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인권 활동가의 500일간의 투쟁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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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예술종합학교, 서울대학교, 구글코리아라는 화려한 이력의 한 청년이 인권활동가로 변했다.
박 대표의 "쿠오 바디스 도미네?(Quo Vadis Domine?·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라는 짧은 질문에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는 이 청년은 이후 진로를 틀어 전장연 정책국장으로 변모했다.
고층 유리빌딩으로 출근하는 '착한 엘리트 장애인'이 아니라 길바닥 농성장에서 시민들을 성가시게 하며 욕을 먹는 '못된 장애인'이 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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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시민불복종/변재원/창비/1만8000원
한국예술종합학교, 서울대학교, 구글코리아라는 화려한 이력의 한 청년이 인권활동가로 변했다. 삶의 궤적이 갑작스럽게 틀어진 것은 석사학위 논문을 위해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박경석 대표를 인터뷰하면서다. 박 대표의 “쿠오 바디스 도미네?(Quo Vadis Domine?·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라는 짧은 질문에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는 이 청년은 이후 진로를 틀어 전장연 정책국장으로 변모했다. 고층 유리빌딩으로 출근하는 ‘착한 엘리트 장애인’이 아니라 길바닥 농성장에서 시민들을 성가시게 하며 욕을 먹는 ‘못된 장애인’이 되는 순간이었다.
저자는 “나 역시도” 전장연 활동을 하기 전에는 이런 시각을 가진 사람 중 한 명이었음을 고백한다. 그는 어린 시절 의료사고로 척수 공동증이라는 희소병을 얻은 후천적 장애인이었다. 열악한 접근성으로 인한 학교 자퇴, 비행기 탑승 시 손해배상 서약서, 취업과 아르바이트 차별 등 그 역시도 어려움을 겪었지만 집안 분위기 탓에 ‘착한 장애인’을 택했다. 그렇게 강남역 어학원 새벽반에 다니며 열심히 영어공부를 하고, 취업 준비에 마음 졸이며 인턴십을 해내며 ‘노력’으로 모든 것을 극복하려 발버둥도 쳐봤다.
‘활동가’로 변모한 뒤 그는 또 한 번 충격을 받았다. 한강대교를 기어서 횡단하고, 서초동 가파른 언덕길을 휠체어를 굴려 기어코 올라가고, 뜨거운 버스 엔진 밑에 들어가 누우며 ‘불법과 합법의 경계를 넘나드는’ 활동가들의 모습을 목격한 것이다.
이런 경험은 행정학 교과서에서 ‘피상적으로’ 접한 ‘권리’의 개념을 재정립하게 만들었다. 그는 이제 “장애인들이 왜 법을 어기냐”는 질문에 “존재하지 않는 제도를 만들기 위해서는 현행하는 법 제도의 한계를 넘어서야” 한다고 말할 만큼 단단해졌다.
‘나만 조용하면 모두가 평화롭다’는 생각을 이전에 가졌던 저자는 권리를 포기하고 체념하는 것이 자신에게는 평화가 아니었다고 회고한다. 오랜 투쟁을 거친 후 그의 결론은 “시끌벅적했던 모든 시간이야말로 진짜 평화의 순간”이었다고 전한다.
정진수 기자 je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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