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리뷰] 폭탄보다 강렬한 감정의 폭발… '오펜하이머' 블록버스터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다
끈질길 정도로 한 인간을 깊이 있게 응시하는 것만으로 강렬한 블록버스터 영화를 완성할 수 있을까?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자신의 새 영화 '오펜하이머'를 통해 이 같은 질문에 스스로 답을 제시하는 듯하다. 그가 '테넷' 이후 3년 만에 선보이는 신작 '오펜하이머'는 제2차 세계 대전이 한창이던 1945년 미국, 극비리에 추진된 핵 개발 프로젝트의 수장을 맡은 천재 물리학자 J. 로버트 오펜하이머의 이야기를 스크린으로 옮긴 작품.
원자폭탄 개발 계획명인 '맨해튼 프로젝트'나 원자폭탄의 별칭인 '리틀 보이', '팻 맨' 등 익숙한 고유명사가 아닌 핵폭탄 프로젝트의 책임자를 제목으로 내세운 것에서 알 수 있듯 영화에서 폭탄은 그저 하나의 소재로 활용될 뿐이다.
핵폭탄이 터지는 순간의 시각적인 황홀경과 짜릿한 카타르시스만이 블록버스터의 표준이라고 말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감독은 그 폭발보다 거대하고 강력한 것은 누군가의 혼란스러운 마음이라고 역설한다.
때문에 분열하는 원자에서 발생하는 폭발보다 집중적으로 조명되는 것은 오펜하이머라는 한 인간의 복잡한 심리다.
유대인 태생으로 학계에서 홀대받고 소외됐던 양자역학 분야에서 활동하며 심지어 학자로서는 드물게 노동권을 외친 교수. 모든 면에서 철저하게 '이방인'의 삶을 살던 그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무기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하며 역사상 가장 위대한 도박에서 승리한 물리학자이자 원자폭탄의 아버지가 된다.
이처럼 양가적인 감정을 세밀하고 섬세한 차이로 표현하며 극에 현실성과 몰입감을 더하는 것은 오펜하이머를 연기한 킬리언 머피의 기막힌 연기력이다. 깊이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맑은 청록색의 눈빛으로 고뇌에 차 있는 그의 모습은 관객을 스크린 속 인물로 빨려들게 만든다. 캐릭터에 완벽하게 동화된 것을 넘어 오펜하이머 박사 그 자체가 되어버린 그의 표정과 눈빛은 관객으로 하여금 경이로움마저 느끼게 한다.
킬리언 머피와 더불어 극을 뚝심 있게 이끌고 가는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와 맷 데이먼의 연기 또한 일품이다. 오펜하이머와 대척점에 서 있지만 같은 곳을 바라봤던 레슬리 그로브스 장군을 연기한 맷 데이먼은 킬리언 머피와 치열한 연기 대결을 펼치며 감탄사를 자아낸다. 마치 속도감 넘치는 듯한 탁구 경기 같은 두 배우의 호흡은 가히 일품이다.
이외에도 에밀리 블런트, 플로렌스 퓨, 조쉬 하트넷, 케이시 애플렉, 라미 말렉, 케네스 브래너, 데인 드한 등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걸출한 배우들이 총출동해 극의 볼륨을 더한다. 이들의 빈틈없이 촘촘한 연기 역시 '오펜하이머'를 보는 커다란 재미 중 하나다.
마치 자화상과 초상화를 오가는 듯, 흑백과 컬러를 통해 오펜하이머의 인생은 두 가지 시선으로 그려진다.
이처럼 '오펜하이머'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확장된 연출력을 보여주며 그의 필모그래피의 또 다른 시작을 알리는 듯하다. 그럼에도 3시간에 달하는 기나긴 러닝타임과 더불어 한 인간의 내면 심리를 내밀하게 탐구하는 영화의 특성을 고려하면, '오펜하이머'가 대중성을 확보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블록버스터 오락 영화 위주인 여름 극장가에서 작품의 흥행을 담보하기 어려운 이유다.
영화 '오펜하이머'.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연출. 킬리언 머피, 에밀리 블런트, 맷 데이먼,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플로렌스 퓨, 조쉬 하트넷, 케이시 애플렉, 라미 말렉, 케네스 브래너, 데인 드한 등 출연. 15세 관람가. 러닝타임 180분. 2023년 8월 15일 극장 개봉.
YTN 김성현 (jamkim@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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