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기호의 정치박박] "학생인권·제복영웅" 간데없어… 미래세대 착취 꼴불견

한기호 2023. 8. 11. 2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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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조례 무조건 사수" 민주·진보진영
잼버리 4만 세계청소년에 재앙 안기고
"韓청소년과 교육 문제" 학대 불감증
"핵오염수 걱정" 초2 활동가'? 선 넘어
'정치실패' 뒤치다꺼리 軍동원한 黨政
"어린 男군인이 최약자" 우스개 아니다
지난 8월6일 군 장병들이 전라북도 부안군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 야영장에서 지원 활동을 펼치고 있다.<연합뉴스>
지난 8월8일 더불어민주당이 국회 본청에서 개최한 '후쿠시마 핵 오염수 저지를 위한 아동, 청소년, 양육자 간담회' 행사에서 이른바 '어린이 활동가' 참석자 대표인 초등학교 2학년생 김한나양이 이재명 민주당 대표 쪽을 바라보고 있다(왼쪽). 오른쪽은 간담회 시작 전 아동 참석자인 정모군과 이모양이 강선우 당 대변인으로부터 호명되자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이거나 보호자 쪽으로 기대며 얼굴을 가리는 모습(오른쪽).<왼쪽은 연합뉴스 사진, 오른쪽은 더불어민주당 유튜브 '델리민주' 중계영상 갈무리>
지난 8월3일 전라북도 부안군 새만금 제25회 세계스카우트잼버리 대회 중 온열질환을 보여 병원으로 후송된 청소년들이 진료를 받고 있다(왼쪽). 같은 날 염영선 전북도의회 대변인(더불어민주당·정읍2)은 김관영 전북도지사의 잼버리 야영지 1박 후기 페이스북 글에 남긴 댓글로 대회 준비 부실 논란을 부인하며 "문제는 대한민국 청소년들"이라고 주장했다(오른쪽). 그 이튿날(4일) 염영선 도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사과 글을 남겼다.<연합뉴스 사진·페이스북 게시물 갈무리>
2019년 9월30일 '국민주권연대' 산하 '주권방송' 유튜브 채널에 '검찰개혁 동요 메들리! 정치검찰 오냐오냐 압수수색 꿀꿀꿀~'이란 제목으로 게재된 영상.<유튜브 영상 갈무리>

"안 본 눈 삽니다"…전라북도 새만금에서의 '잼버리 사태' 초입부터 약 2주간 정치권을 보며 되뇌여온 생각이다. 대결에 수단방법 안 가리는 요즘 정치가 갈수록 '경우 없어지는' 건 알고 있었지만 여전히 적응이 어렵다. 2023 제25회 세계스카우트 잼버리 준비 부실과 파행 사태, 예고된 책임전가 혈전(血戰)은 차라리 예상 내다. 조속한 시간 내 진실을 파헤치고 '눈먼 돈' 갈취와 재정누수를 가볍게 여기는 구태를 일소하길 바랄 뿐이다. 진정 '못볼 꼴을 너무 많이 봤다'는 느낌을 준 건 미래세대를 대하는 이중잣대다.

지난 3일 하루, 더불어민주당 등 진보야권에선 진풍경이 벌어졌다. 친(親)전교조 서울시교육감은 학생인권조례와 교권조례를 '통합'해 갈등을 줄이자는 집권여당 소속 서울시장을 향해 "폐지의 다른 언어"이자 "물타기"라고 라디오 방송에서 저격했다. 학생인권조례 '무조건 존치론'이다. 서이초 '1학년 담임'을 떠맡았던 새내기 선생님의 교내 극단선택 배경에 업무 과중, 학부모 악성민원이 있었다는 의혹은 관계없는 듯 했다. 일선 교사들이 추모 열기와 함께 폭발하고, 교원 8할 이상(7월 25~26일 교총 3만2951명 온라인 설문)과 국민 절반 이상(동의 52% 대 비동의 34%·3일 발표 NBS 여론조사)이 '교권 침해의 주된 원인이 학생인권조례'라고 본다는 여론엔 침묵했다.

