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전범들은 어떻게 살인기계가 되었나

김용출 2023. 8. 11. 2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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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서부터 천황 이데올로기로 세뇌
日 사회, 인간 도구화·감정 마비시켜
생체 해부·고문·학살 등 죄의식 못 느껴
정신과 의사인 저자, 집요한 질문 통해
전범들 범죄 직시·반성 과정 담담히 전달
‘시켜서 한 전쟁’서 ‘내가 한 전쟁’으로
죽인 사람들도 같은 인간임을 깨닫게 해

전쟁과 죄책/노다 마사아키/서혜영 옮김/또다른우주/1만9800원

“오후 1시부터 수술 연습을 한다. 전원 해부실로 모이도록.” 1942년 3월 중순 중국 산시성 타이위완 인근 루안육군병원 장교식당에서, 병원장 니시무라 게이지 중좌는 잡역부를 물러나게 한 뒤 유아사 겐을 비롯한 군의관들에게 말했다. 개업의의 9남매 가운데 셋째로 태어나서 천황을 신봉하는 군국소년으로 자랐던 유아사는 한 해 전 의대를 졸업하고 군의관에 지원, 중위 계급의 군의관이 된 뒤 지난 1월부터 이곳에 근무 중이었다.

오후 1시, 병실 앞 광장에는 평소와 달리 사람 그림자도 없었고, 해부실 입구에는 위생병이 대검을 총구에 꽂은 착검 상태로 보초를 서고 있었다. 열 평 남짓한 해부실에는 루안육군병원 군의관뿐 아니라 사단의 모든 군의관이 모여 있었다. 그런데 왼쪽 구석에 중국인 농민 두 사람이 손을 뒤로 묶인 채 서 있었다.
일본군 전범들이 어떻게 잔인한 범죄자가 됐는지를 분석하고, 이들이 자신의 범죄를 직시하고 반성하는 과정을 담은 책이 번역 출간됐다. 책은 전범들의 의식 근저에는 인간을 도구화하며 감정을 마비시키는 일본 사회가 자리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사진은 야스쿠니신사에서 행진하는 일본군 출신 시민들. 세계일보 자료사진
자, 시작할까. 니시무라 병원장이 신호를 보내자, 위생병이 체격이 좋은 농부를 총 끝으로 찌르자 그는 유유히 걸어서 수술대 위에 누웠다. 몸집이 작은 농부는 비명을 지르면서 나오지 않았다가 결국 수술대 위에 누웠다. 정맥 마취 뒤, 두 사람은 두 번 다시 깨어나지 못했다.

양손과 양발을 묶은 뒤 클로로에틸을 사용한 전신마취, 복강 절개 뒤 충수염 수술, 팔 근육 절단, 복부 절개 뒤 장 절제 및 장문합 수술, 기관 절개…. 생체를 대상으로 한 수술 연습은 그날 오후 4시에 끝났다.

유아사는 첫 생체 해부를 시작으로 패전까지 3년간 모두 일곱 번의 생체 해부에 참여했다. 다섯 번은 사단 군의관 수술 연습, 한 번은 위생 초년병 교육, 또 한 번은 타이위안 군의부에서 실시한 군의관 교육을 위한 생체 해부였다. 이 일곱 번의 생체 해부로 열네 명의 중국인이 학살당했다.
생화학전 벌이는 일본군. 세계일보 자료사진
731부대 모습. 세계일보 자료사진
유아사는 패전 후 귀국하지 않고 현지 루안병원에 남아 있다가 1951년 1월 전범으로 체포돼 허베이성 융넨 포로수용소에 수감됐다. 처음엔 자신의 범죄를 회피하다가, 중국 정부의 관대한 정책에 자극받아 생체 해부를 비롯해 전쟁 범죄를 고백하기 시작했다. 생체 해부를 당했던 남자의 어머니가 쓴 편지를 받았을 때 비로소 자신이 죽인 남자가 같은 인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유아사, 나는 네가 죽인 남자의 어머니다. 죽기 전날, 아들은 루안의 헌병대에 끌려갔다 … 다음날, 아는 사람 하나가 와서 가르쳐 줬다. 할머니, 당신 아들은 육군병원에 끌려가서 생체 해부 당했어요, 라고. 나는 슬프고 슬퍼서, 눈물로 눈이 짓물러버릴 것 같았다. 그때까지 갈던 논도 못 갈 게 됐다. 식사도 할 수 없었다.”

