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당 성공 여부 선거제 개편에 달렸다

2023. 8. 11.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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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당 비롯, 6개 신당 추진 중…원내·외 소수정당도 촉각
내년 총선을 앞두고 창당러시를 보이고 있는 신당들은 얼마나 파괴력을 가지게 될까. 사진은 지난 2022년 대선을 앞두고 서울 종로구 이화동 한 담벼락에 대선 출마자들의 선거후보 벽보가 붙어 있는 모습 / 한수빈 기자


“당연히 내년 총선에서 후보를 내야지요. 원래는 비례 중심으로 하려 했는데 중간에 이야기하다 보니 전국 후보를 내는 것이 맞지 않냐, 그런 이야기가 나와서 의견을 취합 중입니다.”

8월 7일 기자와 통화한 한국농민당(가칭·이하 농민당) 창당준비위원회 김진범 사무총장의 말이다. 농민당은 지난 3월 30일 중앙당 창당준비위원회가 발족했다. 5월에 중앙선관위에 결성신고를 했고, 전남과 경북에 이어 지난 7월 4일 대전에서 대전광역시 시당 창당발기인대회를 열었다.

농민당이 선거철을 앞두고 ‘고만고만하게 추진되는’ 원외신당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농민당 측이 제공한 ‘창당준비위원회 진행현황’ 문서에 따르면 “홀대받는 농업·농촌을 지키기 위해 농민당을 만들 필요성이 있다”는 의견이 농민단체·농민들 사이에서는 오래전부터 대두됐다고 한다. 2014년부터 농민단체 전임 임원들을 중심으로 창당을 추진했으나 당시엔 뜻을 이루지 못했다. 마침내 올해 2월 사무실과 상근 사무총장을 두는 등 조직을 정비해 정당을 등록하기에 이르렀다.

대전에서 열린 창준위 행사에는 강기갑 전 민주노동당 국회의원, 이영호 전 17대 국회의원 등이 참여해 축사를 했다. 박영준 대표나 김진범 사무총장의 이력서를 보면 한농연(한국후계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등 농업단체 활동경력이 눈에 띈다. 농민단체들이 농업문제 단일이슈 정당을 추진하는 셈이다.

현행 선거법상 정당의 창당은 중앙당창당준비위원회 결성신고→시·도당 등록신청→중앙당 등록신청의 순으로 이뤄진다. 선거법상 한국에서 지역정당은 허용되지 않는다. 창당 때 5개 이상의 시·도당이 있어야 하며, 각 시·도당의 당원은 ‘주소지가 당해 시·도당 관할구역 안에 있는’ 1000명 이상의 명부를 내야 한다. 말하자면 전국정당만 가능하다. 농민당의 경우 9월까지 모든 절차를 마무리하고 10월 말을 목표로 창당할 계획이다.

대부분 11~12월 시점을 목표로

중앙선관위의 ‘창당준비위원회 현황’을 보면 현재 창당을 준비하는 곳은 농민당만이 아니다. 세종신당, 페미니즘당, 한반도미래당, 한국의희망, 국민주권당 등 6개 창준위가 활동 중이다. 창당 완료 목표일을 보면 양향자 의원이 주도하고 있는 한국의희망은 12월 28일, 국민주권당이 내년 1월 10일이다. 대부분 11~12월 시점을 목표로 하고 있다.

“지금부터 시작해 내년 2월까지 정치권의 요동이 변화무쌍할 것이다. 말씀하신 공천학살부터 시작해 별의별 이합집산이 다 나타날 것이다. 그 과정에서 길을 잃지 않으려면….” 박원석 전 정의당 의원의 말이다. 국민의힘과 민주당, 기존 거대양당에서 개혁을 명분으로 하는 ‘공천학살’이 신당 추진이 힘을 받는 모멘텀이 되지 않겠냐는 질문에 대한 답이다. 계속되는 그의 말이다. “정의당을 기준으로 본다면 뚜렷한 가치 기준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휩쓸려서 길을 잃어버리고 말 것이다.”

