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전범들은 어떻게 살인기계가 되었나
日 사회, 인간 도구화·감정 마비시켜
생체 해부·고문·학살 등 죄의식 못 느껴
정신과 의사인 저자, 집요한 질문 통해
전범들 범죄 직시·반성 과정 담담히 전달
‘시켜서 한 전쟁’서 ‘내가 한 전쟁’으로
죽인 사람들도 같은 인간임을 깨닫게 해
전쟁과 죄책/노다 마사아키/서혜영 옮김/또다른우주/1만9800원
“오후 1시부터 수술 연습을 한다. 전원 해부실로 모이도록.” 1942년 3월 중순 중국 산시성 타이위완 인근 루안육군병원 장교식당에서, 병원장 니시무라 게이지 중좌는 잡역부를 물러나게 한 뒤 유아사 겐을 비롯한 군의관들에게 말했다. 개업의의 9남매 가운데 셋째로 태어나서 천황을 신봉하는 군국소년으로 자랐던 유아사는 한 해 전 의대를 졸업하고 군의관에 지원, 중위 계급의 군의관이 된 뒤 지난 1월부터 이곳에 근무 중이었다.
양손과 양발을 묶은 뒤 클로로에틸을 사용한 전신마취, 복강 절개 뒤 충수염 수술, 팔 근육 절단, 복부 절개 뒤 장 절제 및 장문합 수술, 기관 절개…. 생체를 대상으로 한 수술 연습은 그날 오후 4시에 끝났다.
“유아사, 나는 네가 죽인 남자의 어머니다. 죽기 전날, 아들은 루안의 헌병대에 끌려갔다 … 다음날, 아는 사람 하나가 와서 가르쳐 줬다. 할머니, 당신 아들은 육군병원에 끌려가서 생체 해부 당했어요, 라고. 나는 슬프고 슬퍼서, 눈물로 눈이 짓물러버릴 것 같았다. 그때까지 갈던 논도 못 갈 게 됐다. 식사도 할 수 없었다.”
촌락을 습격해 약탈하고 농민들을 매달아두고 총검 훈련을 하는 등 악명을 떨친 고지마 다카오 중위, 후베이성에서 포로를 참살하는 등 악행을 저지른 도미나가 쇼조 중대장, 산시성에서 온갖 난폭한 악행을 저지른 나가토미 히로미치 병사, 중국인 등을 고문과 학살한 미오 유타카 헌병과 쓰치야 요시오 헌병.
전범들은 왜 죄의식을 느끼지 않았을까. 저자는 권위에 복종하는 개개인의 심리도 있지만, 수직적인 위계질서 속에서 인간을 도구화하며 감정을 마비시키는 일본 사회가 자리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즉, 어릴 때부터 경쟁에 몰아넣고, 과잉 적응하게 하며, 선망과 굴욕의 경계에서 공격성을 고조시키고, 그것을 조직의 힘으로 바꾸는 일본 사회가 이들의 감정을 마비시켰다는 것이다. 특히 어려서부터 가정과 지역 사회, 학교에서 천황제 이데올로기로 세뇌당하며 군국소년으로 길들여진 뒤, 천황과 조국을 위해서 ‘나머지’를 희생시키는 강자의 논리를 내면화한 것도 전범을 양산한 배경이었다고 저자는 분석한다.
“나는 우선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무엇을 했는지,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알고자 하는 노력에서부터 시작된다 … 물어봐서 알아갈 때 우리는 다음 단계에 도달한다. 구체적이고 상세하게 알아야만 죽어간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감정이입을 할 수 있다. 알고 서로 이야기하는, 그리고 느끼는, 이 두 단계를 차례로 거쳐서, 우리는 상처 입을 줄 아는 부드러운 정신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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