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문화] 한강 세러피
모두 우울한 지금 의지해 보자
태어나는 괴로움, 한강에 묻고
매일 겪는 고통은 흘려보내자
한강 사진집을 펼친다. 15년 가까이 한강을 촬영해 온 이현권 작가의 ‘서울, 한강을 걷다’이다. 표지 작품에는 전철이 지나가는 한강 다리가 화면의 절반을 가르고 있다. 다리 위쪽에 신기루처럼 들쑥날쑥 올라온 빌딩들은 서울이라는 현실을 아득하게 멀리서 보게 한다. 작품마다 다른 빛깔의 물과 하늘, 아주 작은 풀 한 포기나 어떤 설치물도, 과장되거나 치장 없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한강의 모습이다.
한강이 특별한 것도 이 생명성에 있다. 오랜 세월 동안 한강은 생명의 터전이었고 생성과 휴식의 공간이었다. 한강 생태계는 서울의 환경을 정화하고 또 유지하고 있다. 밀집 공간인 서울에서 잠시 벗어나 여유를 갖게 하는 것도 한강이다. 아침저녁으로 한강 다리를 건너 출퇴근하는 시민들은 차 안에서 한강의 일출과 일몰을 보기도 한다. 한강이 생명의 근원인 서울의 젖줄이라면 어떤 의미로는 어머니의 품에 잠깐 안기는 느낌이랄까.
프랑스의 과학철학자이자 문학비평가인 바슐라르에게도 물은 중요한 근원적 물질이다. 바슐라르는 인간의 상상 세계를 파악하려면 그것을 지배하는 물질의 속성을 파악해야 한다고 했다. 그 네 개의 기본적인 물질이 물, 불, 공기, 흙이라는 것인데, 그의 저서 ‘물과 꿈’에서 그는 물의 이미지를 강조한다. 특히 “모든 물은 젖”이라고 말하면서 “모든 행복한 음료는 모유”라고 한다. 그렇다면 강이 주는 행복은 지극히 근원적인 것이 아닌가. 바슐라르는 또 “강은 구두점이 없는 말”이라고 하여 쉬지도 않고 중얼거리는 강물의 백색소음이 심신을 안정시켜 주는 것을 확인한다.
요즘은 이 ‘안정’이라는 말이 참 반갑다. 끔찍하고 충격적인 기사들이 소통과 휴식의 부재를 체감하게 하기 때문이다. “말수가 아주 적은 그와 강을 따라 걸었다/가도 가도 넓어져만 가는 강이었다/그러나 그는 충분히 이해되었다.”(문태준 시인, ‘강촌에서’) 이처럼 함께 걷는 것만으로도 서로 소통할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는 강이 우리 가까이에 있다. 강의 다정한 이야기도 함께 들으며 애초에 선한 물의 무의식에 의지하는 시간이 모두에게 필요할 때다.
더구나 강가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새소리까지도 정신적인 행복에 큰 도움을 준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영국 킹스칼리지런던 연구진에 따른 것인데, 새를 보거나 새소리를 듣는 일이 우울증 치료에도 도움이 된다고 한다. 그렇다면 한강을 화려하게 개발하기보다 새소리 바람소리 물결소리를 자연 그대로 살아있게 하는 것이 우리의 중요한 과제일 것 같다.
가까운 곳에 강이 있다. 모두 우울한 지금, 강의 재생력에 의지해 보자. 날마다 새로 태어나는 괴로움을 강에게 묻자. 강은 떠밀려 흐르면서도 흘려보내야 할 것과 붙잡아야 할 것을 말해 줄 것이다. 또 강은 몸소 그 흐름으로 보여줄 것이다. 고통은 어떻게 흘려보내는 것인지를.
천수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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