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치된 '레이싱 성지' 영암 … 車경주 대신 동호회 주행

이유섭 기자(leeyusup@mk.co.kr), 박소라 기자(park.sora@mk.co.kr), 문광민 기자(door@mk.co.kr) 2023. 8. 11.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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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르망 벤치마킹한 전남영암
새만금 '부실 잼버리' 판박이
르망 '24시간 달리는 대회'
관람객 몰려 경제효과 1.4조원
농식품업 이어 지역경제 효자
전남 영암, 혈세 퍼부었지만
돈 쓸 데 없고 숙소도 미흡
운영비 빼면 순수익 제로수준
구름 관중 vs 텅 빈 객석 지난 6월 프랑스 르망 '라 사르트 서킷'에서 열린 '르망 24시' 대회 개막을 앞두고 메인 그랜드 스탠드에 모터스포츠 팬 수만 명이 몰려 있는 모습(왼쪽 사진). 최근 아마추어 이륜차 경기가 열리는 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영암 국제자동차경주장의 관람객석이 텅 비어 있다. ACO·박소라 기자

'4조3000억원 생산과 4만여 명 고용 효과'(2010년·영암서킷 설립·도시개발계획). '800억원 생산유발과 300억원 부가가치 효과'(2017년·세계잼버리 대회). 정부·지방자치단체는 굵직한 사업을 벌이거나 국제 행사를 유치할 때마다 경제효과를 강조한다. 하지만 이 거대한 하드웨어를 채울 소프트웨어에 대한 고민이 없다면 공허한 미사여구일 뿐이다. 영암서킷도 잼버리도 그래서 실패했다. 세계적인 서킷을 보유한 소도시 전남 영암과 프랑스 르망의 차이는 무엇이었을까. 매일경제가 두 도시의 운명이 갈린 이유를 현장을 찾아 취재했다.

프랑스 르망에서 15년째 사는 잉가 씨. 10년 전 티셔츠를 판매하기 위해 '르망 24시'를 찾았다가 인연이 닿아 지금은 대회조직위원회(ACO)에서 근무한다. 그는 "르망 24시는 대회는 물론 연관 산업 규모가 계속 커지면서 지금도 일할 사람이 부족하다"고 설명했다. 독일인 비엔코에터 씨는 슈투트가르트에서 가족과 함께 캠핑카를 타고 8시간 넘게 달려 르망에 왔다. 그는 트랙 앞까지 갈 수 있는 티켓 3장을 1500만원(장당 3535유로)에 구매했고, 대신 잠은 주차비 35유로만 내면 되는 캠핑카에서 해결했다. 비엔코에터 씨는 "유럽인들에게 르망 24시는 모터스포츠에 관심이 있고 없고를 떠나, 반드시 가봐야 할 축제 현장"이라고 말했다.

인구 14만명에 불과한 프랑스 소도시 르망에선 '24시간 동안 가장 많이 달린 차'를 가리는 내구 레이스 대회인 르망 24시가 매년 6월 열린다. 1923년 시작된 대회라 올해가 100주년이다.

토요일 오후 4시부터 다음 날 오후 4시까지 딱 24시간 열리는 대회에 전 세계에서 무려 32만5000명에 달하는 모터스포츠 팬이 몰렸다. 도시 인구의 2배 넘는 인파로 대회 역사상 최대 규모였다. 르망 24시 조직위는 장당 최고 7175유로(약 1000만원)에 달하는 표 구매로 인한 직접 수입 규모만 1억유로(약 1400억원)라고 밝혔다. 여기에 미디어 노출 광고 효과(9790만유로)에 참석자 소비, 참가 업체 운영비, 중계권료 등까지 더하면 경제 효과는 10억유로(약 1조4000억원)로 추산된다고 조직위 측은 설명했다. 지난달엔 같은 장소에서 클래식카 경주를 보는 '르망 클래식'이 열렸는데, 그때도 23만5000명이 몰렸다. 작년보다 3만명 늘어난 숫자다.

르망 24시가 도시 르망에 미친 영향은 지대하다. 르망에는 서킷에서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공항이 있으며, 고속철 테제베 역도 있다. 고속도로 인프라스트럭처까지 발달해 영국·독일·스페인을 오가는 관광객이 찾기 편리하다.