박 전 의원은 김종대 전 의원과 함께 당내 의견그룹인 대안신당모임의 고문이다. 그는 내년 총선을 포함, 정의당의 미래를 비관적으로 본다. “현재의 정의당으로 어렵다, 안 된다는 것을 당내에서는 부정하는 사람들이 없다. 당 바깥에서도 마찬가지다. 민주당이나 국민의힘 양당에 대해 공히 무책임하고 부도덕한 정치를 하는데 국민이 환멸을 느끼고 있다. 그렇다고 국민이 정의당을 실행정당으로 생각하지도 않는다. 문제 해결 능력이 있는 정당으로 보지 않는 것이다. 정의당을 넘어서서 대안을 만들어야 한다. 지금까지 대한민국의 정치 어젠다 공급을 민주노동당에서 정의당으로 이어지는 왼쪽에서 해왔지만, 이제는 한계에 봉착했다고 생각한다.”

그는 내년 총선에서 목표가 “양당 바깥에 새로운 정치 주체를 만들어 새로운 정치적 충격을 주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중요한 것은 가치·비전·정체성은 씨앗처럼 작고 단단하게 갖고, 정치는 열매처럼 크게 풍성하게 하는 것인데 현재의 정의당은 반대다. 지역구는 심상정 한명, 비례 4~5석, 그것도 민주당 지지자 교차투표로 먹고사는 이 정당을 언제까지 할 것이냐. 새로 당을 만들더라도 (민주·국민의힘 양당의) ‘공천탈락자 떳다방’처럼 할 순 없으니, 일종의 가치연합적인 새로운 정당을 만들어 최대연합을 하자는 것이다. 양당체제를 일단 깨놓고 정치지형 설계는 그다음 고민하면 되는데 우리끼리 뭐를 하겠다, 우리만이 대한민국 제3세력이다, 라고 고집한다면 누가 그걸 알아주겠나.”

7월 30일 여의도 카페 ‘하우스’에서 열린 새진추(새로운 시민참여진보정당 추진을 위한 제안모임) 토론회에 참여한 참석자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 위선희 새진추 대변인 페이스북



먼저 정의당 떠난 ‘새로운진보’

“민주당보다 노무현답게, 정의당보다 노회찬답게” 지난 7월 7일 ‘새로운시민참여진보정당 추진을 위한 정의당 전·현직 당직자 탈당자 일동’의 탈당 기자회견에 나오는 대목이다. 그동안 바깥에서 현 정의당에서 가장 먼저 이탈할 것으로 예견됐던 것은 조성주·장혜영·류호정 공동운영위원장이 주도하고 있는 ‘세번째 권력’이었다(주간경향 1528호, “거대 양당 이탈한 ‘메인무대’ 책임질 새 정당 필요하다” 조성주 세번째 권력 공동운영위원장 인터뷰 참조). 그런데 먼저 떨어져 나온 쪽은 당내 페미니즘 이슈 등에 비판적 목소리를 내온 ‘새로운진보’였다. “지금 시대의 위험성과 윤석열 정부의 역주행만 비판할 것이 아니라 국가비전을 급진적이고 진보적으로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노무현 이후의 고민, 다시 말해 복지국가를 전면적으로 실행해야 정치의 민주화를 넘어 자본의 민주화를 이룰 수 있다. 그런 방향에서 노회찬 전 대표는 현실주의 행보를 했다. 타협과 협상이 정치의 미덕이라는 것을 알았고, 목표를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유연할 줄 알았다. 그것을 따르겠다는 말이다.” 탈당선언문에서 노무현과 노회찬을 거론한 이유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내놓은 정혜연 새로운진보 운영위원의 말이다. 그는 “새로운진보가 민주당 중심성을 버리지 못한다”는 비판에 대해 “지역선거에서는 민주당을 찍으면서도 비례에서는 민주노동당·정의당을 찍던 10%의 유권자들이 한국사회를 진보하게 하고 더 개혁하게 할 수 있었던 힘이었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라며 “민주당 편이 아니라 민주당이 잘못하면 쓴소리를 할 수 있는 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민주당이 제 역할을 못 하니 그런 유권자들이 투표에 안 나오고 실망해 정치참여를 그만두는 것이다. 나는 진보정치가 시민들 지지를 받지 못했기 때문에 윤석열 정부가 등장했다고 생각한다. 특히 진보정치에 실망해 등을 돌린 30대나 20대 유권자들에게 우리가 그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다. 임팩트 정당이 되겠다고 하는 것도 우리 지지가 커지면 범진보진영이 그 방향으로 가게 되리라는 뜻이다.”

