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스&] '국민화가'의 애절한 그림편지, 예술이 되다
오누키 도모코 지음, 혜화1117 펴냄.
일본인 기자가 쓴 '이중섭 평전'
부부가 주고받은 미공개 편지 통해
베일속 부인 이남덕의 삶까지 조명
■'이중섭, 편지화'
최열 지음, 혜화 1117 펴냄
미술사학자 최열, 독립 장르로 정의
편지화 제작시기 대표작 함께 배치
이중섭 작품속 위상과 의미 조망
이남덕(야마모토 마사코·山本方子)은 한국의 국민 화가 이중섭(1916~1956)의 아내다. 두 사람은 이중섭이 일본에서 유학하던 1936년에 처음 만났다. 이중섭은 1943년 가족이 있는 함경남도 원산으로 돌아왔는데 그로부터 2년 후인 1945년에 야마모토도 한국으로 건너왔다. 이후 1944년 두 사람은 결혼했고, 이중섭은 야마모토에게 ‘남쪽에서 온 덕이 많은 이’라는 뜻으로 ‘남덕’이라는 이름을 지어줬다.
행복도 잠시,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했다. 이중섭 가족은 남한으로 내려왔고, 야마모토는 다시 전쟁 중인 한국을 떠나 1952년 아이들과 함께 도쿄로 피난했다. 두 사람은 1년 후 도쿄에서 만나 일주일간 함께 지냈고 이후 다시 만나지 못했다. 한국으로 돌아온 이중섭이 1956년 39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부부로 지낸 시간은 고작 7년.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이중섭의 가족은 이후 계속 생활고에 시달렸다. 이중섭의 그림이 지금과 같은 가격이 된 건 최근의 일이다. 이미 가족의 손을 떠난 그림은 가치가 계속 올라도 생계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도 야마모토는 홀로 가정의 생계를 책임지다 지난해 8월 13일 별세했다.
그의 1주기를 앞두고 한 출판사에서 두 사람의 이야기를 다룬 두 권의 책을 내놨다. 혜화1117이 내놓은 ‘이중섭, 그 사람’과 ‘이중섭, 편지화’다.
‘이중섭, 그 사람’은 일본에서 먼저 출간된 이중섭 평전 ‘사랑을 그린 사람’의 우리말 번역본이다. 저자는 일본 마이니치 신문의 오누키 도모코 기자. 그는 서울 특파원으로 근무하던 2016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이중섭 탄생 100주년 기념전에서 처음 이중섭을 접한다. 이중섭의 작품 뿐 아니라 배우자 야마모토에게 흥미를 느낀 저자는 이후 서울과 도쿄를 오가며 부부를 깊이 파고든다. 사실 이중섭 사후 야마모토에게 남은건 두 아들과 ‘국민 화가의 아내’라는 타이틀 뿐이었다. 그런 남편의 자리를 다른 사람으로 채우지 않고 묵묵히 가장의 역할을 한 야마모토의 생은 과연 어땠을까. 저자는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은 야마모토의 삶을 다루기 위해 생전 세 차례에 걸쳐 그의 인터뷰를 진행한다. 야마모토는 자신의 반평생을 돌아볼 때마다 ‘전쟁만 일어나지 않았더라면···’이라는 말을 하곤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전쟁만 없었더라면 두 사람은 헤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평소 동경하던 파리에서 그림을 그리고 아이들과 평범한 삶을 누렸을지 모른다. 야마모토가 70여년 간 혼자 지낸 이유를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또한 책에는 두 사람이 주고 받은 수많은 편지도 소개된다. 1954년 1월과 2월, 이중섭은 가족이 보고싶어 프랑스 시인 폴 발레리와 폴 베를렌의 시를 적은 편지를 일본에 보낸다. 또한 1952년 6월에는 한글로 쓴 다섯 장의 편지를 보내기도 한다. 이런 편지들은 모두 그간 한국에서 공개 되지 않은 것들로 이중섭의 삶을 역사적으로 고증하는 귀한 자료다.
사실 이중섭 전시를 한 번이라도 가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중섭의 편지를 보았을 것이다. 이중섭이 가족과 주고받은 다정한 그림이 가득한 편지들은 ‘인간 이중섭’의 대중적 인기를 견인하는데 가장 큰 역할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간 이중섭 전시에서 ‘아카이브’의 역할만 해 온 편지를 새로운 미술 장르로 격상한 이가 바로 미술사학자 최열이다. 저자는 ‘이중섭, 편지화’를 통해 산발적으로 흩어져 있던 편지를 모아 일별하고, 편지와 편지 속 그림이 이전에는 없던 새로운 예술 세계의 장이었음을 선언한다. 특히 저자는 ‘이중섭, 편지화’에서 단순히 편지를 통해 이중섭의 인간적 면모를 드러내는 데 그치지 않고 편지화가 제작된 시기의 대표작을 함께 배치해 이중섭의 생에서 편지화가 차지하는 위상과 의미를 조망한다. 각각 2만1000원. 2만4500원.
서지혜 기자 wise@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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