학생인권조례는 문재인 정권의 교육수장을 지내게 된 김상곤 전 부총리가 경기도교육감 시절인 2010년부터 도입을 주도했다. 전국 17개 광역시·도 중 7곳에서 진보교육감들이 제정을 관철했다. 그럼 민주당을 학생인권 수호자로 봐도 될까. 이들이 아동학대 대처에 철저할까. 같은 3일 전북의 한 광역의원은 김관영 전북도지사가 "낮에는 폭염이더니, 새벽에는 춥다"며 페이스북에 잼버리 야영지 1박 후기를 올리자 남긴 동조 댓글로 파장을 불렀다. 염영선 전북도의원(정읍2)은 자신도 2일 개영식에 다녀왔다며, 폭염과 누적 1000명 이상 온열질환자 속출에도 "감내할 만한 상황"이라고 강변했다. 그는 "무엇보다도 잼버리는 피서가 아니다"며 자국의 청소년들을 겨냥했다.

그는 잼버리 대회를 두고 "개인당 150만원의 참가비를 내고 머나먼 이국에서 비싼 비행기를 타가며 '고생을 사서 하려는' 고난극복의 체험"이라면서 "대부분 해외 청소년들은 얼굴이 빨갛게 익었다. 하지만 해맑았다"며 "문제는 대한민국 청소년들"이라고 했다. 한국 아이들이 150만원조차 내지 않고 공짜로 참가해놓고 유독 불평불만이 많다는 말처럼 읽혔다. "집에서 금이야 옥이야 귀하게 자란데다, 야영경험이 부족하다…잼버리의 목적과 가치를 잘 몰라 불평 불만이 많다. 대한민국 교육의 현실이자, 어두운 미래"라는 훈계가 이어졌다. 관(官)의 실책이 불거졌는데, 국민 혈세(血稅)로 녹 먹는 선출직 공직자는 '미래의 유권자'와 학부형들에게 "거듭나라"고 꾸짖었다.

알고보면 참가비 150만원은 국적불문 '기본'이고 해외 대원들은 항공비까지 평균 600만원은 썼다고 한다. 북적대는 잔치, 대회에 가까운 잼버리(jamboree) 말뜻에 '고난극복'을 갖다 붙인 건 두고 두고 비판 대상이다. 정작 발언 만 사흘도 안 돼 스카우트의 원조 격인 영국과 미국 측이 야영지 조기 철수를 결정했다. 정치인이 아니라 교단에 선 입장이라면 학생들 상대로 이 정도 고집 부리고 아동학대 신고를 면할 수 있었을까. 국적 다른 몇천 몇만명 상대라면 학대가 아닌 게 될까. 한편으로 잼버리 닷새 전(7월27일자 전북일보) 기고문에서 '도의회 대변인'으로서 사전 준비를 확신하며 "개영식날 장관(長官)이 올 필요 없겠네"라고 단언한 만큼 책임지는 모습이 뒤따르길 바란다.

아동학대 논란의 정점은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8일 참석한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해양투기 저지를 위한 아동·청소년·양육자 간담회'다. 정치색 짙은 "정치하는 엄마들" 주최였다. 만 6~10세 어린이들을 모아놓고 오염수·탈핵 관련 피켓을 들게 했다. 간담회 초입엔 당 대변인이 "OOO 활동가님 자리해주셨다"며 한명씩 호명했다. '활동가'는 사회운동에 뼈 굵은 이들을 가리킬 말일텐데. 부끄러운 듯 고개를 푹 숙이는 남아, 인형과 엄마 품에 얼굴을 파묻으며 울 것 같은 표정의 여아였가 있었다. 이를 무마하려는 어른들의 어색한 웃음까지 버젓이 영상 중계됐다. 초등 2학년 김한나양 만이 아동 대표로서 준비된 원고를 읽었다. 한창 말과 글을 배우는 아이들의 읽기 연습처럼 서툰 어투였다.