르망에서 자동차는 농식품업 다음으로 큰 산업이다. 모빌리티 관련 연구기관들이 여럿 있다. 글로벌 스포츠카 브랜드 포르쉐는 체험센터를 짓고 드라이빙 스쿨을 운영한다. 또 자동차의 파생산업이라고 할 수 있는 보험업도 발달했다. 프랑스 대표 보험사 중 하나인 MMA 본사와 프랑스 대형 여행보험사 중 하나인 몬디알 어시스턴스 그룹의 콜센터도 르망에 있다.

주목해야 할 점은 르망시가 르망24 대회에만 도시경제를 의존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르망시는 인프라를 활용한 도시 관광업 육성을 꾸준히 도모해왔는데, 그 대표 사례가 매년 10월 열리는 '책 25시'다. 1978년 시작돼 올해로 45년째를 맞은 이 행사에는 매년 200명의 작가와 80개의 출판업체가 참가하며, 일반인 참석자 수도 3만명에 이른다.

지난 6월 전남 영암에 있는 '코리아 인터내셔널 서킷(KIC·영암 국제자동차경주장)'에서 2015년 이후 처음 '포르쉐 카레라 컵 아시아'가 열렸다. 타이어 회사 미쉐린은 물론, 휴고보스, 태그호이어 같은 럭셔리 브랜드들이 후원하는 이 행사에는 아시아의 최정상급 드라이버들이 참석했다.

연 수입이 수백억 원에 달하는 드라이버들이 대회 기간에 쓴 돈은 하루 수십만 원 수준인 요트 정박비가 전부였다.

그동안 카레라 컵이나 F1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영암을 찾은 드라이버 대부분은 영암 경주장에서 20분 떨어진 삼학도 주변 요트 선착장에 초호화 요트를 대고 그곳에서만 머물다 갔다. 식사도 직접 가져오는 것으로 알려졌다. 영암 시민들은 씁쓸한 표정으로 진풍경을 바라볼 뿐이다. 선수들이 요트에서 숙식을 해결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돈을 쓰고 싶어도 쓸 데가 없기 때문이다.

2010년 '관광 레저형 기업도시' '한국의 모나코' '국력 향상의 계기' 같은 미사여구 속에 탄생한 KIC와 도시 영암에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최근 경주장이 있는 전남 영암 삼호읍을 찾았다. 주변에는 커피는커녕 식사 한 끼 할 곳 찾기가 어려웠다. 그러다 보니 경주장을 찾는 사람 대부분이 차를 타고 15~20분 거리 목포 하당신도시에서 숙박과 식사를 해결한다.

직접 영암 경주장 안에 들어가봤다. 마침 아마추어 이륜차(오토바이) 경기가 열린다는 이야기를 듣고 수많은 인파와 환호성을 그리며 기대감에 부풀었지만, 질주하는 오토바이 굉음만이 황량한 서킷을 채울 뿐 관람객은 수십 명에 불과했다. 경주장 곳곳을 돌아다녔지만 손길이 닿은 지 오래된 티가 역력했다.

모터스포츠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황에서 정치 행정으로 인한 혈세 낭비라는 비판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이유다. 관람객 12만명을 품을 수 있는 경주장에서 지난해 관람객 1만명 이상을 유치한 행사는 단 두 개. 7월 열린 아시아 모터스포츠 카니발(1만6000여 명)과 10월의 CJ슈퍼레이스(1만명)다.

큰 경기가 자주 열리지 않는다고 서킷을 한가하게 비워둘 순 없는 법이다. KIC사업단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경주장 가동일은 250일. 주로 동호회 주행, 기업 행사로 연중 절반이 채워진다. 현대차, 금호타이어 등 자동차 기술 개발 테스트 임대 일수는 연간 80여 일에 이른다.

수익 구조는 어떠할까. KIC는 지난해 약 34억원의 수입을 거뒀다. 운영비를 빼면 순수익은 제로에 가깝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지역 사회 경제 활성화 효과에는 의문점이 남는다. 국제 경기 개최가 들쑥날쑥하다 보니 관광 인프라스트럭처가 갖춰지기 힘들다. 청사진은 화려했지만 이를 뒷받침할 콘텐츠에 대한 준비가 너무 부실했다.

[르망 이유섭 기자 / 영암 박소라 기자 / 서울 문광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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