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열리는 에너지부국 … 철강·전자·정유업계 '이란發 훈풍'
한국과 이란 관계의 최대 걸림돌이 돼 온 동결자금 문제가 4년3개월 만에 해결되면 국내 산업계도 제조업, 에너지 등을 중심으로 적잖은 수혜를 입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란이 본격적인 내수경기 활성화에 나설 경우 우선 국내 기업의 원부자재 수출이 늘어나면서 제조업 주요 분야에 활력이 돌 것으로 전망된다. 수송기계제품, 석유화학제품, 철강제품, 산업용 전자제품, 가정용 전자제품 등이 대표적인 수혜 업종으로 거론된다. 2015년 이란 핵합의(JCPOA·포괄적공동행동계획) 이후 이란과 교역 규모가 가장 컸던 업종들이다.
이번 소식을 가장 반기는 업종 중 하나는 전력기기 업계다. 포괄적이란제재법이 시행된 2010년 이전까지만 해도 이란이 변압기·차단기시장에서 큰손이었던 만큼 이번에 관계가 개선되면 새로운 시장이 열릴 것이란 기대가 높다.
HD현대일렉트릭 관계자는 "2010년 이전까지만 해도 이란에 매년 700억원 상당 제품을 수출했다"며 "앞으로 실적 회복을 예상할 수 있다"고 말했다. LS일렉트릭 관계자 역시 "수출 제재 이전 이란 민간기업에 전력 자동화기기를 납품했다"며 관계 개선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냈다.
국내 철강업계는 건설 수주로 인한 매출 증대를 기대하고 있다. 이란에서 건설 수주가 활발해지면 연관 산업인 철강도 덩달아 매출에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현대제철 관계자는 "국내 건설사가 이란에서 사업을 수주하면 그에 따른 수혜가 예상된다"고 말했다. 포스코 관계자는 "거래 재개는 환영할 일"이라면서도 "오랫동안 거래가 없었기에 실질적인 수출 재개를 위해선 이란 철강시장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에너지 부문에서도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정유업계는 이란과의 관계가 정상화되면 원유를 저렴하게 살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내놓고 있다. 한 정유업계 관계자는 "러시아산 원유 수급이 어려워지고 유가가 오르는 상황에 이란산 원유 수입이 가능해진다면 수익성 개선 효과가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란은 세계 석유 매장량 4위, 천연가스 매장량 2위 등 막강한 에너지 부국이다.
앞서 지난 3월 이란이 사우디아라비아와 관계를 개선하면서 이란의 에너지 수출은 빠르게 늘고 있다. 이 때문에 이란은 국내 산업 경쟁력과 내수 경기에 활력이 돌고 있다. 이란은 유럽과 러시아, 인도 등 다양한 국가와 경제 협력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이란과의 관계가 악화하기 전 2017년 당시 주요 국내 업체별 이란산 원유 도입 비중을 보면 SK이노베이션 16%, 현대오일뱅크(현 HD현대오일뱅크) 13%, 한화토탈(현 한화토탈에너지스) 59%, 현대케미칼(현 HD현대케미칼) 77% 등이었다.
다만 다른 정유업계 관계자는 "원유 도입 계약은 수년 이상 장기간 단위로 체결하는 경우가 많아 단기간에 한국 정유업계가 수혜를 보긴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란에서 호되게 당한 기억이 있는 기업들은 조심스러운 분위기다. 일찌감치 이란에 진출한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이란을 중동의 주요 시장으로 설정하고 사업을 확대했다. 하지만 2018년 미국이 이란 제재를 복원하자 최소한의 인력만 이란에 남겨둔 채 사실상 사업을 철수했다.
이 와중에 한국과 이란의 관계가 악화하자 이란은 2021년 한국산 가전제품 수입금지를 명령했다. 당시 이란 최고지도자인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는 에브라힘 라이시 대통령에게 "한국 회사와의 수입 재계약은 이제 막 자립하기 시작한 국내 제조업체의 뒷심을 무너뜨릴 것"이라며 "한국산 가전제품의 수입을 단단히 차단하라"고 지시했다.
당시 한국에 개설한 이란 계좌가 미국 제재로 막히자 이를 한국산 가전제품으로 상계하는 방식이 논의됐는데, 이란 정부가 아예 수입금지를 명령한 것이다.
한 전자업계 관계자는 "언제든지 미국과 이란과의 관계가 악화할 가능성이 남아 있는 상황에서 완전히 이란시장 확대에 나서긴 어렵다"고 말했다.
또 다른 전자업계 관계자도 "이번 관계 개선은 새로운 시장이 열리는 것으로 환영할 만하다"면서도 "아무래도 조심스럽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전문가들은 대금 결제와 물류 등 수출에 직접적인 문제가 될 수 있는 사안에 대해 정부가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란에 대한 제재가 완전히 풀리기 전까지는 대금 결제 리스크가 가장 큰 장애물로 꼽힌다.
[이새하 기자 / 김희수 기자 / 이희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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