당내 의견그룹 ‘새로운진보’가 정의당에서 탈당하며 내건 공식 이름은 ‘새로운시민참여진보정당추진을 위한 제안모임’(약칭 새진추)이다. 정호진 새진추 운영위원장은 정의당이 진보정당으로서 수명을 다했기 때문에 새로운 당을 추진하게 된 것이라며 다음과 같이 비유했다. “음식솜씨 없는 식당이 간판을 바꾼다고 하루아침에 손님이 구름떼처럼 모이는 건 아니지 않은가. 그동안 몇 차례 혁신의 기회가 있었지만 다 시기를 놓쳐버렸다. 이정미 대표 체제에서 재창당 결론을 내면서 정의당 이름까지 바꾸는 방안도 고려하겠다고 했는데 당명 바꾸고 일부세력 규합한다고 해서 정의당의 본질이 바뀌지는 않는다.” 그는 “진보정치를 낡았다고 비판하는 분들을 정의당이 안고 가고 있는데 사실상 그것은 해당행위다”라며 “강력한 경고도 부족한 마당에 자정 능력마저 상실한 것이 아닌가”라고 덧붙였다. ‘진보가 아닌 중원의 길을 가겠다’면서도 아직 당내에 머무르고 있는 세번째 권력 측과 정의당 지도부를 겨냥한 비판으로 보인다.

금태섭 새로운당, 인물영입 답보?

내년 총선을 겨냥한 신당 중 제일 여론의 주목을 받는 그룹은 금태섭 전 의원 등이 주도하고 있는 새로운정당추진위원회, 약칭 ‘새로운당’이다. 7월 13일 새로운당은 정책 파트 총괄책임자로 경제노동전문가 한지원씨를 영입한다고 발표했다. 이에 앞서 7월 3일에는 당 이름을 확정하고 당 집행위원장으로 정호희 전 민주노총 대변인을 임명했다.

새로운당은 매주 월·수·금 논평을 내지만 두 사람의 영입 소식만 있을 뿐, 그후 한 달 가까이 새로운 인물이 합류했다는 소식이 없다. 7월 4일 일부 매체에서 국민의힘 쪽에서 정태근 전 의원, 정의당의 박원석 전 의원이 내년 총선을 앞두고 신당 합류에 합의했다는 보도가 있었지만 박 전 의원은 “금태섭 당에 함께할 생각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곽대중 새로운당 대변인에게 물었다.

지난 7월 4일 대전에서 열린 한국농민당(가칭) 대전광역시 당 창당준비위 발기인 대회에서 강기갑 전 민주노동당 의원(가운데 흰 도포)을 포함한 참석자들이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 한국농민당 제공



-논평을 내는 것을 보면 국민의힘보다 민주당 비판이 더 강한 것으로 보인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아무래도 여권보다는 야권에서 내홍이 더 커질 것으로 예상해서인가.

“논평을 내는 입장에서 민주당 비판을 더 많이 낸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논평을 작성할 때 비판의 무게중심을 국민의힘 70%, 민주당 30%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 비판은 많지만 국민의힘 관련은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윤석열 정부 비판이 국민의힘 비판이라고 생각한다. 국민의힘이 정당으로서 역할을 제대로 한다고 생각하나. 국민의힘 쪽 분들은 왜 민주당 비판을 안 하고 이쪽만 비판하냐고 한다. 내심 7 대 3이라고 했지만, 기계적으로 정해놓은 건 아니고 이슈에 따라 대응한다.”