반면 내용은 누구의 것인지 모를 만큼 송곳같았다. 김양은 "어린 아이가 무얼 아냐고 하지 마세요. 저는 활동가이고 제 의견을 말할 수 있다"고 포문을 열었다. "내가 제일 싫은 건 우리나라 대통령이 핵오염수를 바다에 버리는 걸 찬성했단 것"이라며 "핵발전소보다 '더 무서운 말'을 써야 한다" 등 발언이 이어졌다.

원자력발전소를 '핵발전소'를 바꿔부른 데다 '더 무서운 말'을 바란다니, 중국에서나 쓰이던 '핵폐수'를 구태여 차용한 이재명 대표에 버금갔다. 2008년 광우병 선동과 2014년 세월호 시위에 등장한 '유모차 부대', '사드 철회·김정은 환영' 활동하던 친북단체의 2019년 "자한당 조중동 다함께 잡아서" "적폐청산 검찰개혁 촛불 모여라" 초등생 합창 선전전보다 더한 비극으로 보였다.

중고등학생 없이 20대 중반이 이끌던 '촛불중고생시민연대' 논란의 기억도 문득 스친다. '미래 짧은 분들과 표 대결' 김은경 전 민주당 혁신위원장의 망언도 2030세대 앞에서 동조를 구해보겠다고, 6~7년 전 중학생 시절 아들이 했다고 소개한 말을 '수단화'하며 나온 것이었다. 이번 일엔 "만약 민주당이 아니라 국민의힘이었더라도, 또는 (아이들이 든 판넬에) '후쿠시마 처리수,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가 적혀 있었더라도 똑같이 비난 받아 마땅한 일"(정치평론가 윤주진 퍼블리커스 대표)이라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간담회 주최측 대응은 아동학대를 비판하는 쪽을 아동학대로 고발하겠다는 적반하장이다. 공교롭게도 해마다 '세월호 참사 정부 탓' 계기교육 강행으로 교육부와 씨름하고, 2019년 10월 인헌고 사상 강요 사건까지 '교단의 정치화'를 부추겼던 '조례 사수파'는 유독 조용하다.

이 가운데 여권도 적잖게 짜증을 보탰다. 앞서 중앙정부가 3일부터 잼버리 사태 수습의 키를 잡자 '공병대·군의관 투입' 뉴스가 전파를 탔다. 일반 대민지원도 아닌 정치실패 뒤치다꺼리에 병력이 쓰인 것. 윤석열 대통령이 "제복 입은 영웅들이 존경받는 나라"를 약속한 지 한달, 수해 실종자 수색 중 해병마저 어처구니없게 희생시킨 뒤론 2주가 채 안 된 때다. 군 복무 이후 미래 사회생활을 그리고 있을 20대 초반 남성들은 "높으신 분들은 아직도 대한민국 군인이 노예라고 본다"고 자조를 쏟아냈다. 또 정치권이 키우던 병역특례 시비를 BTS가 일축하고 입대한 지 오래이건만, 성일종 국민의힘 의원은 잼버리 K팝 콘서트에 "군인 신분인 BTS가 모두" 참여케 하자며 정부에 조치를 촉구했다. 권위주의적이란 비판에 그는 문재인 정권 때 'BTS를 온갖 데 다 데리고다녔다'는 남탓으로 대꾸했다. 국방부를 감사하는 국회 국방위원으로서 이해충돌 시비와도 자유롭지 않은데, 오히려 'BTS 병역면제 입법 추진' 과거를 자랑했다. 더 큰 집단을 건드려놓고 BTS 팬심 반발만 의식했다. 당 지도부는 '할많하않'이다. 그나마 여당에선 자성의 목소리가 들린다. 삼성 변호사 출신인 홍종기(45) 수원시정 당협위원장은 3일 페이스북을 통해 "수천억 지원받고도 건물 하나 제대로 완공 못한 지자체와 조직위의 직무유기로 발생한 부담을 왜 젊은 군인들이 짊어지느냐"며 "그들에게 (국방 아닌) '강제노역의 의무'는 없다. 생각해보면 우리나라 사회에서 어린 남자 군인보다 약한 존재는 거의 없다"고 했다. 여든 야든, 총선 이기고 싶으면 '미래세대 착취 불감증'부터 벗어 던져야할 것이다.

한기호기자 hkh89@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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