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사라졌다"…잿더미 된 하와이왕국 고도 라하이나

황윤정 2023. 8. 11.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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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 열린 줄" "종말론적 상황"…산불로 전쟁터 방불
하와이주지사 "복구에 수십억달러 들 것"…최대 13조2천억원 예상도
잿더미로 변한 하와이 마우이섬 라하이나 [AP=연합뉴스]

(서울=연합뉴스) 황윤정 기자 = 산불이 휩쓴 세계적인 휴양섬 하와이의 마우이섬은 화마에 초토화돼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8일(현지시간) 시작된 불이 10일까지 사흘째 강풍을 타고 삽시간에 번지면서 주택과 건물들이 폭삭 내려앉아 잿더미로 변했다.

특히 마우이섬 서부 해변 마을 라하이나가 가장 큰 피해를 봤다.

미국 CNN 방송에 따르면 리처드 비센 마우이 시장은 라하이나 마을의 중심부가 전소됐다고 10일 밝혔다.

비센 시장은 "모든 것이 사라졌다"며 "아무것도 없다. 모두 불에 탔다"고 말했다.

현지 주민 더스틴 칼레이오푸도 CNN에 "라하이나의 모든 것이 사라졌다고 말할 수 있다"며 "내가 알고 사랑하는 모든 사람, 동료, 친구, 가족 등 우리는 모두 노숙자가 됐다"고 말했다.

국립공원관리청(NPS)에 따르면 라하이나는 한때 하와이 왕국의 수도로 포경선 선원과 선교사 등에게 사랑받았던 곳이며 최고의 관광 명소로 자리매김한 곳이라고 CNN은 보도했다. 라하이나는 국립 사적지로 등재돼 있으며, 이곳의 프런트 스트리트는 미국도시계획협회에서 '10대 거리' 중 하나로 선정한 곳이다.

조쉬 그린 하와이주지사는 약 1만2천명이 거주하는 라하이나의 많은 지역이 파괴돼 수백가구가 이재민이 됐다고 이날 밝혔다.

현지 당국은 라하이나에서 270채가 넘는 건축물이 피해를 봤으며 그 중 상당수가 하와이의 명물 반얀트리(Banyantree) 근처에 있다고 전했다.

이곳에는 1873년 인도에서 들여와 심은, 미국에서 가장 큰 반얀트리가 있어 주변이 공원으로 조성돼 있었지만 이번에 모두 불에 타 까맣게 그을린 모습이 언론에 포착됐다. 1830년대 주택인 볼드윈 홈 박물관 등 역사적 가치가 큰 건물들도 화마를 피하지 못했다.

라하이나의 150년 된 반얀트리 [로이터=연합뉴스]

마우이섬에서는 이날 오후까지 산불 사망자가 53명으로 집계됐다. 현지 당국은 실종자 수를 파악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로이터 통신 등 외신은 '종말'(apocalypse) 등의 표현을 써가며 마우이섬을 집어삼킨 산불 피해 상황을 보도했다.

그린 주지사는 산불 피해를 복구하고 재건하는 데 수십억 달러의 비용이 들고 수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했다고 CNN은 전했다. 민간 기상예보업체 아큐웨더는 화재로 인한 피해액을 80억달러(약 10조6천억원)에서 100억달러(13조2천억원)로 잠정 추산했다.

간신히 목숨을 건진 주민들은 현지 언론과 인터뷰에서 "지옥에 있는 것 같았다",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등 악몽 같았던 당시 상황을 전했다. 지역 병원에는 화상과 연기 흡입 등으로 다친 사람들로 넘쳐나는 것으로 전해졌다.

불길을 피해 바다로 뛰어들었다는 한 남성은 현지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두 사람이 뛰어가는 것을 봤고 비명과 폭발음을 들었다. 지옥에 있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고 미국 매체 더힐은 보도했다.

상공에서 본 마우이섬 해변 마을 [리처드 올스텐(Richard Olsten)/AFP=연합뉴스. 재판매 및 DB 금지]

고등학교 축구팀 코치인 딘 리카드는 현지 매체에 "라하이나 마을과 동네 전체가 화염에 휩싸였고 이젠 알아볼 수 없을 정도"라며 "전쟁터처럼 보인다"고 말했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은 전했다.

그는 부모와 형제, 아들, 딸의 집이 모두 파괴됐다면서 자기 집도 그 자리에 남아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조던 사리베이라는 이름의 남성은 USA 투데이와 인터뷰에서 집채만 한 큰 불길이 건물들을 집어삼켰고, 차에 기름이 떨어진 일부 주민들은 걸어서라도 도망쳐야 했다며 긴박했던 당시 상황을 전했다.

그는 "차로 동네를 지나가는데 전쟁터처럼 보였다"면서 "동네 곳곳의 집들이 이미 불타고 있었고 짙은 검은 연기 속을 운전하고 있었는데 반대편에 무엇이 있는지, 내 앞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고 했다.

카무엘라 카와코아 부부는 AP 통신에 여섯 살 아들과 함께 간신히 빠져나왔다면서 "마을이 잿더미로 변하는 걸 지켜 볼 뿐,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고 몸서리를 쳤다.

yunzhe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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