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준의 마켓관찰] 교육 현장에 필요한 '힘의 균형'

2023. 8. 11.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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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모에 불균형한 힘이 집중
교사에겐 '노키즈 존'도 없다
방치하면 시스템 붕괴될 것

몇 년 전 '노키즈 존' 논란이 한창이던 때 많은 사람이 이를 보고 분노했다. '이러니 저출산 국가가 되는 것이 당연하다'는 주장부터 아동 혐오라는 이야기도 나오곤 했다. 하지만 이것은 소비자 시각에서만 볼 때 그렇다. 판매자는 왜 수익이 줄어드는 것을 감수하면서까지 아이와 그 부모의 입장을 막았을까?

판매자는 상품을 판매하고 소비자는 대금을 지불한다. 이러한 거래는 이론적으론 양자가 동등한 위치에서 상품과 대금을 주고받는다. 하지만 실제로는 수요와 공급에 따라 협상력과 영향력이 결정되는데, 이 때문에 소비 시장 차원에서 보자면 대체로 소비자가 더 우월한 위치를 차지한다. 공급이 부족한 시대가 아니기 때문이다. 특히나 온라인의 별점 평가 시스템이나 리뷰 그리고 커뮤니티를 통한 소비자의 결집이 쉬워지면서 소비자는 확실한 갑의 위치에 오를 수 있게 됐다. 인격적으로 훌륭한 인간이 아니고서야 우월한 위치에 있는 경우 그 위치를 활용해 자신이 얻을 수 있는 이득을 극대화하기 마련이다. 노키즈 존이 등장한 배경 또한 마찬가지다. 아이를 둔 일부 부모는 자신의 협상력이 높은 점을 이용해 판매자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고, 이를 수용하지 않으면 피해를 끼치는 행동을 해왔다. 노키즈 존은 이처럼 힘의 균형이 부모 소비자에게 기울어져 일방적인 피해를 감수해야 하는 판매자들이 선택한 대항 수단이었다. 손님을 가려받는 방식을 통해 발생할 수 있는 피해를 사전에 예방하는 방법을 선택한 것이다.

지금의 교권 침해 논란도 본질적으로 비슷하다. 교사와 학생, 교사와 학부모 간 관계에서 우위를 차지한 쪽은 학부모와 학생이다. 과거 체벌이란 이름으로 가해지던 폭력과 아동학대에 대한 사회적 관심, 학생 인권 향상 운동은 학부모와 학생 측에 많은 힘을 실어줬고 학교와 교사는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는 서비스직 성격으로 변하고 있다. 서비스직이란 차원에서 보자면 소비자가 제기하는 클레임을 해소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한 일이 되기에 교사는 을의 입장이 된다.

하지만 여기서 중대한 문제가 발생한다. 소비자를 가려 받음으로써 자신에게 발생할 피해를 사전에 차단하고 최소화할 수 있는 자영업자와 달리 교사는 학생을 가려 받을 수 없고 배제할 수 없다. 즉, 우월한 위치를 차지한 학부모와 학생에게 대항할 수 있는 수단이 없기에 손쓸 수 없이 당하고 있어야만 하는 것이다. 과거 악성 소비자의 괴롭힘이 끊이지 않던 콜센터에서 직원이 우울증에 시달리고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일이 많았던 것을 생각하면 결국 문제는 바로 이 '힘의 균형'이라고 할 수 있다.

평범한 사람조차 조건만 갖춰지고 자기 합리화가 가능하면 부도덕한 행위와 부정 행위를 아무렇지 않게 저지를 수 있다. 그것이 인간이다. 그렇기에 우월적 위치에 있음에도 이를 남용해선 안 된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힘의 균형이 한쪽으로 기울어져 더 우월한 위치에 있는 경우 반대쪽에 자신을 지키고 대항할 수단을 줘 균형을 맞추지 않으면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노키즈 존은 이를 선언한 가게 점주가 특별히 아이와 그 부모를 미워한 나쁜 사람이라서 등장한 것이 아니라 이러한 문제를 피하기 위해 나온 것이다.

하지만 모두가 자영업자처럼 노키즈를 선언할 수 있는 건 아니다. 힘의 균형을 맞추는 사회적 조정이 없다면 결국 열위에 위치한 수많은 사람이 갈려나가게 된다. 이렇게 갈려나가는 사람의 희생으로 유지되는 시스템은 결코 지속가능하지 않다. 그런 점에서 자영업자는 어찌 보면 훨씬 나은 상황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노키즈 존은 시작에 불과했을 뿐이다. 이대로 방치하면 우리 사회 시스템이 붕괴할지도 모른다.

[김영준 '골목의 전쟁'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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