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청 변경 시 고용승계 찬성 54%, 현실은 '함께 싸우면 너도 해고'

최나실 2023. 8. 11.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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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청서 하청 변경 시 '파리목숨'인 하청노동자
직장갑질119 설문 '원청 직고용하라'도 18.6%
해고된 효성ITX 콜센터 직원, 5일째 단식 농성
'사업 이전 시 고용승계법' 국회서 2년째 방치
올해 1월 1일부로 해고된 저축은행중앙회 통합콜센터 직원 이하나(왼쪽)씨와 서금호씨가 11일 서울시 영등포구 소재 콜센터 서비스 대기업 효성ITX 본사 앞에서 시위 중이다. 이들은 2019년 9월 해당 콜센터가 생길 때부터 일한 '원년 멤버'였지만, 지난해 11월경 갑작스럽게 원청인 저축은행중앙회가 콜센터 위탁업체를 기존 KS한국고용정보에서 효성ITX로 교체하면서 실직하게 됐다. 최나실 기자

"근속연수 인정 안 해줘도 되고, 신입사원으로 다시 입사해도 되니 해고된 3명 함께 일할 수 있게 해 달라는 것뿐이에요. 근데 원청 저축은행은 '우리는 인사 권한이 없다'며 나 몰라라 하죠. 콜센터 위탁업체(하청) 효성ITX는 제안서에는 '고용승계 100%'라고 적어놓고 지방노동위원회 와서는 '자사에 완전 고용승계는 전례가 없다'고 뻔뻔하게 말하고요."

11일 서울 영등포구 효성ITX 본사 앞에서 만난 콜센터 해고 노동자 이하나(40)씨는 본인과 동료 2명의 복직을 요구하며 닷새째 곡기를 끊고 있었다. 2019년 9월 저축은행중앙회 통합콜센터가 생길 때부터 일한 이씨는, 하루아침에 실직한 동료들을 위해 함께 싸우다 덩달아 직장을 잃었다.

지난해 11월 저축은행중앙회에서 낸 통합 콜센터 위탁 운영 공고 중 일부. '성공적인 상담사 고용승계 방안(업무연속성 유지) 제시'가 원청의 요청사항으로 적혀 있다.

자초지종은 이렇다. 원청인 저축은행중앙회는 지난해 11월 콜센터 위탁(하청)업체를 이씨가 속한 KS한국고용정보에서 효성ITX로 변경했다. 변경 시점은 올해 1월 1일로 원청이 낸 입찰공고에는 '상담사 고용승계 방안 제시'가 요청사항으로 적혀 있었고, 효성ITX도 '100% 고용승계 목표'라고 제안서를 냈다. 그러나 막상 업체 변경이 임박하자 효성ITX는 형식적인 '5분 면접'만으로 팀원 16명 중 근태에 문제없던 4명에게 '자사 비전과 맞지 않다'며 계약갱신 불가를 통보했다고 한다.

해고된 4명과 이씨를 비롯한 면접 합격자 6명은 '전원 고용승계'를 요구했으나 결국 1월 1일부로 모두 실직했다. 이들 10명 중 이하나·서금호·정금숙씨 3명만 남아 계란으로 바위 치기 심정으로 농성 중이다. 9일엔 이들의 원직복직을 요구하며 노동·시민단체 관계자 700여 명이 동조 단식을 했다.

2021년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에 서울 여의도역 인근에서 LG트윈타워 청소 노동자들이 '청소노동자 권리 캠페인'을 하며 빗자루로 만든 '고용승계 해고철회' 글자판을 들고 있다. LG타워에서 일하던 청소 노동자 80여 명은 2020년 11월 말 건물관리를 맡은 LG자회사 S&I코퍼레이션의 용역업체 변경으로 집단해고를 당했다가, 136일 만인 2021년 4월 30일 'LG 마포빌딩'으로 일터를 옮겨 복직했다. 연합뉴스

2020년 LG그룹이 용역업체 교체로 청소 노동자 80여 명을 집단해고한 'LG트윈타워 사태' 이후에도, 이처럼 원청의 하청업체 변경으로 하청노동자가 고용 불안에 시달리는 상황은 계속되고 있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가 엠브레인퍼블릭에 의뢰해 올해 6월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원청의 하청 교체로 하청노동자의 근로계약이 종결(실직)되거나 근로조건이 승계되지 않는 것에 대해 '고용승계가 의무화돼야 한다'는 응답은 54.1%에 달했다. '원청이 직고용해야 한다'는 의견도 18.6%에 달했다. '계약해지는 원청의 권한이므로 문제없다'는 응답은 8.0%에 불과했다.

일터 갑질 문제를 상담하는 직장갑질119에도 하청·위탁업체 변경으로 실직 위기에 몰려 도움을 청하는 메일이 잇따른다. 건물 관리팀으로 2년 넘게 일한 A씨는 올해 6월 "용역업체 변경을 앞두고 새 회사에 낼 이력서도 쓰라고 해서 당연히 고용승계될 줄 알았는데, 계약 만료 사흘 전 갑자기 사직서에 서명하라고 한다"며 불안해했다. 연구 계약직이던 B씨도 "2022년 근무표도 받은 상태에서 연구사업 위탁기관이 갑자기 바뀌어, 2021년 연말 면접 후 바로 실직돼 너무 황당했다"고 호소했다.

원청의 하청업체 변경이 사실상 '쉬운 해고' 우회로로 쓰이는 일이 반복되면서 하청노동자의 고용 안정을 위한 제도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은 꾸준히 나왔다. LG트윈사태 직후 2021년 5월 '사업이전에서의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안'(송옥주 의원 등)이 발의됐으나 논의는 지지부진하다. 남우근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정책위원은 "(하청업체 변경 시에도) 사업 동일성이 유지되면 고용승계를 하게끔 입법적 보호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씨와 함께 농성 중인 콜센터 해고 노동자 서금호(47)씨는 '하고 싶은 말'을 묻는 질문에 이렇게 말했다. "저는 이번 일을 겪기 전에는 간접고용이라는 말도 몰랐고, 그저 저축은행에 입사해 뱅킹 업무 상담사로 일한다고 생각했어요. 근데 이제 와서 보니 미리 노조 가입을 해 보호를 받았다면 이런 일까지는 안 겪었을 텐데 아쉬움이 남더라고요. 다른 회사 콜센터 노동자들도 미리 조합에 가입해서 저 같은 부당해고를 겪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최나실 기자 veri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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