. 그렇다 보니 독일 연방의회는 정치적 분쟁까지 연방헌법재판소에 소를 청구하는 경우가 있다. 이에 대해 연방헌법재판소는 정치적 성격의 분쟁까지 헌법재판으로 해결하려는 것은 법을 정치화하는 잘못을 범하는 것이라고 우려를 표하면서, 연방의회 등 정치권에 대해 강력하게 자제를 요청하기도 했다.
독일 연방헌법재판소의 연방의회에 대한 지적은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그대로 적용된다고 본다. 헌법이 규정하고 있는 탄핵심판은 헌법재판이지 정치적 재판이 아니다. 헌법은 고위공무원이 직무를 수행하면서 헌법과 법률을 위반하는 경우에만 탄핵소추를 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국회는 정치적 성격을 가진 국민의 대표기관이지만 헌법기관이다. 국회의 권한은 헌법으로부터 나오며 탄핵소추는 정치적 성격의 절차가 아니라 헌법상 절차다.
국회는 입법기관이면서 다른 국가권력에 대한 통제 기능을 수행하기 위한 국정조사 기능도 갖고 있다. 국회는 고위공무원에 대한 정치적 책임과 법적 책임을 구분해 그 책임을 물어야 한다. 탄핵소추권은 고위공무원에 대한 법적 책임을 묻는 수단이며 정치적으로 오남용되어서는 안 된다. 탄핵소추는 대상이 된 고위공무원의 직무수행을 정지시키는 법적 효력을 갖는 국회의 사법적 권한으로 결코 정쟁의 수단으로 이용해서는 안 된다.
김상겸 동국대 명예교수·헌법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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