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대표단 자택 방문에 “눈물나”…100세 ‘마지막 재일독립유공자’ 영구귀국

정충신 기자 2023. 8. 11. 2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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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성규 애국지사 13일, 박민식 장관과 함께 귀국길 올라
박 장관 “오 지사는 몇 분 안 남은 국보 같은 존재”
“독립군 시절 ‘주태석’ 가명으로 받은 건국훈장 바로잡겠다”
박민식(왼쪽) 보훈부 장관이 11일 일본 도쿄에 있는 독립유공자 오성규 애국지사 자택을 방문해 윤석열 대통령의 홍삼 선물을 전달하자 오 지사가 눈물짓고 있다. 국가보훈부 제공

“더 빨리 왔어야 하는데 어떻게 보면 모시러 오는 게 좀 늦었습니다.”(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

“장관께서 바쁘신데 이렇게 와주신 것만 해도 참 감사합니다.”(광복군 출신 오성규 애국지사)

박민식 보훈부 장관이 11일 일본에 생존해 있는 유일한 독립유공자인 오성규(100) 애국지사를 국내로 모시기 위해 도쿄의 오 지사 자택을 직접 방문했다.

오 지사는 도쿄 외곽 네리마구의 공공 임대 아파트에서 2018년 부인이 별세한 후 혼자 살고 있었다. 여느 독립유공자처럼 오 지사 살림살이도 어려워 보였다. 큰 원룸 정도 넓이 아파트의 거실은 성인 두 명이 누우면 꽉 찰 정도로 좁았다.

박 장관이 거실에 들어서자 오 지사가 소파에서 일어나서 반갑게 맞았다. 박 장관은 “대통령님이 ‘장관이 직접 가서 귀국을 원하시는지 물어보고 잘 모셔 오라’고 말씀하셨다”면서 귀국하시길 원한다면 함께 모시고 가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오 지사는 “다 늙어가는데 그렇게까지…”라며 고마움에 말을 잇지 못했다. 박 장관은 윤석열 대통령이 준비한 홍삼 선물도 오 지사에게 전달했다.

박민식(왼쪽) 보훈부 장관이 11일 일본 도쿄에 있는 독립유공자인 오성규 애국지사 자택을 방문해 오 지사의 건국훈장 내용을 살펴보고 있다. 1990년 노태우 대통령 당시 받은 건국훈장에 오 지사 이름이 독립군 시절 가명인 ‘주태석’으로 돼 있는데, 박 장관은 이를 바로잡도록 하겠다고도 했다. 국가보훈부 제공

보훈부는 “오 지사가 2018년 배우자 사망 후 아파트에 홀로 거주하다 생의 마지막은 고국인 대한민국에서 보내고 싶다는 의사를 보훈부에 전달해오면서 박 장관을 대표로 한 정부대표단 방일이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박 장관은 “지사님은 몇 분 안 남은 국보 같은 존재”라며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시면서 국민에게 큰 교훈을 주시기를 바란다. 최고로 잘 모시겠다”고 약속했다. 이에 오 지사는 “눈물이 난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1923년 평안북도 선천에서 태어난 오 지사는 일제강점기 중국 만주 봉천 소재 동광중학을 중심으로 항일운동을 했고, 일제에 조직망이 노출되자 만주를 탈출해 중국 안후이성의 한국광복군 제3지대에 입대해 독립운동을 펼쳤다. 1945년 5월 국내 진공을 위한 한·미합작특수훈련(OSS 훈련)을 받던 도중 광복을 맞이했다. 광복 후 교민 보호 등에 헌신했으며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다.

오 지사는 광복 후 국내 상황이 혼란스러워지자 일본으로 건너갔다가 이번에 약 70년 만에 귀국한다. 오 씨는 귀가 잘 들리지 않는 것 이외에는 100세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정정했다.

특히 과거 기억을 더듬을 때는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기억하며 목소리도 커졌다. 박 장관이 광복군 당시의 기억에 관해 묻자 “북경(베이징)에 있다가 연락을 듣고 광복군에 들어가기 위해 중경(충칭)까지 걸어갔다”며 “일제가 도로와 철도를 파괴해 20일가량 걸어서 갔는데 짚신이 터져 발에 피가 났다”고 생생하게 회상했다.

박민식(왼쪽) 국가보훈부 장관이 11일 오후 일본 도쿄 네리마구의 오성규 애국지사의 자택을 방문해 환담을 나누고 있다. 국가보훈부 제공

이날 만남에는 이정기 중앙보훈병원 보훈요양병원장도 같이 자리했다. 오 지사가 2시간가량 비행기를 타고 귀국하는 데 무리가 없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이 원장은 오 지사가 복용하는 약 종류를 확인하고 문진한 뒤 귀국해도 괜찮다고 판단했다.

오 지사는 박 장관과 함께 13일 영구귀국한다. 오 지사는 귀국 소감을 묻자 “기쁘기도 하지만 가서 제대로 살 수 있을까 걱정된다”고 설렘을 나타냈다.

함께 자리한 오 지사의 둘째 아들은 아버지의 귀국에 대해 “한국인들에게 감사하다. 아버지도 기뻐하고 안심하고 계신다”고 말했다. 박 장관이 수유리 광복군 합동 묘역에 안장됐던 선열 17위가 지난해 국립묘지인 대전현충원에 안장됐다고 설명하자 오 지사는 박 장관과 함께 찾아가 보고 싶다고도 말했다.

‘한국에 가면 먹고 싶은 음식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오 지사는 “갈비와 평양냉면을 좋아한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박 장관은 “서울에서 갈비와 냉면으로 모시겠다”고 화답했다.

오 지사는 13일 입국 후 서울 중앙보훈병원에서 건강검진을 받고 15일 제78주년 8·15 광복절 경축 행사에 참석할 계획이다. 오 지사는 건강 검진을 받은 뒤 문제가 없으면 보훈요양원 특실을 배정받아 사용할 예정이다.

박 장관은 “오 지사가 편안하게 고국에서 여생을 즐길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다 하고 있다”고 밝혔다. 박 장관은 오 지사가 1990년 노태우 대통령 당시 받은 건국훈장에 오 지사 이름이 가명인 ‘주태석’으로 돼 있는데 이를 바로잡도록 하겠다고도 말했다.

그는 “오 지사님을 비롯해 적지 않은 독립지사들이 일제 탄압 때문에 가명으로 활동했다”며 “오 지사님의 성함을 제도적으로 찾아드리는 것이 제대로 예우하는 것이라고 보고 최대한 신속하게 시행령을 개정하려고 준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오 지사가 국내로 영주 귀국하게 되면 국내 독립유공자는 8명이 되며, 국외 거주 독립유공자는 미국의 이하전 지사(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만 남게 된다.

정충신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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