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란의얇은소설] 서늘한 이야기, 여기 있습니다
‘오한이 스치는’ 공감 끌어내 줘
고이케 마리코, ‘히카게 치과 의원’(‘이형의 것들’에 수록, 이규원 옮김, 북스피어)
다른 많은 호러나 기담 소설 중에서도 고이케 마리코의 단편들을 찾아 읽는 이유는 두 가지 때문이다. 첫 번째는 소설에서 중요한 인과(因果)들, 예를 들면 그녀가 왜 그 도시로 오게 되었는지, 왜 치과를 가게 되었는지 하는 원인을 무척이나 납득 가능하게 그려서이고 두 번째는 소설에서 일이 벌어지는 공간들, 그녀가 외사촌의 도움으로 살게 된 임대 아파트며 그 주위의 공간들이나 ‘문에서부터 이끼 긴 징검돌들이 줄지어’ 있는 히카게 치과 의원 같은 장소들을 독자에게 생생하게 보이도록 그려주어서이다. 이러한 실제성과 인과성을 고이케 마리코는 놓치지 않으며 그런 이야기의 그물망은 섬세하기까지 하다. 그 효과는 독자에게 호기심 외에도 아, 이런 치과가 정말 있겠구나, 정말 이런 경험이 가능하겠구나, 하는 공감을 끌어낸다는 데 있지 않을까.
치과 대기실에는 노부부 사이에 인형을 품에 안은 어린 여자아이가 앉아 있었다. 마스크를 쓴 치위생사 여성과 치과의사. 그들은 부부처럼 보인다. 그리고 두 사람은 매끄러운 동작으로 가스미의 어금니를 치료했다. 두 번, 치과를 방문한 후 가스미는 크라운 시술을 마쳤다. “인형, 여자아이, 노부부, 치과 내부의 어둑함, 차갑게 빛나는 하얀 타일이 깔린 수술실 같은 진료실, 아무 말이 없는 의사, 울창한 잡목림에 둘러싸인 부지….” 외사촌 부부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지만 무언가가 가로막는 기분이었다. 시간이 흘러 활력을 되찾은 가스미는 도쿄로 돌아가 잡지사에서 근무하며 생활을 되찾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도쿄로 외사촌이 찾아와 그 민가 주택을 철거하다 나온 ‘작은 방’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가스미는 자신이 정말로 가본, 지금도 혀끝에 매끄럽게 느껴지는 어금니의 크라운을 씌워준 그 치과 사람들에 대해 어떤 소문과 이야기를 듣게 될지.
고요하고 침착한 그녀의 단편들은 무섭지는 않지만 정말 이런 일이 있을 것만 같다고 느끼게 한다. 그녀의 정교한 문장과 서술 방식 덕분에. 여름의 한가운데를 지나며 “오한이 스치는” 이야기를 읽는다. 책을 덮고 나자 몇 년 전 베네치아의 가면 가게가 떠올랐다. 소심하게 작업실을 한 번 둘러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검은 가면을 얼굴에 써보았다. 실제일까 아닐까. 아직은 더위가 남아 잠시만이라도 독자를 푹 빠지게 할 수 있는 서늘한 이야기가 필요하다.
조경란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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