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단의 끝에서 단검에 찔리는 것은 달콤하지[토요일의 문장]

김종목 기자 2023. 8. 11. 2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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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결은 고통. 거기에는 새로운 것이 없다. 위장할 뿐, 형용사의 날개를 달고 도망칠 뿐. 문단의 끝에서 단검에 찔리는 것은 달콤하지.

때때로 나는 수많은 사람이 쥐고 있는 내 삶의 어휘집이, 사실관계의 색인이 끔찍하다. 다들 여벌의 쌍안경처럼 꼭 쥐고 있다. 그러니까, 사실이 내 기억을 방해한다는 뜻이다.

다 잊어버리고, 나는 아끼는 사람들의 기억에 남고 싶다. 서로 돕는 사회, 참 아름다운 구절. 그래서 나는 항상 전화를 붙들고, 편지를 쓰고, 잠에서 깨면 B와 D와 C에게 나를 부친다. 아침이 오기 전까지는 감히 말을 걸 수 없는 사람들, 그러나 밤새 이야기를 걸어야만 하는 그들에게.

<잠 못 드는 밤>(임슬애 옮김, 코호북스) 중에서

엘리자베스 하드윅은 ‘뉴욕리뷰오브북스’ 공동 창간자다. 평론가로, 에세이스트로 이름을 떨쳤다. 소설인데, 뚜렷한 줄거리도 플롯도 없다. 사실과 허구의 경계를 확인하기도 힘들다. 나, 사람, 장소, 시간, 기억, 생각에 관한 글들이 이어진다. 한 문장씩 떼어놓으면 시어나 아포리즘 같다. 수잔 손택과 필립 로스가 문장을 극찬했다. 삶과 인간관계를 통찰한 말들을 곱씹게 된다. “폐허는 파괴할 수 없지” “인간은 태어난 이상 세상의 쑥덕공론에 박제될 수밖에 없다”. 예순세 살인 1979년 이 책을 냈다. 첫 번역서다.

김종목 기자 jo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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