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연가시
그 삶을 도둑질하는 연가시
사람들 속여 오류 유도하면
교리·철학도 다를 게 없어
어느 늦여름 강원도에 등산을 갔다가 새로 알게 된 사실이 하나 있다. 여름 산행은 뭐니 뭐니 해도 계곡 산행이라, 늘 능선을 따라 오르고 계곡을 따라 하산하는데, 산행 말미에 계곡 끝자락 맑은 물가에서 잠시 쉬며 탁족의 즐거움을 즐기고 있었다. 그런데 무언가 철사처럼 생긴 것이, 완전히 물에 가라앉은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물에 떠 있는 것도 아닌데 눈길을 끄는 어떤 것이 있었다. 철사 조각이라면 혹시 발에 찔릴 위험이 있어, '뭐지?' 하며 약간 녹슨 듯한 갈색의 부유물을 건져 살펴보았다. 자세히 보니 유연한 느낌은 거의 없고 뻣뻣한 듯한데 어떤 종류의 생명체임에는 틀림없었다. 난생처음 접하는 생물인데, 그 생김새는 버려진 긴 철사 조각이나 나무의 긴 잔뿌리 같은 모양이었다.
집에 돌아와 인터넷 검색창에 대략 '철사 모양의 수중 생물' 등으로 몇 차례 검색해보니, 이게 바로 '철사 벌레'라고도 불리는 '연가시'란다. 언젠가 흥행에 성공한 '연가시'라는 재난 영화를 본 기억이 있었기에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 내친김에 연가시에 관해 자세히 찾아보았다. 연가시는 일종의 기생충 같은 생물로서 사마귀나 메뚜기 혹은 여치 등의 초식 곤충에게 섭취되어 그 몸속에서 성충으로 자란다고 한다. 물속에서 교미가 이루어지는데, 한 번에 수만 개의 알을 낳는다고 하니 놀랍기만 하다. 2주 정도 후에 유충이 되어 모기 유충에 포낭 형태로 감염되거나 수변의 풀에 붙어 있다가 초식 곤충에 섭취되어 그 몸속에서 성충이 된다고 한다. 이 유충은 곤충의 몸속에서 성충이 되어 숙주(기생생물에게 영양을 공급하는 생물)의 뇌에 작용하는 신경전달물질을 분비하여 숙주가 된 곤충이 스스로 물속으로 뛰어들어 자살하게 한 후 몸체를 뚫거나 배설구를 통해 빠져나와, 물에서 자유 생활을 하다가 늦가을에 교미와 산란 후 죽는다고 한다. 유튜브에는 연가시에 감염된 사마귀나 여치를 물에 넣자 연가시가 빠져나오는 징그러운 모습을 담은 동영상이 아주 많이 있었다.
이러한 사실을 파악하고 나니, 등산 후 하산길에 계곡 등에서 잠시 쉴 때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한동안 무척 긴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좀 더 알아보니, 인간이 연가시에 감염될 가능성은 전혀 없다는 사실에 안심하기도 했다. '연가시' 영화를 통해 가졌던 가상의 오해가 완전히 해소된 것이다.
어떤 생명체건 나름의 생애 주기와 생태 현상의 독특성을 가지고 있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연가시 역시 나름의 독특한 생존 및 번식 방식을 지니고 있을 수밖에 없다. 연가시가 나에게 특별히 강하게 남긴 인상이 있다면, 그것은 연가시가 기생생물로서 숙주의 뇌 활동을 장악하여, 결국엔 물속에 투신자살하도록 이끈다는 사실이었다. 연가시가 숙주인 사마귀의 뇌에 특정 화학물질을 분비해 물에 투신하도록 조정하건, 아니면 연가시 자신이 일시적으로 사마귀의 뇌를 장악해 뇌 역할을 빼앗아 버리건 그 자세한 내막을 밝히는 것은 생물학자의 몫이겠다. 하지만, 다른 개체의 뇌 활동에 영향을 끼치며 그 삶을 온전히 도둑질(?)하는 연가시의 모습은 종교인으로서 살아가는 나에게 깊게 성찰하도록 하는 강한 메시지가 있었다.
혹시 나는 타인의 사고와 삶에 어떤 부정적 영향이나 힘을 은밀히 행사하여 남의 자유를 억압하고 있지는 않은지 되돌아보게 하였다. 자신도 모르게 자기 아집에 사로잡혀 종교적 교리나 철학이라는 이름으로 순진한 이들을 현혹하여 잘못된 삶의 방향으로 이끄는 오류를 범하고 있지는 않은지 말이다. 우리 사회를 돌아보면 가끔 거짓 종교에 휘말려 진정한 자유가 아니라 오히려 자유롭지 못하고 편협한 이념의 노예로 전락해 삶을 망치는 그런 상황을 접하게 되기 때문이다. 여름이면 생각나는 연가시! 느낌이 무섭다.
[심종혁 서강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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