-새로운당 인선 발표를 보면 과거 ‘비민주당 좌파성향’ 진보인사로 쏠렸다는 평가가 나온다.

“집행위원장이나 정책 담당은 외부적으로 알려야 하니 발표했지만 다른 단위까지 오픈할 필요성은 현재 없어 발표하지 않았을 뿐이다. 국민의힘이나 보수 쪽에 있던 분들도 여럿 결합했다. 전체 진용은 9월 말로 예정된 발기인대회 때 공개할 예정이다.”

-박원석·정태근 전 의원의 새로운당 결합 논란이 있었는데.

“일요모임이라고 친분이 있는 사람끼리 만나는 정치모임이 있었다. 그걸 외부에서 다른 취지 모임으로 오해했다. 논란이 벌어진 후 금태섭 전 의원도 나와버렸고, 박 전 의원도 안 나가겠다고 밝혔다. 그후 어떻게 됐는지는 모르겠다.”

금태섭 새로운당 창당추진위원장은 여러 차례 “내년 총선에서 새로운당의 목표는 수도권 30석”이라고 밝힌 바 있다. 현행 선거제도라면 이 제도는 비례 빼고 지역구 30석을 의미하는 것이 될 수밖에 없다.

이것은 달성 가능할 목표일까. 곽 대변인은 “비례와 지역구를 나눠 기준을 잡는 것은 아니고 양당 기득권 정치의 문제점을 극복하려면 신당이 전체의석의 10%는 차지해야 한다는 뜻”이라고 부연했다.

선거제 개편 따라 바뀔 신당 ‘총선전략’

지금 추진 중인 여러 신당을 비롯해 원내·원외 소수정당들이 촉각을 세울 수밖에 없는 건 현재 국회에서 추진되는 선거제 개정 방향이다. 지난 총선 때 치러진 제도는 준연동형으로 지역구 253석에 비례 47석이었다. 준연동형 제도는 비례의석 중 30석에 적용됐고, 비례 17석은 병립형, 즉 기존에 치러진 방식처럼 정당투표를 득표율 퍼센티지(%)로 나눠 배분하는 식으로 진행됐다. 처음 준연동형 제도가 도입될 당시 제도의 수혜자는 정의당이 될 것으로 예상됐다. 지역구보다 비례당선인의 비중이 높았기 때문이다.

당시 여당이었던 민주당이 이 선거제를 패스트트랙으로 띄우는 데 정의당을 비롯한 3당이 동의한 이유다. 정의당 내적으로는 이 제도로 인해 비례 10번대 중반까지 당선될 것으로 예측됐기 때문에 류호정·장혜영 의원과 같은 청년할당을 비례 앞순위로 배치했다. 그런데 당시 국민의힘 전신인 미래통합당이 이 제도의 허점을 이용해 위성정당을 창당하며 계획이 어그러졌다. 비례후보를 내지 않은 대신 위성정당인 미래한국당의 비례 독식을 막고자 뒤늦게 당시 여권인 더불어민주당도 위성정당인 더불어시민당을 급조해 선거를 치렀다. 결국 준연동형 제도 도입 취지는 무산되고 비례마저 거대 두 정당이 독차지하고 말았다. 현재 국회에서 논의 중인 선거제도 개편은 지난 선거의 문제점을 방지할 수 있을까.

8월 8일, 민주당이 ‘지역구를 240석으로 줄이고 권역별 연동형 비례로 60석을 뽑는 안’을 선거제 협상안으로 확정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그런데 이것이 민주당의 공식당론인지 여부는 확실치 않다. 현행 선거제도의 최대 허점으로 지목돼온 위성정당 문제를 어떻게 하자는 이야기도 없다.

정개특위에 참여하는 민주당 측 일부 의원들의 주장이지 당론으로 합의되지는 않았다는 것이 당 의원들의 시각이다. “240/60 연동형을 1안으로 하되, 협상 상황에 따라 지역구 225/광역을 포함한 75석 병립형 비례를 대안으로 제시하자는 안”(김종민 의원)도 제시된다.

