잼버리도 책임진 K팝 [만물상]
미국 최고 인기 배우 겸 가수 매릴린 먼로가 휴전 후 한국에 남은 유엔군 장병을 위문하려고 1954년 2월 방한했다. 혹한 속 야외 무대에서 어깨를 다 드러내고 히트곡 ‘섬바디 러브스 미’를 열창하는 모습, 미 보병 2사단 천막식당에서 장병에게 배식하는 장면 등이 사진으로 남아 있다. 나흘 머물며 열 번 공연했다. 무대를 끝낸 뒤엔 “야외 공연은 추웠지만 그 추위를 느끼지 못할 정도로 뜨거웠다”는 인사로 낯선 나라에 파병된 젊은 장병들 마음까지 다독였다. 먼로의 방한은 요즘 말로 대중 스타가 사회에 주는 ‘선한 영향력’을 확인케 한 이벤트였다.
▶우리 가수들의 무대 확장도 처음엔 장병 위문으로 시작됐다. 베트남전 파병 군인을 위한 공연 무대에 당대 최고 인기 가수인 이미자·김세레나·윤항기·남진·나훈아 등이 섰다. 위험도 무릅썼다. 장미화씨는 “공연을 마치고 헬기를 타는데 총탄이 날아오더라”고 했다.
▶K팝 시대가 열리며 아이돌의 영향력은 전방위로 확장되고 있다. K팝은 우리 말과 글을 세계에 퍼뜨리는 일등 공신이다. 세계 각국 K팝 팬들이 알파벳으로 한국어 가사를 적는 ‘돌민정음’ 유행을 일으켰다. ‘한국언니’ ‘반둥오빠’ 등 K팝 가사로 한글과 한국어를 배우는 유튜브는 조회 수가 수십만에서 백만을 넘나든다. 팝송과 일본 가요 따라 부르려고 영어와 일어를 배우던 세대가 상상도 못 했던 반전을 K팝이 만들어 냈다.
▶K팝은 정치인들에게도 매력적인 협업 파트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2017년 중국 국빈 방문 때 당시 최고 인기 보이 그룹인 엑소와 동행했다. 재작년엔 BTS를 문화 특사로 임명하고 유엔총회에 함께 참석했다. 2030 부산 세계엑스포 유치 홍보대사도 BTS가 맡고 있다. 지난 4월 윤석열 대통령의 방미를 앞두고 걸그룹 블랙핑크와 미국 인기 여가수 레이디 가가의 합동 공연이 추진되기도 했다.
▶K팝이 어제 끝난 잼버리의 ‘유종의 미’까지 책임졌다. 서울 상암동 월드컵 구장에 선 뉴진스·NCT드림·마마무·아이브 등 19팀은 한국을 대표하는 K팝 스타들이다. 이들의 앨범 판매량을 합하면 1000만 장에 육박한다. “150여 나라 틴에이저를 한자리에서 만나는 것은 K팝 아티스트들에게도 흔치 않은 기회”라며 적극적으로 나섰다고 한다. 참가가 무산된 BTS는 대신 멤버들 모습을 담은 포토 카드 세트를 선물했다. 아미(BTS 팬클럽)도 갖고 싶어 하는 최고 인기 굿즈를 받아들고 귀국길에 오르는 스카우트 대원들 입이 한껏 벌어졌다. K팝의 활약이 무궁무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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