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역사 하나하나 되짚으며 ‘변화 중인 종’ 인간을 풀어내다[책과 삶]
창조적 유전자
에드윈 게일 지음·노승영 옮김
문학동네 | 484쪽 | 2만5000원
10만년 전 아프리카의 드넓은 초원을 상상해보자.
당신은 발가벗었다. 옷도 연장도 장신구도 없다. 벌레의 공격에 속수무책이다. 손발은 다른 동물을 이겨내기에 연약하기만 하다. 힘겹게 먹을거리를 찾더라도 제대로 씹거나 소화하지도 못하니 살아남기 쉽지 않다. 초원의 주인은 인간보다 강한 동물들이다.
‘어느 모로 보나 가장 무력한 종’이었던 인간은 지구를 물려받았다. 10만년 전 인간이 지금처럼 키가 커지고 살이 찌며 오래 살 것이라 내다보긴 힘들었다.
영국의 저명한 의사인 에드윈 게일은 현재 인간의 모습이 “스스로의 노력으로 탈바꿈시킨 세상에 새롭게 적응한 결과”라고 말한다.
당뇨병 연구의 권위자이기도 한 그는 제1형 및 제2형 당뇨병이 왜 이토록 빠르게 증가하는지 의아했다. 오랜 연구를 거듭한 끝에 결론 내렸다. ‘당뇨병이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 그러니까 인간이 달라지고 있는 것’이라고 말이다. 그는 “인간이 변화 중인 종”이라며 인간 유전자의 복잡한 ‘표현형’ 변화에 관심을 가졌다. 표현형(phenotype)이란 특정 환경에서 유전자가 표현되는 각각의 형태를 말한다. 사실상 사람의 모든 특징이라 할 수 있다.
그의 저서 <창조적 유전자>는 인간의 신체적·정신적 변화에 깃든 표현형의 역사를 다룬 책이다. 인류 역사에서 실제 일어났던 일들을 하나씩 되짚으며 인간이 변한 과정과 이유를 흥미롭게 풀어나간다. 그의 분석은 인간의 몸과 노화, 질병에 그치지 않고 정신의 변화로 나아간다. 수만 년의 역사를 훑고 난 저자가 내린 결론은 인류의 미래를 회의하는 어떤 독자들에게 묘한 위로가 될 듯하다.
최민지 기자 mi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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