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끓는 ‘편지화’···예술가·남편·아버지로 다시 보는 국민화가 이중섭
부부애·가족애 절절한 편지화…새 장르로 자리매김
일본 저자의 평전···이중섭 부부의 인생 이야기 생생
화가 이중섭(1916~56)에게는 여러 수식어가 늘 따라 붙는다. ‘국민화가’란 별칭은 물론이고, ‘천재화가’ ‘고독한 비운의 예술가’ 등이 대표적이다. 그만큼 그의 삶이 파란만장하고 예술세계는 깊고 넓다는 의미다.
그의 삶과 작품세계를 이야기할 때 그 중심에는 무엇보다 가족이 있다. 이중섭이 ‘이남덕’이란 한국 이름을 지어준 부인이자 ‘뮤즈’라 할 야마모토 마사코(1921~2022)와 두 아들이다. 이중섭은 일본 유학시절 야마모토를 만났고, 연애 당시 자신의 마음을 그림·글에 담은 엽서들을 보냈다. 젊은 연인의 사랑이 진하게 느껴지는 이중섭의 ‘엽서화’다.
둘은 1945년 원산에서 결혼식을 올렸지만 1950년 한국전쟁은 그들의 삶을 송두리째 뒤흔들었다. 이중섭 가족은 피난민이 돼 부산으로 내려왔다가 다시 제주도로 건너가 서귀포의 쪽방에서 곤궁한 생활을 이어가야 했다. 심각한 생활고 등은 쪽방이나마 오순도순 함께 지낸 그 가족의 소중한 시간도 허락하지 않았다.
결국 1952년 6월 이중섭은 아내와 두 아들을 일본으로 떠나 보냈다. 그리고는 아내와 아들들에게 절절한 사랑과 그리움을 담은 편지를 꾸준히 보낸다. 편지 글과 여백을 촘촘하게 채운 그림, 때로는 별도 그림을 동봉한 이중섭의 ‘편지화’다. 남편으로서, 아버지로서의 애끓는 사랑과 그리움이 애절하게 녹아들어 있다. 만날 날만을 고대하던 가족은 이중섭이 4년 뒤 요절하며 다시 만나지 못했다. 남편과 함께 한 시간이 불과 7년이었던 야마모토 여사는 홀로 두 아들을 키웠고, 지난 해 타계했다. 오는 13일은 야마모토 여사의 1주기이고, 9월 6일은 이중섭 타계 67주기다.
야마모토 여사 타계 1주기, 이중섭 타계 67주기를 맞아 이중섭의 삶과 예술세계를 살펴볼 수 있는 책 2권이 동시에 출간됐다. 편지화를 중심으로 한 <이중섭, 편지화>(최열, 혜화1117)와 일본에서 출간된 평전 번역서인 <이중섭, 그 사람>(오누키 도모코, 혜화1117)이다.
<이중섭, 편지화>는 ‘바다 건너 띄운 꿈, 그가 이룩한 또 하나의 예술’이란 부제가 말해주듯 편지화를 이중섭 작품세계에서 하나의 새로운 장르, 독립된 장르로 자리매김시킨다. 그동안 편지화는 이중섭의 삶을 이야기할 때 부수적으로 여겨졌다. ‘편지’가 아니라 ‘그림’에 초점을 둬야 학자들의 연구 대상이 될 수 있었고, 미술시장에서 그 가치를 더 높게 매겨졌기 때문이다. 실제 여러 전시에서 편지화는 글씨 부분이 가려진 채 대중에게 공개되기도 했다.
편지화가 지닌 예술적 의미와 가치, 그 전모를 미술사적 시각으로 치밀하게 밝혀낸 책이 ‘이중섭, 편지화’다. 저자는 한국 근현대미술사의 역작으로 평가받는 <이중섭 평전>(2014년)을 쓰고, 일찍이 이중섭의 편지화를 주목해온 미술사학자·평론가인 최열이다. 저자는 십수년에 걸쳐 곳곳에 흩어져 전해지는 편지화를 모두 일별했고, 나아가 각각의 의미와 내용, 조형 형식, 특징 등을 탐구했다.
