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마지막 ‘크루너’를 떠나보내며
지난 7월, 미국의 가수 토니 베넷이 9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거의 70년간 현역으로 활동했던 베넷은 94세 때도 음반을 발매할 정도로 꾸준히 노래해 온 가수였다. 음악에 평생 매진한 삶이었고, 이는 그 자체로 하나의 역사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였다. 그가 지나온 시간에는 수많은 음악과 소리가 놓여 있지만, 그중에서도 내가 가장 좋아했던 것은 그의 어떤 한 노래가 아니라 그의 목소리, 그가 노래할 때 부드럽게 울리는 나직한 목소리였다.
그가 세상을 떠난 뒤에 쓰인 여러 기사들은 다양한 타이틀을 내걸며 그의 인생을 되짚었다. 재즈의 거장, 아메리칸 송북의 챔피언, 역사가 가장 사랑한 목소리 중 하나, 그리고 전설적인 ‘크루너’. 크루너란 크룬(croon)이라는 창법으로 노래하는 가수를 말한다. 크룬은 조용히 부드럽게 노래한다는 뜻의 단어로, 흥얼거리거나 자장가를 불러준다는 표현에 쓰이기도 한다. 내가 이해하기로 크루너라는 이들은 20세기에야 등장할 수 있었던 유형의 가수다. 확성장치가 없던 시절, 목소리 하나로 오페라 하우스를 쩌렁쩌렁하게 울려야 하거나 시끄러운 저잣거리에서도 눈에 띄는 목소리로 지나가던 이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해야 했던 이들의 목소리는 크고 선명해야 했다.
하지만 크루너들은 결코 그렇게 노래하지 않는다. 토니 베넷, 프랭크 시나트라, 앤디 윌리엄스, 알 보울리, 빙 크로스비는 멀리 있는 상대에게 노래를 들려주기 위해 애쓰기보다는 내 귓가에서 낮은 목소리로 부드러운 노래를 속삭인다. 그런 노래와 창법은 아마도 각자의 가정집에 보급된 라디오와 축음기, 녹음 스튜디오의 마이크라는 물적 토대로부터 탄생했겠지만, 그렇게 만들어진 노래는 아주 매끄럽고도 흔적 없이 마음에 녹아드는 듯했다. 크루너들의 노래는 안전하고 친숙했다. 낯섦과 불안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이 감미로운 음악들은 상상의 사랑에 쉽게 취하게 만들었다.
그들의 사랑 노래는 내가 좋아하면서도 무척 경계하는 것 중 하나였다. 노래를 듣고 있을 땐 서정적인 언어와 노랫말이 한없이 달콤했지만 노래가 끝나면 환상도 함께 사라지고, 약간의 상실감이 남았기 때문이다. 거기서 허기를 느낄 때면 같은 종류의 노래로 다시 그 마음을 채우는 일이 반복됐다. 다른 장르의 노래에서도 비슷한 마음을 느끼곤 했지만, 크루너들의 사랑 노래만큼은 아니었다. 어떤 음악은 듣는 이를 상정하지 않고 스스로 움직이는 구조체를 만들지만, 어떤 노래는 듣는 이의 자리를 또렷하게 만들어두어 어느새 내가 바로 그 노래가 사랑하는 상대가 되기를 바라게 한다. 내게 크루너의 노래는 후자에 가까웠다.
마이크 가까이에서 노래하는 이들이 있었다면, 스피커에 귀를 대고 가까이에서 노래를 듣는 이들도 있었다. ‘크루너’처럼 그렇게 노래를 듣는 이들을 위한 이름은 없었지만, 크루너의 가상의 연인이라 할 만한 이들은 전선을 사이에 둔 채 노래와 내밀한 감정을 주고받았다. 그것은 둘 사이의 노래였지, 누구 하나만의 노래는 아니었다. 그들의 노래는 자기 충족적이기라기보다는 사랑하는 누군가를 향하고 있는 듯했다. 다른 이들의 노래보다도 유독 크루너들의 노래가 끝났을 때 어떤 쓸쓸함을 느꼈다면, 어쩌면 그것이 ‘둘을 위한 노래’였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토니 베넷의 인생을 되돌아본 이들 중 하나는 ‘마지막 크루너’가 세상을 떠났다고 썼다. 오늘날 토니 베넷처럼 노래하는 가수를 떠올리기는 어렵다. 더 이상 크루너가 나오지 않는다면 지금의 시대가 사랑 노래에 기대하는 것, 사랑 노래가 우리와 관계 맺는 방식이 변화했기 때문일 것이다. 마지막 크루너가 세상을 떠난 지금, 그들의 노래를 듣고 느꼈던 각별하고도 내밀한 마음을 곰곰이 되짚어 본다. 그건 아마 노래와 노래의 조건이 만들어낸 환상에 불과하겠지만, 그들이 상상하게 만들었던 사랑의 마음만큼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신예슬 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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