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구정 들끓게 한 신속통합기획 뭐길래 [부동산 집파일]
심의 통합으로 최대 3년 기간 단축, 공공성 대가로 용적률 상향 등 혜택
재건축·재개발 활성화 기대 커졌지만 압구정3구역 등 市 가이드라인에 불만
# 2006년 정비구역으로 지정되며 750가구 규모의 아파트를 짓는 재개발이 추진됐던 서울 중구 신당동 신당10구역은 현재까지도 삽을 뜨지 못했다. 정비구역 지정에 이어 조합설립 인가와 사업시행 인가까지 받으며 순항하는 듯했던 사업은 법원의 판결에 따라 조합이 해산하면서 좌초됐다. 당시 조합과 갈등을 빚던 비상대책위원회는 추진위원회가 조합을 설립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있었다며 중구청을 상대로 조합설립 무효 소송을 냈다. 법원이 비대위의 손을 들어주면서 조합은 해산됐고 결국 신당10구역은 2015년 정비구역에서 해제됐다.
하지만 17년이 지난 지금 이 지역에 다시 재개발의 바람이 불고 있다. 2021년 서울시의 신속통합기획 대상지로 선정되면서 올 2월 정비계획까지 확정됐기 때문이다. 이 지역에는 1400가구 규모의 최고 35층 아파트가 들어설 예정이다.
서울시가 2021년 9월 신속통합기획을 내놓은 지 약 2년이 된 지금 서울 시내에 정비사업 바람이 불고 있다. 신당10구역처럼 오랜 기간 표류했던 곳들부터 막 안전진단을 통과해 재건축 사업이 확정된 곳들까지 신속통합기획을 신청하며 빠르게 정비사업을 추진하는 모양새다. 시에 따르면 현재까지 신속통합기획이 완료된 사업지는 총 49곳(약 7만 4000가구)이며 34곳에 대한 기획이 진행되고 있다. 단순 계산하면 신속통합기획을 통해 약 한 달에 두 개꼴의 정비사업이, 3000가구의 공급이 확정된 셈이다.
신속통합기획은 2021년 4월 서울시로 돌아온 오세훈 시장이 내놓은 충분한 주택 공급을 주요 시정 목표로 하며 민간 재건축·재개발을 정상화하기 위해 마련된 주택 공급 정책이다. 오 시장은 당시 취임사에서 “재건축·재개발 사업이 정책적으로 억제되면서 시장에 충분한 주택이 공급되지 못했다”며 “시민들이 필요로 하는 곳에 양질의 주택을 신속하게 공급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특히 아파트 공급 감소를 서울 아파트 매매가·전세가 상승의 원인으로 지목하면서 “서울 지역에는 더 이상 신규로 대규모 택지를 개방할 땅이 없다는 현실 때문에 신축 아파트에 대한 수요가 공급을 초과하는 상황에서 이를 해결할 방법은 재개발·재건축뿐”이라며 “재개발·재건축의 정상화를 통한 부동산 공급 확대 정책으로 부동산 시장의 안정화를 도모하겠다”고 강조했다. 이후 서울시는 ‘공공기획’을 도입해 정비구역 지정까지 걸리는 기간을 기존 5년에서 2년 이내로 대폭 단축하겠다고 했고 9월 공공기획의 명칭을 ‘신속통합기획’으로 변경하며 주택 공급 확대에 나섰다.
신속통합기획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정비사업의 절차를 ‘통합’해 사업을 ‘신속’하게 진행하도록 하는 제도다. 시가 정비계획과 건축설계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공하고 이를 준수하는 수준에서 정비계획을 입안하면 바로 통과되도록 하는 방식이다. 특히 일반 정비사업의 경우 지구단위계획을 수립하고 다시 정비계획을 세우는 등의 과정에 3년 이상이 소요된다면 신속통합기획은 정비계획과 지구단위계획을 동시에 수립하는 등의 방식으로 기간을 대폭 단축한다. 심의 과정도 짧아진다. 일반 정비사업은 건축·교통·환경심의위원회의 심의를 각각 거쳐야 하지만 신속통합기획은 이를 한 번에 통합 심의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계획 수립 기간에서부터 심의 기간까지 단축해 일반 정비사업 대비 사업 기간을 절반 이상으로 줄이는 게 신속통합기획의 주 목표다.
신속통합기획의 또 다른 목표는 공공성을 살린 정비사업이다. 이 때문에 시는 신속통합기획을 ‘정비계획 수립 단계에서 서울시가 공공성과 사업성의 균형을 이룬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신속한 사업 추진을 지원하는 공공 지원 계획’으로 정의한다. 공공성에 대한 대가로 시는 각종 인센티브를 제공한다. 예를 들어 종 상향을 통해 층수를 높여준다거나 용적률을 상향해주는 식이다.
시장에서는 신속통합기획으로 재개발·재건축 시장에 활기가 돌고 있다고 말한다. 여의도나 목동과 같이 오랜 기간 사업이 정체됐던 지역이 속도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기존 규제하에서는 사업성이 나오지 않아 재건축이 어려웠던 단지들도 신속통합기획을 통한 용적률 상향 등의 인센티브를 받으며 재건축이 가능해진 만큼 당분간 서울 내 정비사업이 더욱 활성화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윤수민 NH농협은행 부동산전문위원은 “초기 재개발·재건축 단지들이 빠르게 실제 사업에 뛰어들 수 있도록 직간접적인 지원책을 만들어줬다는 것이 신속통합기획의 최대 장점”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신속통합기획이 ‘신속한 사업’이라는 취지를 살리지 못한 채 오히려 갈등을 부추기는 제도로 전락할 수도 있다고 지적한다. 최근 논란이 된 압구정3구역이 대표적이다. 시는 7월 압구정2~5구역에 대한 신속통합기획을 확정하고 압구정3구역에 대해 공공보행교와 공공임대주택을 통한 소셜믹스 등이 담긴 가이드라인을 내놓았는데 정작 조합원들은 이 같은 가이드라인을 반영하지 않은 설계안을 제시한 업체를 선정했다. 설계 업체 선정을 둘러싼 서울시와 조합 간의 공방이 계속되는 가운데 사업 지연은 불가피해진 상황이다. 이 와중에 일부 조합원들은 공공보행교 등 가이드라인에 대한 불만을 드러내면서 신속통합기획을 철회하자는 주장까지 하고 있다. 앞서 강남 대치동 선경아파트와 신반포4차 등이 신속통합기획 신청을 철회했으며 송파한양2차 등도 신속통합기획 철회를 추진하고 있는 상태다.
전문가들은 압구정3구역과 같은 갈등 사례가 앞으로도 발생할 것으로 보고 있다. 서울시는 공공성을 목표로 두고 신속통합기획을 추진하는 반면 조합은 단지 고급화 등을 추구하기 때문에 갈등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윤지해 부동산R114 리서치팀장은 “신속통합기획은 일몰제에 따라 정비구역 해제가 된 사례 등과 같이 지자체의 개입이 있어야만 진행이 가능한 곳들에 보다 적합한 형태”라며 “조합보다는 공공성을 강조하는 지자체의 의지가 적극적으로 반영되는 게 신속통합기획이기 때문에 조합원들과의 진통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또 다른 부동산 전문가도 “신속통합기획의 주요 목표 중 하나는 공공성인데 많은 이들이 이를 신속한 정비사업으로만 인지하면서 문제가 나타나고 있다”며 “압구정3구역에서 갈등이 본격적으로 표면화됐을 뿐 여타 한강 변의 주요 재건축 단지에서도 유사한 분쟁이 일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연하 기자 yeona@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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