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만금 잼버리가 남긴 교훈 [사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가 11일 'K팝 슈퍼라이브 콘서트'와 폐영식을 끝으로 사실상 막을 내렸다. 폭염과 태풍에 준비 부족·운영 미숙이 겹치며 잼버리는 88서울올림픽 이후 국제 행사 성공의 역사를 써오던 대한민국의 자존심에 상처를 낸 채 마무리됐다. 국민과 기업의 전폭적인 지원에 힘입어 새만금 잼버리에서 '한국의 잼버리'로 치러지긴 했지만, 적지 않은 과제와 교훈을 남겼다.
① 지자체 책임행정 중요하다
잼버리 파행은 전라북도 책임이 크다. 전북도는 행사 준비는 뒷전인 채 인프라 건설과 예산 확보에만 집중했다. 애초에 잼버리에 적합하지 않은 갯벌을 행사 장소로 선택해놓고, 잼버리 준비를 빌미로 공항·고속도로 등 SOC 예산을 따냈다. 전북도지사가 잼버리 집행위원장임에도 불구하고 정작 행사 준비에는 무심했다. 사전 점검을 위한 '프레 잼버리'는 취소됐고, 480억원을 투입한 잼버리 메인센터 건물은 아직 미완성이다. 화장실·배수시설·샤워실 건설 일정을 점검하고, 폭염·해충 대책을 세워야 할 공무원들은 해외 관광을 즐겼다. 국제 행사를 유치한 후 예산만 챙기고, 일이 잘못되면 중앙정부에 책임을 떠넘기는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려면 지자체의 행정 역량과 책임 강화가 반드시 필요하다.
② 지휘관은 한 명이어야 한다
대규모 행사를 관리하고 조율할 컨트롤타워가 없었다는 것도 뼈아픈 실책이다.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은 2020년 잼버리 조직위원회 출범 때부터 김윤덕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함께 공동위원장을 맡았다. 대규모 국제 행사 경험이 없는 데다 부처 폐지론에 휩싸인 여가부가 주무 부처가 됐을 때부터 염려했던 대로 여가부는 준비에 소홀했다. 올해 2월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박보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강태선 한국스카우트연맹 총재가 조직위원장에 합류했지만, 책임 소재가 불분명했다. 15개 부처가 참여하고 국무총리가 위원장인 정부지원위원회는 단 두 차례 열리는 데 그쳤고, 잼버리 점검·지원 TF를 이끌었던 국무조정실도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결국 '모두의 책임은 누구의 책임도 아닌 것'이 되고 말았다.
③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잼버리 참가자들은 화장실이 더럽고 비위생적이라며 불만을 쏟아냈다. 변기가 수시로 막혀 있고 휴지는 무더기로 버려져 있었다. 그러나 조직위는 별일 아닌 것처럼 취급했다. 사소한 세부 사항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옛말에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고 했다. 세부 사항을 제대로 챙기지 않으면 일이 어그러지기 마련이다. 참가자들이 화장실을 이용할 때마다 대회가 부실하다는 인식이 쌓이게 된다.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나빠질 수밖에 없다. 대회가 성공하려면 화장실 휴지 하나까지 디테일을 챙겨야 한다. 대회 조직위는 한덕수 국무총리가 직접 휴지로 변기 청소를 한 뒤에야 화장실 개선에 나섰다. 샤워실 역시 허술한 비닐 커튼만 달랑 달려 있어 여성 대원들이 불안에 떨었다고 한다. 디테일을 챙기지 않은 게 불만과 불안의 원인이었다.
④ 기업의 자발적 동참 유도해야
잼버리를 부실에서 구한 건 기업이었다. 폭염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기업들은 생수 148만병, 얼음 5만t, 아이스크림 28만개를 보냈다. 간이화장실을 설치하고 지원 인력도 파견했다. 야영지 철수가 결정되자 숙소도 제공했다. 잼버리 성공을 위해 자발적으로 한 일이다. 조직위가 처음부터 이 같은 기업의 자발적 동참을 이끌어냈다면 대회는 훨씬 성공적으로 운영됐을 것이다. 그러나 조직위는 거꾸로 기업을 호구 취급했다. 매트·텐트를 납품하는 업체에 사실상 강제로 후원금을 걷었다. 황당한 일이다. 후원이 필요하다면 세계 청소년을 미래 고객으로 확보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해 기업을 설득했으면 될 일이다. 잼버리를 살린 기업의 열정에서 확인됐듯이 기업은 참여할 준비가 돼 있다. 이를 이끌어내는 조직위 능력이 부족했을 뿐이다.
⑤ 정치권 초당적 협력 필수다
잼버리가 파행을 빚자 여야는 책임 떠넘기기에 골몰했다. 민주당은 "현 정부가 손대는 일마다 최악"이라고 했고, 국민의힘은 "민주당 집권 5년간 준비를 못 한 책임"이라고 했다. 양쪽 모두 무책임하다. 잼버리 유치가 확정된 건 문재인 정부 첫해인 2017년 8월이다. 이후 5년간 당시 여당이었던 민주당은 기반시설을 조성할 책무가 있었다. 국민의힘도 집권 이후 문제를 파악하고 대책을 마련할 책임이 있었다. 양쪽 모두 그 책임은 다하지 않은 채 정쟁만 벌인 꼴이다. 더는 이래서는 안 된다. 국제 대회는 초당적으로 협력해 준비해야 한다. 대회를 유치한 정권과 개최하는 정권이 다를 경우에는 더욱더 그래야 한다. 새 정권에 책임을 떠넘기거나, 지난 정권에서 유치한 대회라고 나 몰라라 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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