여기에 국민의힘 측은 “비례대표를 줄여 전체 의원 정수를 10% 줄이는 안”을 내놓고 있다. 만약 선거제 협상이 타결되지 않으면 “위성정당 방지 조항이 없는” 현행 준연동형 비례선거제도로 치러질 가능성이 높다. 만약 그럴 경우 어떻게 될까.

일단 국민의힘은 “지난 21대 총선 당시 현 준연동형 선거제도가 자신들과 합의 없이 만들어진 제도이기 때문”이라는 이유로 다시 비례위성정당을 추진할 수 있다. 반면 정치적 책임의 공은 민주당에 돌아간다. 설사 지난 선거제도로 치러진다고 하더라도 민주당이 위성정당을 만들 경우 정치적 도덕적 비난을 떠안게 된다. 결국 법 개정으로 위성정당 방지 조항을 삽입하든 아니면 “위성정당을 만들지 않겠다”고 당 차원으로 선언하는 방법 이외의 길은 없다.

이때도 지난 총선 당시 열린민주당과 같은 방식의 비례정당이 추진된다면 민주당으로선 손을 쓸 도리가 없다. 일각에서 ‘조국 없는 조국신당’(주간경향 1535호, ‘민주당·호남발로 집중되는 신당 추진’ 기사 참조)이나 검찰개혁신당의 등장을 점치는 이유다. 결국 내년 총선이 선거제 개편없이 ‘민주당 비례위성정당이 없는 조건의 준연동형 비례제’로 치러진다면 정치공학적으로 계산해보면 지난 총선 당시 ‘더불어시민당 17석+열린민주당 3석=20석’의 비례를 두고 여러 신당과 원내·외 소수정당들이 각축을 벌이는 형국이 될 가능성이 크다.

“준연동형을 바꾸지 않고 그대로 가게 되면 민주당 쪽에서는 더불어시민당과 같은 위성정당은 절대 아니고 플랫폼 같은 것을 다 여는 범민주연대를 하자는 식의 제안이 나올 수 있는데 그에 대해 어떻게 대응할지는 진지한 논의가 필요하다” 김찬휘 녹색당 대표의 말이다. 그는 내년 총선에서 현행 비례대표 할당 하한선인 3%를 돌파하기 위해 각 소수정당이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한 가운데 한시적으로 비례연합정당을 만들 필요가 있다는 제안을 내놓고 있다.

“제대로 된 준연동형으로 선거를 치러본 적이 없으니 유권자 선택이 어떠하리라고 예측하는 것은 무리다.” 전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를 지낸 하승수 변호사의 말이다. 지난 총선에서 준연동형 비례제를 도입했지만, 기득권 거대양당이 위성정당이라는 편법을 동원해 제도를 ‘유린’했으므로 제대로 된 준연동형 선거제도로 치러진 선거가 아니라는 지적이다. 그는 “국회에서 선거제 개편 논의를 이대로 놔두면 준연동형을 폐기하고 여야합의로 과거의 제도, 병립형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높다”라며 “신당을 하겠다는 사람들이라면 밤샘농성을 해서라도 준연동형 사수·제도개혁에 나서야 하는데 선거제도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부족해서인지 움직임이 거의 없다”라고 덧붙였다.

새로운당은 양평고속도로, 저출산, 양극화, 권력형 비리 등 정치권에서 논쟁이 되는 현안에 집권여당인 국민의힘과 과거 집권당인 더불어민주당 양쪽 모두의 책임이 있다고 주장한다. 사진은 새로운당이 자신의 주장을 담아 인스타그램에 게시한 포스터 / 새로운당 인스타그램



선거제 문제를 천착해온 최재한 균형사회플랫폼 대표는 “선거제 개편 논의는 정치개혁특위보다 양당 대표를 포함한 당 지도부가 OK 사인을 내면 밀실에서 적절히 욕먹지 않는 범위 내에서 타협하는 것이 과거부터 지금까지의 분위기”라고 말했다. 그는 “국민의힘은 현행 제도가 자신들이 만든 제도가 아니기 때문에 명분 싸움에서 승산이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이 제도로 치러지면 위성정당을 또 만들 가능성도 있다”라며 “반면 민주당은 위성정당을 다시 만들 명분이 없기 때문에 아예 개혁블록이든, 세대블록이든 외부의 독자정당이 만들어지면 연합하는 방식으로 가려 할 가능성이 있다”라고 덧붙였다.

