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안에 소 20만마리 살처분하라니"…비상 걸린 농가 [글로벌 핫이슈]

오현우 2023. 8. 11.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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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소 도살 보고서 유출
온실가스 감축하려 3년 간 20만 마리 도살 계획
아일랜드 농가 강력 반발

# 아일랜드에서 5대에 걸쳐 젖소 축사를 운영하는 개러드 메이허는 최근 축사 인근에 치커리, 케일, 클로버 등의 작물을 심기 시작했다. 울며 겨자 먹기로 농경지를 확대하고 나섰다. 당초 젖소만 사육하던 메이허에게 작물 재배는 고역이라서다. 모두 탄소 배출량을 줄이라는 정부 방침을 지키기 위한 조치다.

메이허는 10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정부의 기후 대책 때문에 농가가 희생양이 되고 있다"고 토로했다. 그는 "질소 비료도 절반으로 줄였고, 살충제는 아예 사용하지 않는다"며 "그럼에도 탄소 배출량을 더 줄여야 한다. 이제 (소를) 방목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아일랜드 농가에 비상이 걸렸다. 기후 대책의 일환으로 젖소를 살처분해야 할 위기에 놓여서다. 아일랜드 정부는 지난 5월에 향후 3년간 낙농업계에서 사육하는 소 개체 수를 10% 감축해야 한다는 기후 대책 보고서를 작성했다. 지난해 말 아일랜드에서 사육되는 소 개체 수는 710만 마리로, 이 중 젖소는 160만마리에 육박한다.

FT에 따르면 아일랜드 정부는 매년 젖소 6만 5000마리가량을 강제 도살에 관한 보고서를 작성했다. 2030년까지 탄소 배출량을 25%가량 감축하기 위해서다. 지난 5월 영국의 인디펜던트지가 이 보고서를 공개하며 파장이 커졌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3년간 총 20여만 마리가 도살된다. 이를 위해 약 2억 유로(약 2911억원)의 비용이 투입될 예정이다. 아직 공식적으로 승인되지 않았지만 정책으로 채택될 확률이 높다는 평가다.

 지구온난화의 주범은 소?

아일랜드 정부가 강경한 대책을 내놓은 배경엔 젖소가 내뿜는 온실가스가 있다. 젖소가 호흡, 트림과 방귀로 내뿜는 온실가스양은 다른 가축을 능가한다. 다른 가축은 소화하지 못하는 유기성폐기물을 젖소는 소화하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메탄가스가 대량 배출된다. 소 한 마리가 1년간 배출하는 메탄가스 양은 70~120kg에 육박한다. 소형차 한 대를 1년간 타고 다닐 때 나오는 메탄가스양에 맞먹는다.

실제 세계 5대 육가공 업체와 10대 낙농 업체가 배출하는 메탄양은 유럽연합(EU) 회원국 전체 배출량의 80%가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9년 유엔과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 등은 기후변화를 막을 방법의 하나로 육류 소비 줄이기를 제안하기도 했다.

기후 변화 속도가 빨라지면서 아일랜드도 비상이 걸렸다. 2021년 아일랜드는 룩셈부르크에 이어 1인당 온실가스 배출량이 가장 많은 국가로 지목됐다. 메탄가스만 떼놓고 보면 유럽 내에서 1위다. 유럽연합(EU)의 녹색 전략에 따라 온실가스를 2030년까지 22%까지 절감해야 하는 상황을 감안하면 소 도살이 극단적인 조치라 비판하기 어렵다는 주장이 나온다.

아일랜드의 온실가스 절감 속도는 더딘 편이다. 아일랜드의 환경단체에 따르면 지난해 탄소 배출량은 전년 대비 1.9% 감소하는 데 그쳤다. 농업 부문에선 1년 전보다 1.2% 줄었다. 아일랜드의 기후변화 자문위원회는 지난달 "긴급 조치가 즉각적으로 시행되지 않는 한 탄소배출 절감 목표를 달성할 가능성은 없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지난 10년간 아일랜드에서 기르는 젖소 수는 급격히 증가했다. 아일랜드 소 사육연맹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젖소 개체 수는 38% 증가했다. 아일랜드 낙농업의 세계 시장 점유율이 높아지면서 농가도 확대된 것이다. 아일랜드 버터는 매년 25억 유로 이상의 매출을 기록하고 있으며, 분유 제품의 경우 세계 시장 점유율이 10%에 달한다.

 "도살은 최후의 수단 돼야"

아일랜드 농가는 정부 정책에 반대하고 나섰다. 역사적으로 아일랜드에서 낙농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는 점을 내세웠다. FT에 따르면 아일랜드에서 낙농업은 매년 131억유로가량의 부가가치를 생산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일자리는 매년 5만 4000여개를 창출했다. 지난해에는 수출 68억유로를 기록했다.

아일랜드 대표 유제품 기업인 데어리 인더스트리의 코너 멀비힐 이사는 "낙농업은 아일랜드의 최대 토착 산업이다"라며 "낙농업에 종사하는 농부만 1만 8000여명이고, 파생 산업에 소속된 종사자는 훨씬 많다"고 했다.

다른 대안이 있음에도 극단적인 정책을 내놨다는 비판도 일고 있다. 아일랜드 농업 식품개발청은 낙농가에서 질소 비료를 줄이는 방법을 채택하면 탄소 배출량을 대량 감축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지난해 농업 부문에서 탄소 배출량이 줄어든 가장 큰 요인으로 질소 비료 퇴출이 꼽히기도 했다. 다만 낙농업 생산성은 소폭 축소할 전망이다.

농업 식품개발청에 따르면 농가에서 질소 비료를 절감하게 되면 소 사육 효율성이 줄어든다. 현재 760만마리인 개체 수가 2030년까지 680만 마리로 자연 감소할 것이란 설명이다. 이 경우 탄소 배출량은 1700만t 감축된다. 목표치인 1720만t에 근접하게 되는 것이다.

티가스 기후센터의 칼 리차드 대표는 "탄소 배출을 줄일 방법은 여전히 많다"며 "소 도살 정책은 '최후의 수단'이 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소 개체 수를 두고 골머리를 앓는 건 아일랜드만 있는 건 아니다. 미국에서도 낙농업계와 정부의 갈등이 격화된 바 있다. 2019년 미국 농장협회는 기후 대책을 두고 "미국의 일방적인 행동이 지구온난화를 막을 수 있다고 믿지 않는다"고 비판한 바 있다.

올 들어 미국 농업계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조 바이든 정부가 거액의 지원금을 제시해서다. 지난해 발효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관련 조항을 넣었다. 농업계에서 탄소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향후 10년간 750억달러를 정부가 보조하는 게 골자다. 농가의 피복 작물 재배량을 늘려 '탄소 격리'를 확대하는 식이다. 탄소 격리는 대기 중 이산화탄소를 유기물에 포집해 저장하는 탄소 저감법을 뜻한다.

미 농무부도 소의 메탄가스 배출량을 조사하는 기업인 '로우 카본 테크놀로지'에 9000만달러에 달하는 연구비용을 제공하기도 했다. 론 쉴러 로우 카본 테크놀로지 최고운영책임자(COO)는 "정부의 보조금 정책으로 인해 소의 탄소 배출량을 절반으로 감축시킬 수 있다"며 "소가 어떤 사료를 먹고, 어떻게 풀을 뜯는 지 등에 대한 심층 조사가 선행되어야 탄소 배출량을 저감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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