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춘추] 망국의 의대 편중
"의사 되려면 초등학교 6학년까지는 고등학교 수학을 모두 끝내야 한다. 학원 가야지. 학원 가기 싫어, 너무 어려워. 엄마가 보기에 의사는 최고의 직업이야. 너 의사 되는 것이 엄마 소원이잖니. 알았어." 이런 상황이 실제로 벌어지고 있다. 초등학생까지 '의치한약수(의대·치대·한의대·약대·수의대)'로의 인재 편중, 이대로 둘 것인가. 현재 사교육 시장의 대세는 초등학교 의대 준비반이다. 학부모는 자녀의 의대 입학을 위해 사교육에 올인한다. 의사는 평생 직업으로 안정된 수입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의치한약수 정원은 6500명 정도다. 지난해 명문대 정시 합격자 중 28%가 입학을 포기했고, 이공 계열 2000명가량이 자퇴하고 의대 지원을 준비 중이다. 과학고·영재고 재학생이나 졸업생의 의대 지원을 막을 수는 없다. 소위 최상위권 학생들이 반수, 재수, 3수도 마다하지 않고 의대 입학을 절실히 원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자녀 의대 입학=부모 성적표'라는 공식도 공공연한 사실이다. 부모는 자녀의 진로 희망 사항에는 관심이 없다. 자녀 적성에 맞는지도 모르고 무조건 의사가 되기를 권한다. 경쟁과 불안을 부추기는 사회적 분위기도 의대 입학 열풍에 한몫을 하고 있다.
의대 쏠림 현상과 이공계 기피 현상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언론이나 드라마 등에서 의사를 사회적 특권층으로 묘사하기에 동경의 대상이 된 지 오래다. 자녀를 의사로 키운 부모들을 부러워하는 심리를 활용한 대치동 학원가의 의대 입시 마케팅은 점점 더 가열되고 있다.
부모들은 자녀의 미래를 초등학교 시기부터 특정 분야로 결정짓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그래도 의사가 최고니까, 무조건 의대지'라는 생각은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하는 어리석은 판단이 될 수 있다. 인공지능(AI)이 의사를 대체하는 시대가 도래했기 때문이다.
대학이 초·중·고교 수업과 괴리된 수능 성적으로 학생을 선발하는 데서 모든 문제가 시작된다. 수능 점수 1점 차이로 의대 입학과 동시에 미래 60년이 결정되는 것은 불공정·불합리하다. 의대 열풍을 잠재우기 위해선 교육 현실과 괴리된 수능을 폐지하고, 논·서술형 고교 졸업 고사를 도입해야 한다.
특히 의료인이나 법조인과 같이 공공재 성격이 더 큰 업무에 종사하려는 학생들에게는 초·중·고교 시절의 의무 봉사활동 시간을 늘려야 한다. 학생들을 수능 성적 경쟁으로 내몰기보다는 사회에 기여하는 경쟁으로 물꼬를 터야 한다.
이제는 지식과 암기가 중요한 시대가 아니다. 지식은 AI를 따라갈 사람이 없다. 챗GPT와 경쟁하면 상대가 되지 않을 단 한 번의 수능 성적으로 전문직이 되고 사회지도층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의대가 우수 인재를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된 것은 국가적 우수 인적 자원 낭비의 전형이다. 대한민국의 미래 주역이 될 수많은 최고 인재들이 의대를 간다는 것은 국가적 손실이다. 만약 아인슈타인이 한국에서 태어났다면 의대에 진학했을 것이다. 매우 개탄스럽다.
한국 경제를 먹여 살리는 것은 반도체·자동차 등 이공계다. 공송(공대라 죄송합니다)이 되면 대한민국은 희망이 없다. 글로벌 AI 기업의 이공계 출신들이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 과학·기술을 지배한 국가가 세계를 제패한 역사적 교훈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박정일 경기도교육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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