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정은의 미술과 시선] 다비드는 어디에
유럽 인본주의가 전성을 누리던 1504년, 당시 20대 신예 작가 미켈란젤로는 구약의 한 장면을 대리석으로 완성한다. 침략자 골리앗과 싸우기 전 다비드의 모습이었다. 젊은 나신으로 묘사된 다비드는 자신의 유일한 무기인 돌멩이를 손에 쥐고 적진을 향해 서 있다. 그 강인한 육체와 얼굴에 실린 용맹은 신의 가호가 어느 편인가를 이미 짐작하게 한다.
골리앗을 이긴 다비드는 강자에 맞서 정의를 구현한 약자를 대변해왔다. 자만에 취한 기성에 도전한 패기의 젊음이었고, 한계를 초월한 인간 의지의 현현이었다. 예술가들은 이 고전적이면서도 매력적인 소재를 참신하게 변형해왔는데, 바로크 시대 카라바조도 그중 한 명이다. 그런데 성격이 괴팍했던 카라바조는 자신의 죄를 사면받기 위해, 자기 얼굴을 골리앗의 잘린 머리가 들어갈 위치에 그려 넣었다. 폭행을 저지르고 자책하던 그는 젊은 양심을 투영한 다비드를 통해 새로 구원받고 싶었던 모양이다.
우리 주변에 청년 다비드는 어디 있을까? 한때 무시당한 소외자이나, 신념을 놓지 않고 공공을 수호하던 이상적 존재 말이다. 어째서인지 현실은 무고한 시민을 향해 분노를 표출한 이들이 일으킨 사건으로 위태롭다. 드러난 주범의 모습에서 오랜 사회적 고립으로 지친 청년문제를 본다. 그들 몸에 밴 열패감은 손에 쥔 돌멩이를 골리앗이 아닌 무차별 다른 방향으로 향하게 한 것 같다. 여기 결합된 처지 비관과 결핍의 수사는 사치를 과시하는 요즘 ‘플렉스 문화’의 MZ세대와는 한참 동떨어져 있어 아이러니하다. 성서의 교훈적 신화는 멀어지고, 마약 같은 병폐적 증후는 농후한 지금의 나날. 어떤 젊음이 새로운 희망으로 나타날 수 있을까. 미켈란젤로가 조각한 다비드가 새삼 보인다.
오정은 미술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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