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냄새 풀풀 "왜 나 무시해" 난동…마비된 응급실, 의사들 속앓이

박정렬 기자 2023. 8. 11.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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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응급실은 매주 금요일 밤마다 전쟁을 치른다.

최근 국회에서 술에 취한 주취자의 병원 이송을 사실상 강제하는 4건의 법안이 연이어 발의된 가운데 그의 이야기가 의료계에서 재조명받는다.

그러나 고작 15분을 견디지 못하고 이 주취자는 '폭발'했다.

한참 후 경찰은 "주취자가 응급실 대기실에서 의료진이 자기 바지를 벗겨놓고 대기시켜 성적인 모멸감을 느꼈다"며 맞고소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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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응급실은 매주 금요일 밤마다 전쟁을 치른다. 술에 절은 주취자가 밀려들기 때문이다. 보호자 없이 만취 상태에서 경찰·소방에 실려 오는 그들은 응급실의 골칫거리다. 옆에서 돌 볼 사람이 없어 낙상(넘어짐)하는 경우가 허다하고 술에 깬 뒤 "왜 동의도 없이 비싼 검사를 했냐?"며 화를 내거나 돈을 내지 않는 경우도 적지 않다. 알코올에 이성의 끈이 풀린 이들의 폭언·폭행에 응급실 의료진은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

(서울=뉴스1) 김진환 기자 = 전국의사 2차 총파업(집단휴진) 이틀째인 2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응급의료센터 입구에 응급실 진료 지연 안내문이 붙어 있다.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등에 따르면 업무개시 명령으로 중앙대병원 전공의 170명, 고려대 안산병원 전공의 149명, 신촌 세브란스 병원 응급의학과 전공의 29명 전원이 사직서를 썼다고 밝혔다.보건복지부는 사직서 제출 역시 의료법 위반이며 업무개시를 거부한 기관에는 업무정지 처분이, 의사 개개인에게는 최대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형을 비롯해 1년 이하 의사 면허정지가 내려질 수 있다고 밝혔다. 2020.8.27/뉴스1


11일 남궁인 이대목동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최근 주취자를 치료한 경험담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소개했다. 최근 국회에서 술에 취한 주취자의 병원 이송을 사실상 강제하는 4건의 법안이 연이어 발의된 가운데 그의 이야기가 의료계에서 재조명받는다.

남궁 교수는 이 글에서 술에 취해 자전거를 타다 넘어진 한 남성과 관련된 일화를 전했다. 머리에는 상처가 나고 몸 곳곳에는 타박상이 확인됐지만, 팔다리 관절이 잘 돌아갔고 꿰매야 할 정도는 아니었다. 소독 치료 후 거즈를 붙이고, 혹시 모를 손상을 파악하기 위해 영상 촬영을 시행했지만 별 이상이 없었다고 한다.

검사와 처치는 끝났지만, 의료진은 응급실에 가득 찬 환자를 돌보느라 귀가를 설명할 겨를이 없었다. 응급 상황이 아닌 점을 확인한 만큼 더 급한 환자를 치료하는 게 급선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작 15분을 견디지 못하고 이 주취자는 '폭발'했다. "왜 나보다 먼저 온 사람이 처치를 받느냐. 왜 나를 무시하냐"며 고성을 질러 주변의 응급환자에게 피해를 줬다. 더 큰 폭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생각에 의료진 등은 경찰을 불렀지만 3명의 경찰이 출동해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고 오히려 이 남성은 자신을 방치했다며 더 크게 난동을 부렸다. 남궁 교수는 "당직 근무하는 의사 둘이 모두 욕을 먹느라 응급실 기능은 '마비' 상태였다"고 말했다.

남궁인 이대목동병원 응급의학과 교수


남궁 교수와 같이 근무하는 전공의는 심한 욕설과 응급 업무를 방해한 주자를 상대로 고소장을 적었다. 하지만, 이 선택을 후회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새벽 당직으로 밤을 꼬박 새운 채 찾은 경찰서에서는 "모욕당했던 사실을 확인해줄 증인이 있느냐. 경찰의 목격과 증언은 의미가 없다"며 '감탄이 나올 정도'로 중립을 유지했다. 고소한 주취자가 핸드폰 번호를 바꿔 일시적으로 고소 진행이 중단되기도 했다.

한참 후 경찰은 "주취자가 응급실 대기실에서 의료진이 자기 바지를 벗겨놓고 대기시켜 성적인 모멸감을 느꼈다"며 맞고소했다고 전했다. 남궁 교수는 "CCTV를 보니 그는 환자복을 갈아입기 위해 자기 바지를 직접 벗은 것일 뿐 팬티 바람으로 대기하지 않았다"며 "하지만 얼토당토않은 사실을 입증해야 하는 의무는 피해자에게 있었다"고 토로했다.

고소 이후 주취자에게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위반, 모욕 혐의가 적용돼 사건이 검찰에 배당되기까지 7개월이 걸렸다. 벌금을 낼 수도, 아닐 수도 있다는 점은 응급실 의사인 남궁 교수에게 좌절감을 맛보게 했다.

그는 "고소 과정이 고통스러워하지 않는 편이 분명히 낫다고 생각한다"며 "나에게 누군가 폭언을 하면 듣고 잊는 편이 낫다. 아마 사고가 나면 그제야 무엇인가 고쳐질 가능성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박정렬 기자 parkjr@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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