김종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현역 240명 대 비례 60명 연동제 안은 현재 선거제도보다 비례의원 비중은 높지만 비례전문정당과 같은 소수정당에만 유리하며, 위성정당 문제도 해결하지 못한다는 문제가 그대로 남아 있다”며 “기존선거제도 개혁 논의가 소수정당을 돌봐주는 ‘자선형 선거제도’로 가다 보니 국민을 설득하지 못했고, 지역구와 비례를 동일비율로 하는 독일식 연동형 취지도 살리지 못했다”고 말한다. 그는 국민의힘 측이 주장하는 비례 축소를 통한 국회의원 정수 10% 감축안에 대해서도 “일을 제대로 하려면 상호견제 해야 하는데 지역구 활동하는 일 이외에는 관심이 없는 지금의 행태가 이어진다면 500명으로 늘려도 망한다”라며 “‘국회의원들이 일을 안 하니 숫자를 늘리면 뭐하나, 일을 안 하는 놈은 벌줘야 한다’라고 하는데, 국민도 숫자가 핵심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지역구 의원 수를 225명으로 줄이고 비례를 75명으로 늘리되, 75명 비례 중 30명을 권역별로 뽑는 병립형 제도를 대안으로 제시한다. 유권자들이 비례대표에 부정적인 것은 자신이 뽑은 의원이 아니기 때문인데, 권역별 비례의원, 예컨대 박주민 의원이 서울 은평을 지역구가 아니라 서울시 서부광역 국회의원으로 출마해 뽑혀 의정활동을 한다면 내가 뽑은 의원이 아니라는 의식도 사라지리라는 주장이다.

신당 현실적 선택은 ‘몸값 불리기’일까

선거제 변화와 상관없이 내년 선거에서 신당들의 파괴력은 제한적일 것이며, 양당 기득권 강화로 귀결되리라는 전망도 있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 소장은 “보수 쪽의 경우 신당이 파괴력이 있으려면 차기 주자에다 영남 보수·2030 남성의 일정한 지지율 등 세 가지 조건이 필요한데 현실적으로 유승민이나 이준석 등은 그런 조건에서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민주당 계열 역시 40대 층에서 특정 지지율과 호남과 586, 2030 여성의 지지가 필요한데 지금 거론되는 신당 추진세력 중 그 조건을 충족하는 그룹은 잘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신당을 추진하는 세력을 보면 ‘신당의 길’에 올인하기보다 ‘몸값 높이기’ 또는 기존 정당과 대통합 내지는 재결합에 더 관심이 있어 보인다”며 “특히 총선이 임박할수록 민주당이나 국민의힘은 총선승리를 위해 중도 확장을 추구하는데 그때 신당세력을 활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지금 신당을 추진하는 세력은 이쪽저쪽 모두에 가능성을 열어놓고 몸집 불리기를 하고 있다는 시각이다. “신당이 동력이 생기려면 기존 양당에서 공천상황이 빨리 진행돼야 하는데, 아마 이런 것 때문에라도 양당이 공천을 최대한 미룰 가능성이 있다. 민주당의 경우 당헌·당규상 총선기획단을 6개월 전에 만들어야 하니 공식적으로 10월 14일까지 해야 하는데, 본격적으로 실무에 들어가려면 두세 달은 족히 걸린다. 결국 공천이 탄력을 받으려면 내년 1월에서 2월은 돼야 한다는 얘기다. 그 전까지 신당이 뭔가 의미 있는 동력을 확보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과연 그럴까. 지켜볼 일이다.

정용인 기자 inbq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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