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하·허·호'에 연두색 번호판까지?···'이중규제'에 뿔난 렌터카

유창욱 기자 2023. 8. 11.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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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인차 전용 번호판 도입 초읽기
올해 1월 공청회에서 공개된 연두색 법인차 전용 번호판. 연합뉴스
[서울경제]

법인차의 사적 사용을 막기 위해 연두색 전용 번호판을 부착하는 제도가 추진되는 가운데 렌터카 업계의 반발이 커지고 있다. 렌터카 업계는 이미 ‘하·허·호’로 구분되는 전용 번호판을 사용하고 있는 데다 1억 원이 넘는 고급 모델을 보유한 경우가 드물어서다. 특히 중소 렌터카 사업자를 중심으로 정부 정책이 제도 취지에 맞지 않고 ‘이중 규제’에 해당한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11일 업계에 따르면 국토교통부는 이르면 9월 중 법인 승용차 전용 번호판 제도를 행정 예고한 뒤 시행할 계획이다.

국토부, 이르면 내달 제도 시행리스·관용차에 렌터카도 포함돼고급 수입차 사적사용 막는다지만1억이상 법인차 중 렌터카 3%뿐

당초 7월 내로 행정 예고를 마칠 예정이었지만 제도 적용 범위를 놓고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이 길어졌다. 현재로서는 법인이 구매하거나 리스한 차량과 관용차뿐 아니라 렌터카에도 연두색 번호판을 부착하는 것으로 가닥이 잡혔다.

이 제도는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대선 당시 공약으로 내걸었다. 법인 명의의 고급 수입차를 기업 소유주나 가족 등이 사적으로 사용하는 것을 막으려는 취지였다. 전용 번호판으로 법인차를 쉽게 식별할 수 있으면 일종의 ‘감시 효과’가 생겨 사적 사용을 줄일 수 있다는 논리로 추진됐다. 당시 원희룡 선대본부 정책본부장은 공약을 발표하며 “억대 수입차 10대 가운데 6대가 법인 차량으로 등록돼 있는데 대부분 재벌 3세나 기업 대주주 등이 개인 용도로 사용하며 탈세를 위해 법인이 구매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부는 올해 1월부터 공청회를 열고 제도 시행을 준비해왔다. 검토 초기만 해도 법인이 구매하거나 리스한 승용차에만 전용 번호판을 부착할 방침이었다. 렌터카는 이미 용도를 구분할 수 있는 만큼 전용 번호판 부착 대상에서 제외했다. 하지만 규제를 피해 리스 수요가 렌터카로 이동하는 ‘풍선 효과’가 일어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자 제도 시행을 앞두고 렌터카까지 적용 대상에 넣었다.

탈루 소득으로 사들인 슈퍼카들. 사진 제공=국세청

렌터카 업계는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는 사례는 법인용 고급 수입차를 남용하는 것인데 정작 렌터카 업체는 고급 차량을 거의 취급하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국교통안전연구원이 가격별 법인 승용차 등록 현황을 조사한 결과 1억 원 이상 차량 중에서는 법인 자가용 승용차(리스)가 15만 755대로 전체의 96.1%를 차지했다. 렌터카 업체가 영업용으로 등록한 차량 가운데 1억 원이 넘는 경우는 전체의 3%에 그쳤다. 고가 차량 대부분이 법인 리스차로 운영되고 있는 셈이다.

이미 등록된 차는 교체시한 없어···수입차 수요 몰려 법인구매 37%↑

렌터카 업계의 한 관계자는 “리스만 규제하면 렌터카 수요가 늘어날 수 있다는 풍선 효과에 대해 어떤 검증 자료도 존재하지 않는다”며 “국토부가 리스 업계 주장만 수용해 규제화하는 것은 형평성 차원에서도 접근 방식이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렌터카를 통해 차를 운영하는 법인은 주로 아반떼·쏘나타 등 준중형 모델을 사용한다”면서 “사적 사용의 가능성이 없는 법인들까지 피해를 보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렌터카 업계는 기존에도 전용 번호판을 사용하느라 사업에 손해를 봤는데 연두색 번호판까지 추가로 부착하는 것은 명백한 이중 규제라는 점도 지적하고 있다.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상 렌터카 업체가 등록하는 대여사업용 자동차는 일반 자가용과 달리 ‘하·허·호’로 구분되는 고유 등록 번호를 사용하고 있다. 반면 리스사는 금융사업자로 분류돼 일반 자가용와 같은 번호 체계를 적용받는다. 이 때문에 리스 사업을 하는 유명 캐피털사들은 “우리는 ‘하·허·호’ 번호판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광고 문구를 내세우기도 한다.

서울시자동차대여사조합 관계자는 “렌터카에는 이미 ‘빌린 차’라는 표식이 있고 국민 누구나 이를 구분할 수 있다”며 “가뜩이나 이 표식 때문에 고가 차량 고객을 유치하기 어려웠는데 막대한 비용이 수반되는 또 다른 규제를 추가하는 것을 납득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한편 국토부가 이미 등록된 법인차에는 별도의 번호판 교체 시한을 두지 않을 것으로 알려지며 효과가 반감될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법인차 전용 번호판 제도 도입을 앞두고 1~7월 법인이 1억 5000만 원을 초과하는 고가 수입차를 구매한 사례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7%나 늘었다. 연두색 번호판을 달지 않으려는 수요가 몰렸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유창욱 기자 woog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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