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불구불 골목길·복작복작 집이 품은 다양한 삶…반듯반듯 새 건물엔 ‘이식’ 안 돼[이미지로 여는 책]
못생긴 서울을 걷는다
허남설 지음
글항아리 | 232쪽 | 1만6000원
누군가에겐 종로, 청계천, 을지로의 촌스러운 철제·슬레이트 지붕이 촌스럽거나 심지어 불쾌할지도 모르겠다. 공구 깎는 금속성 소음, 돼지머리고기 누린내, 구불구불하고 울퉁불퉁한 도로 상태를 참기 힘들지도 모르겠다.
건축학을 전공한 뒤 경향신문 기자로 일하는 허남설은 이런 ‘못생긴 서울’을 긍정한다. “보기에 썩 만족스럽지 않은 못생긴 도시”가 “다양한 삶을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재개발이란 명목으로 주민을 몰아내고 잘 구획된 도로 사이에 높은 새 건물을 지을 때, 이곳에 살던 사람들의 공동체, 얽히고설킨 일자리의 연쇄가 사라지는 모습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사람들 삶의 인연과 연쇄는 거대한 고목의 뿌리와 같아서, 다른 곳으로 쉽게 이식되지 않는다. 청계천이 복원될 때 서울시 지원으로 가든파이브로 옮겨간 상인들 중 일부는 그곳에 뿌리내리지 못하고 다시 청계천 근처로 돌아왔다.
지저분하고 복잡한 주거지나 상가를 새로 지어 깨끗한 곳에서 살고 일하자는 욕망을 누가 나무랄 수 있을까. 문제는 재개발 후 원주민이 재정착하는 비율이 20~30%라는 사실이다.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인 백사마을은 이 같은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재개발이 아닌 주거지보전사업을 추진한 곳이다. 유명한 건축가 10명이 원래 지형, 터, 골목길을 남긴 채 주민들의 집을 개선하는 사업에 의기투합했다. 다만 사업 기간이 늘어나고 지자체 권력이 바뀌면서 백사마을은 전형적인 대단지 아파트 개발사업으로 변질되기 직전이다.
저자는 가파른 골목길이 회오리치는 다산동 주택 밀집 지역, 소방차가 진입하기조차 힘든 창신동, ‘로켓도 만든다’는 세운상가로 직접 발품을 판다. 그곳에 사는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공감하고, 때로 의심한다. 재개발 예정지에 사는 사람들의 욕망은 다양하다. 누군가는 좁은 골목길에서 수십년 얼굴 맞댄 이웃들과 정겹게 살아가기 원하지만, 누군가는 한강 내려다보이는 고층 신축 아파트에서 살기 원한다. 중요한 것은 자본의 논리가 아니라 사람의 마음이다. 저자가 “조감도가 아닌 투시도의 시선”으로 도시를 살피자고 제안하는 이유다.
백승찬 기자 myungwo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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