명확하지 않은 제작 시기와 지역·발송지의 작품들은 작품마다의 주제와 소재·재료·기법 연구 등을 토대로 추정했다. 책에 다룬 편지화는 현재까지 공개된 51점이다. 저자는 편지화를 주로 그림만 담은 ‘그림편지’ 31점, 글씨와 그림을 조합시킨 ‘삽화편지’ 20점로 나눠 설명한다. 이들 편지화는 부산과 통영, 서울, 대구에서 제작·발송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중섭, 편지화>를 통해 이중섭의 편지화는 ‘엽서화’ ‘은지화’와 함께 그가 창안한 새 미술 장르의 하나로 평가받게됐다. 엽서화가 미술을 공부하던 젊은 시절 이중섭을 상징한다면 담뱃갑 속 은박지를 철필·못으로 눌러 윤곽선을 그리고 물감을 문질러 만든 ‘은지화’는 그의 뜨거운 예술혼과 곤궁한 생활형편을 대표한다. 여기에 ‘편지화’는 예술가이자 남편·아버지로서 이중섭의 애끓는 부부애, 가족애를 상징한다.
책에는 편지화들과 시기별 유명 대표작들을 함께 소개한다. 그의 삶과 예술세계를 보다 입체적으로 조망하고 ‘읽는 재미’와 ‘보는 재미’를 함께 누리기 위해서다. 저자는 편지화를 대하는 독자들의 감상 조언도 한다. 저자는 “편지화는 특정인에게 마음을 전하는 ‘마음그림’이자 도상 하나하나마다 의미를 담았기에 ‘읽는 그림’”이라며 “제한된 재료로 빼어난 조형성을 가진 ‘보는 그림’이기에 선과 색을 세심히 살펴봤으면 한다”고 강조한다. 나아가 “보고 읽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이중섭이 몸과 마음을 쥐어짜듯 그림에 자신을 완전히 쏟아넣었기에 그 기운을 느껴야 하는 ‘느끼는 그림’”이라고 덧붙였다.
‘그리움 너머 역사가 된 인물’이란 부제의 <이중섭, 그 사람>은 일본 언론인이 방대한 취재를 바탕으로 일본에서 출간한 이중섭 평전이다.
한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국민화가’ 이중섭을 일본 언론인 저자가 한국·일본 양국에서 치열하게 취재하고, 야마모토 여사의 육성과 그 가문에 소장된 편지 등 방대한 자료를 토대로 이중섭의 생애와 예술세계를 살펴본다. 이중섭의 인간적인 모습, 이중섭 부부의 인생 이야기가 생생하다.
저자인 오누키 도모코는 마이니치신문사 서울 특파원이던 2016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이중섭 탄생 100주년 기념전을 보고 그의 생애와 예술가로서의 족적을 취재한다. 한국·일본에서 각계각층 사람들을 만나고, 자료도 섭렵했다. 특히 야마모토 여사와의 밀도 높은 인터뷰, 그 가문이 간직해온 미공개 편지 내용 등도 살펴봤다. 저자의 치열한 취재 결과물은 2020년 일본 3대 출판사로 꼽히는 쇼가쿠칸 논픽션 대상작으로 선정되고, 이듬해 이중섭 평전으로 출간됐다.
평전은 일본 독자들의 관심도 끌었다. 한국인 예술가, 그와 결혼한 일본인 여성과 그 자녀들이 남편·아버지와 헤어져 끝내 다시 만나지 못한 안타까운 삶에 공감한 것이다. 번역은 일본 도쿄예술대에서 동아시아 근대미술사를 전공하고 근현대미술 연구와 일본 예술·인문서 번역작업도 하는 출판사 ‘연립서가’의 최재혁 편집장이 맡았다. 출판사 혜화 1117은 9월 이중섭의 기일을 전후해 서울과 제주에서 최열, 오누키 도모코 저자의 특강도 열 예정이다.
도재기 선임기자 jaek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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