촌락을 습격해 약탈하고 농민들을 매달아두고 총검 훈련을 하는 등 악명을 떨친 고지마 다카오 중위, 후베이성에서 포로를 참살하는 등 악행을 저지른 도미나가 쇼조 중대장, 산시성에서 온갖 난폭한 악행을 저지른 나가토미 히로미치 병사, 중국인 등을 고문과 학살한 미오 유타카 헌병과 쓰치야 요시오 헌병.

물론 이들과 달리 부도덕한 전쟁에 휘말렸지만 끝까지 양심을 지킨 군인들도 있었다. 기독교적 가치관을 바탕으로 일본군이 저지른 죄를 대속하고자 군의관이 아닌 일반 병사로 입대한 오가와 다케미, 승진의 길을 피하며 동료 군인들과 거리를 두고 다른 사람을 나와 똑같은 생명으로 바라본 오노시타 다이조 병사, 총검술 연습을 위해 포로를 참수하라는 명령을 거부한 승려 출신 군인….
일본군의 생체 실험 모습. 세계일보 자료사진
정신과 의사 출신인 저자는 책에서 이들이 어떻게 잔인한 전범이 됐는지를 차분하게 분석하는 한편, 이들이 범죄 당시 어떻게 느꼈는지, 살해한 대상의 얼굴을 기억하는지 등을 집요하게 물어서 슬픔을 느끼는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는 과정을 담담하게 전달한다.

전범들은 왜 죄의식을 느끼지 않았을까. 저자는 권위에 복종하는 개개인의 심리도 있지만, 수직적인 위계질서 속에서 인간을 도구화하며 감정을 마비시키는 일본 사회가 자리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즉, 어릴 때부터 경쟁에 몰아넣고, 과잉 적응하게 하며, 선망과 굴욕의 경계에서 공격성을 고조시키고, 그것을 조직의 힘으로 바꾸는 일본 사회가 이들의 감정을 마비시켰다는 것이다. 특히 어려서부터 가정과 지역 사회, 학교에서 천황제 이데올로기로 세뇌당하며 군국소년으로 길들여진 뒤, 천황과 조국을 위해서 ‘나머지’를 희생시키는 강자의 논리를 내면화한 것도 전범을 양산한 배경이었다고 저자는 분석한다.

일본 전범들에 대한 중국 당국의 대응도 인상적이다. 저우언라이를 비롯해 중국 지도부는 일제에 협력한 중국인들은 가차 없이 처형했지만, 일본 전범에 대해선 관용 정책에 따라 인간적 대우를 하면서 반성과 성찰, 사상 개조를 유도했다. 감정이 마비된 전범들은 패전 후 비로소 자기를 돌아볼 기회를 갖게 된 것이다.
노다 마사아키/서혜영 옮김/또다른우주/1만9800원
결국 타자의 슬픔을 감싸 안는 문화를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영원한 평화는 없다고 저자는 역설한다. 어떻게 타자의 슬픔을 느낄 줄 아는 감정을 회복할 수 있을까. 먼저 진실을 알려고 노력하고 알아야 하고, 다음으로 죽어간 사람들의 슬픔과 고통을 느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는 위에서 ‘시켜서 한 전쟁’에서 내가 ‘한 전쟁’으로 주체를 되찾는 과정이기도 하다.

“나는 우선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무엇을 했는지,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알고자 하는 노력에서부터 시작된다 … 물어봐서 알아갈 때 우리는 다음 단계에 도달한다. 구체적이고 상세하게 알아야만 죽어간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감정이입을 할 수 있다. 알고 서로 이야기하는, 그리고 느끼는, 이 두 단계를 차례로 거쳐서, 우리는 상처 입을 줄 아는 부드러운 정신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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