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계 담당이 도면도 못본다”… 덩치만 커진 LH의 총체적 난국

심윤지 기자 2023. 8. 11.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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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준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장이 11일 오전 서울 강남구 한국토지주택공사(LH) 서울지역본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고개숙여 사과하고 있다. 연합뉴스

“조직이 망가지고 위계도 없고 체계도 없다.” “현장에 몇개 공법이 도입됐는지같은 가장 기본적인 것조차 제대로 집계하지 못한다.”

이한준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장이 11일 긴급기자회견을 자처한 자리에서 자신이 수장으로 있는 LH를 두고 내린 평가다. 부실공사로 아파트 지하주차장이 무너지는 사태가 벌어진데 이어 이를 수습하는 과정에서도 LH의 조직 내 불화와 무능, 부실의 총체적 난맥상이 끊임없이 드러나고 있다.

LH는 지난 4월 LH가 발주하고 GS건설이 시공한 인천 검단 안단테 아파트 지하주차장 붕괴 사고 이후 검단 아파트처럼 무량판 구조(보 없이 기둥이 천장을 바로 지탱하게 하는 공법)로 지어진 아파트를 전수조사하겠다고 나섰다. 이후 3개월간의 조사를 거쳐 지난달 30일 무량판 적용 단지 91개 중 15개에서 철근 누락을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그로부터 9일 뒤, LH는 전수조사 대상이 10개 단지가 빠졌다는 사실을 뒤늦게 실토했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 9일 감리 실태 점검을 위해 화성비봉 A-3BL의 LH아파트를 찾았는데, 이 아파트는 무량판 구조가 적용됐음에도 LH의 안전점검 대상이었던 91개 단지 명단에서 제외돼있었다. LH는 이후 무량판 아파트 전수조사 대상을 101개로 정정했다.

그리고 이틀만에 열린 이날 기자회견에서는 철근 누락이 확인된 단지가 5곳 더 있었지만 이를 조사 결과에서 배제했다는 사실이 추가로 드러났다. 이 사장은 “담당 직원들은 보강철근이 누락된 기둥이 3~4개에 불과하고, 이미 보강작업을 마쳤기 때문에 안전성 우려가 없다고 자체적으로 판단해 발표해서 제외했다”며 “이 사실도 내부 보고가 아닌 제3자 제보를 통해 처음 알게됐다”고 했다.

LH 무량판 아파트 전수조사 결과 변동 현황. 연합뉴스

이 사장은 LH에서 사고가 반복되는 근본 원인으로 2009년 토지공사와 주택공사의 통합 이후에도 계속된 ‘소통 부재’와 ‘나눠먹기’ 관행을 지목했다. 이 사장은 “LH 내부의 구조견적단만 해도 13년간 설계 도면도 못보는 토목직이 보직을 맡고 있었다”며 “토공과 주공이 인위적으로 합쳐지긴 했지만 해당 기관 출신끼리 보직만 나눠갖는 ‘무늬만 통합’에 그쳤다”고 했다.

조직의 덩치는 커졌지만, LH의 업무 역량은 이를 따라가지 못했다. LH 퇴직 직원이 재취업한 업체들이 설계·감리 용역을 싹쓸이하는 ‘이권 카르텔’ 문제도 또다시 불거졌다.

이 사장은 대대적인 조직개편과 인적 쇄신을 예고했다. 그는 “취임 이후 9개월간 노력을 했음에도 조직 내부의 자정 능력만으로는 이 조직이 혁신할 수 없다는 판단에 이르렀다”며 경찰청과 감사원, 공정위에 부실시공과 이권카르텔 관련 수사 또는 조사를 요청했다고도 했다.

‘작지만 강한 조직’을 혁신의 방향성으로 제시했다. 주택 공급 업무에서는 LH의 직접 개발을 줄이는 대신 민간참여형 개발을 늘리고, LH가 쥐고 있던 감리업체 선정 권한도 내려놓겠다고 했다. 주거복지(주거급여) 업무 역시 지자체에 이관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이런 내용은 2021년 6월 전·현직 임직원의 땅투기 의혹이 불거진 후 LH가 내놓은 혁신안에도 거의 그대로 담겨있는 것이다. 2020년 9683명이던 LH 임직원 수는 2021년 8979명, 2022년 8951명, 올해 8885명으로 3년간 798명(8.2%) 줄었지만 20% 감축 목표치에는 크게 못 미친다.

홍성걸 서울대 건축학과 교수는 “LH 수장은 물론 상급 기관인 국토부 역시 관리·감독 책임을 피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유체이탈 비판을 내놓고 있는 것”이라며 “경영 투명성을 강화하는 특단의 조치가 없으면 실질적인 혁신은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심윤지 기자 sharps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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